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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사업과 불로소득

by 선명이와 지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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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를 퇴직해도 원하는 직장에 재취업하기 쉽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50대 후반의 나이라서 그런지 청년시절보다 노후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친구의 자녀가 20대 청년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내 나이가 노년기에 가까워 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노후를 대비해 일을 조금만 하고도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이 들지만, 이런 생각은 요즘만 드는 생각이 아니었다. 20년 전 청년시절에도 가끔 생각났다. 언제까지 다닐지 모르는 불안정한 회사생활을 생각하면 노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청년시절부터 여러 번 나에게 유혹처럼 다가온 사업이 있었다. 그건 바로 다단계 사업이었다.




내가 다단계 사업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생 때였다.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다단계 회사인 A회사 제품에 대해 말하면서부터다. 다단계는 네트워크 마케팅이라고도 부르며 피라미드식으로 판매원을 모집하는 사업이다. 본인 밑에 판매원을 모집하여 가입시키고 그 판매원도 본인 밑에 다른 판매원을 가입시키는 구조이다.


후배는 다단계 사업이 불법적인 경우가 많고 판매원들이 다단계 회사의 제품을 강제로 구매하거나 불필요하게 구입하여 손해를 보는 일이 잦다고 했다. 그래서 다단계 사업에 관심이 없으며 관련 모임에 참석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나는 다단계 사업에 호기심은 생겼지만 후배가 다단계 사업에 너무 부정적으로 말해서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다단계 사업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H회사에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업무상 알고 지내던 고객사 직원 W과장이 A회사 사업설명회에 같이 가보자고 했다. W과장은 A회사가 글로벌 다단계 회사이며 제품들이 다양하고 품질이 좋다고 말했다. 사업설명회는 수요일마다 서울 강남에서 하는데 한 번 가보자는 것이었다. 사업설명회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던 터라 호기심이 생겨서 W과장의 제의를 따랐다.


A회사 사업설명회는 주로 사업에 성공한 회원들이 연단 앞에 나와서 본인의 성공 비결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회사로부터 후원수당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성공 경험담을 들으면서 그들이 이룬 개인적인 성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달리 그들이 이룬 성과의 수 십 분의 일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발표가 끝날 때마다 청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우리 회사 사업을 열심히 하다 보면 노후에 거의 일하지 않고 관리만 하면서 지속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도 돈을 벌며 살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불로소득은 평상시에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었다. 하지만 불로소득으로 살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이걸 이루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았다. 또한 회사를 다니면서 다단계 사업을 제대로 병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어서 A회사의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렇게 수개월 동안 A회사 사업설명회에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는데 W과장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W과장은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더니 사업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본인을 가입시켰던 유치자가 다단계 사업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W과장이 그만두니 나도 사업을 시작할 원동력이 없어졌다. 그래서 함께 그만두었다. 이렇듯 다단계 사업은 나에게 좋지 않은 경험으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이십 년이 지났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했고 회사가 어려워져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의 친구 J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빠. 요즘 뭐 하세요? 어디 다니는 데 있으세요?"

"회사를 다니고는 있는데 경기가 안 좋아 회사가 어렵네요"

"그러시군요. 제가 요즘 부업으로 다단계 사업을 하는데요. 오빠가 생각나서 전화드렸어요"


J는 한국음악을 전공한 전도유망한 예술가였다. 아내를 통해서 J가 돈이 부족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한다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J가 본업인 예술활동 외에 다단계 사업을 부업으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J는 열심히 사업을 할 사람을 물색하다가 내가 열심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J는 다단계 회사인 B회사의 제품들을 소개하면서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했다. B회사는 국내 토종기업으로서 창업자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이 회사는 국내에서 창업했지만 글로벌 계획을 가지고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J의 권유대로 사업자로 회원가입을 했다. 또한 이 회사의 홍보전략 중 하나가 '절대 품질 절대 가격'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회사 제품이 타사 제품에 비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 같았다.


B회사에서 후원수당을 받으려면 본인 밑 좌측 라인에 가입한 회원들의 매출합계와 우측 라인에 가입한 회원들의 매출합계가 동시에 일정 금액 이상을 달성해야 가능했다. 영업을 하려니 혼자 하기가 꺼려져서 친구 K에게 같이 하자고 권유했다. K와 나는 사회적 경험과 성격이 많이 달랐다. K는 영업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나와 달리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잘 거는 성격이었다.


K와 나는 지인들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 처음에는 안부를 물으며 농담도 하다가 차차 본론인 B회사 제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B회사와 제품들에 대해 소개했다. 지인들을 회원가입 시키기 위해서는 B회사 제품들이 좋다고 말해야 했다. 사실 B회사 제품들 중 사용해 본 제품이 몇 개 안 되었다. 따라서 B회사 제품들을 별로 사용해 보지 않아서 남들에게 이 회사의 제품이 좋다고 말하기가 꺼려졌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B회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지인들은 소비자로서 제품구매는 하겠는데 사업자가 되어서 활동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꾸준함을 잃지 않고 추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수개월 간 활동해도 후원수당을 거의 받지 못했다. K는 보험설계사의 경우에 고객 한 명만 보험계약을 체결해도 수수료를 꽤 받을 수 있을텐데 다단계 사업은 언제까지 회원가입을 시켜야 제대로 된 수당을 받을 수 있냐며 사업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 같았다. 때마침 다니던 3D프린터 제조회사가 매출급감으로 직원들을 구조조정하였다. 그래서 퇴사하게 되었고 실업급여를 받게 되었다. 고용센터 담당자는 실업급여를 받으면 다단계 사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노후를 위해 시작했던 다단계 사업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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