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이었다. 모교 동문회보를 우연히 보다가 한쪽 지면에 있는 광고가 눈에 띄었다. 내용은 재단에서 운영하는 H사이버대학원에서 2025년부터 온라인 박사과정이 신설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국내 최초라고 적혀 있었다.
'사이버대학원 박사과정? 원격으로 박사과정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사이버대학원처럼 원격으로 공부하는 대학원은 석사과정까지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믿기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박사과정 공부는 내 인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20대 후반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기 전, 부모님은 나보고 취업하라고 권유했다. 부모님은 내가 박사과정에 진학해 졸업하게 되면 30대 나이가 될 것이고 고학력이 될수록 취업문이 좁아져 취업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30살이 넘어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취업한다고 하면 취업이 잘 될까 생각해 보았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부모님의 권유대로 석사졸업 후 취업을 선택했다.
청년시절에는 회사 다니는 것이 바쁘고 결혼할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진학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 남아있던 박사공부에 대한 미련이 40대가 되니 슬금슬금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련은 50살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박사과정에 지원할 경우를 대비해 수년 전부터 나름대로 준비했었다. 20대에 다녔던 대학원 석사과정 성적이 좋지 않아 40대 후반에 연관된 학과의 대학원을 한번 더 다녔다. 물론 야간에 다니는 특수대학원이었다. 다행히 석사과정 성적은 나름 괜찮았다.
그런데 우연히 본 동문회보의 광고내용이 나를 유혹한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50대 나이에 박사과정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이버대학원은 원격으로 수업을 들으니 교수, 학우들과의 교류가 힘들 것만 같았다. 그래도 이왕 결심했는데 한 번 지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이버대학원 기계IT융합공학과에 지원했다.
"지원자님.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앞으로의 학업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사이버대학원답게 면접은 줌(Zoom)으로 진행되었다. 면접관의 질문에 학력, 경력과 학업계획에 대해 지원서에 적은 내용을 토대로 말했다.
"지원자님이 하시고자 하는 연구에 대해 우리 학과에는 지도해 줄 교수님이 안 계세요"
면접을 담당했던 교수님 중 한 분이 나를 지도해 줄 교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지도교수 컨택을 하지 않고 지원했기 때문에 불안했었다. 면접관이 대놓고 이렇게 말하니 분명 불합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예상대로였다. 결과를 발표하던 날, 지원사이트에서 결과를 확인했다. 불합격이었다. 그런데 애매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불합격이지만 예비합격 4위라는 것이었다. 예비합격이란 추가합격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불합격이지만 합격자 중에서 포기자 등 결원이 발생할 경우에 추가로 합격시켜 주겠다는 말이었다. 포기자가 발생하면 예비 1위부터 전화연락을 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예비 4위가 추가합격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 같았다.
이대로 포기하기가 아쉬웠다. 한 군데만 더 지원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서핑하다가 H대학교 대학원 컨설팅학 박사과정에 지원서를 작성했다. 2025년 1월에 수시모집을 하는 대학원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모집요강에 학업계획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 없었다. 이 서류들은 제출하지는 않지만 면접에서 평가하는 모양이었다. 지원자 입장에서 부담이 적어 좋기는 하지만 면접 볼 때 부담이 될 것 같았다.
면접을 보기 전에 학과 홈페이지에서 교수님들의 프로필을 살펴보았다. 낯선 대학원이라서 아는 교수님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만약에 대학교 후배가 교수로서 나를 면접하는 일이 생기면 기분이 묘해질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나를 모르는 교수님들만 있는 대학원이 공부하기에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살이 넘으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면접에서는 평이한 질문을 받았다. 자기소개를 하는 것과 학업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대학원에 바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받았다. 모두 예상가능한 질문이었다. 질문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두었던 내용대로 답변했다. 느낌이 괜찮았다. H사이버대학원처럼 면접을 망치지 않았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얼마 전인 2월 말에 H대학교 대학원 입학식이 있었다. 석사 졸업 후 29년 만의 박사과정 입학이라 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하지만 입학동기들과 도와가면서 앞으로의 학업을 이어나간다면 좋은 결실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