아내와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행을 함께 다닐 때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총각 때는 혼자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혼자서는 매우 심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함께 가자고 하는 친구가 있어도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친구와 여행을 함께 가면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생활습관이 달라서 불편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친구의 여행취향이 나와 맞을지도 의문이었다.
아내와는 매일 함께 살아서인지 여행을 함께 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서로의 생활습관을 잘 알아서인 것 같다. 코로나19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십 년 전부터 매년 제주도 여행을 가고 있다. 일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이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기운을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때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꽃이 만개하는 봄은 여행을 다녀오기 좋은 달이다. 대체로 대학교의 학과들은 3학년 때 수학여행을 4학년 때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1992년 5월, 대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4월 하순의 어느 날, 우리 학과의 과대표가 수업 시작 전에 강의실 앞에 나와서 학우들에게 수학여행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주요 내용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는 수학여행 가는 것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만약에 가길 희망하는 학우들이 과반수 이상이면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추진하게 될 경우에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대부분의 학우들은 수학여행을 가기를 원했다. 수학여행 장소로서 경주, 제주도, 해외로 가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이 중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두고 거수투표를 했다. 제주도에 손을 들은 학우들이 가장 많았다. 결국 수학여행지를 제주도로 결정했다. 두 번째로는 여학우들과 제주도에서 함께 노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나이트클럽을 간다던가 등산을 한다던가 말이다. 과대표는 이를 위해 노력해 보겠다고 말했다.
말로만 듣던 제주도에 가볼 수 있는 기회였다. 돌하르방, 해녀, 조랑말이 생각났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비행기도 탈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부모님한테 허락을 받고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한 후, 비행기에 대해 가졌던 나의 환상이 깨졌다. 대한항공 TV 광고 속 비행기의 편안해 보이는 승차감과 달리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이륙할 때 느껴지는 시끄러운 엔진 소음과 진동은 꽤나 불편했다. 하지만 승무원들의 친절한 미소와 예의 있는 행동은 TV 광고 속 모습 그대로였다.
제주도에 도착한 후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수목원, 전시관, 한라산 등을 관광했다. 한라산은 백록담까지 등반했는데 나름대로 힘이 들었다. 등반코스가 여러 가지인데 학우들이 등반한 코스는 코스 길이가 짧고 경사가 가파른 코스였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20대 청년들이 등반하기 때문에 코스를 그렇게 잡은 것 같았다. 하산할 때 어찌나 힘이 들던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일행 중에 꼴찌로 내려오고 말았다.
관광지에서도 대학생들은 이성에 관심이 많은 때라 우리 학과 학우들은 여학우들과 함께 놀기를 원했다. 그래서 과대표가 여학우들이 많은 타대학 학과들과 접촉했었다. 여학우가 대부분인 두 개 학과랑 연결되어 함께 놀았다. 하루는 P대학 무용과 여학우들과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며 놀었고, 다른 날은 K대학 유아교육과 여학우들과 제주에 있는 모대학교에서 만나 대화했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학우들은 즐거워했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 동영상을 많이 찍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이 사진기로 찍어 인화한 이삼십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얼마 전에 아내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제주도라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대학생 때의 수학여행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