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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명이와 지덕이 Mar 26. 2024

직업소개소 사장의 영업비밀

최근 신문기사에 의하면 지난 30여 년간 형성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 중국동포(조선족) 상권이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코로나19 시기에 높은 임대료를 겪었고 최근 불경기까지 겹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경기도 부천시와 시흥시 등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3년 11월의 어느 날, 대림동은 요즘과 달리 중국동포와 동북 3성 출신 중국인의 상점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이곳 주변을 지나가면 직업소개소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날은 내가 직장을 그만둔 지 2년 3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그사이 나는 행정사 자격증에 관심을 가지고 시험을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무슨 일을 할까 찾고 있었다.


내가 집에서 꽤 먼 거리의 대림동까지 간 이유는 비록 행정사가 되지 못했지만 직업소개소에서 외국인 구직자들을 상대로 하는 일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행정사 시험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닐 때 담당교수는 수업 시간에 '행정사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다양한데 직업소개소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한 업무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대림동의 A직업소개소 소장에게 연락을 했고 통화한 후 만나기로 했다. 2호선 대림역에서 내려 명지성모병원을 지나가자 직업소개소가 보였다. 직업소개소가 있는 건물은 보수한 지 오래된 것 같았다. 계단이 깨끗하지 못하고 화장실이 낡아 보였다. 나는 사무실로 들어가서 소장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에게 함께 근무하는 분들을 소개해 주었고 내가 사무실에서 앉아 업무 할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그는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분들이 직원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선불(拂)로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내고 직업소개업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이들이 내는 돈은 책상, 의자와 화장실 등 시설 사용을 위한 자리 비용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곳은 사장들이 각자 개인사업을 하는 곳이라 별도의 출퇴근 시간을 정해놓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사장들이 어떻게 구직자들을 찾아내어 취업 알선을 하는지 궁금했다. 이미 구축해 놓은 직업소개 플랫폼 사이트가 있을까 궁금했다. 소장에게 물어보니 그런 것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의 구직 사이트를 검색해 보라고 말했다. 특히 벼룩시장 사이트나 신문 등을 검색해서 외국인 구직자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업소개소에서 따로 교육시켜 주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곳의 사장들은 외국인 구직자들에게 직장 알선을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을 했다. 그러려면 일단 구직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오게끔 전화 통화 등을 통해 연락해야 했다. 그런데 처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구직자 데이터와 영업 노하우 등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사무실에 앉아 아무리 인터넷 검색을 해도 시간만 갈 뿐 성과가 없었다. 심심하니 가끔 옆에 앉아 있는 사장과 잡담만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장들의 경력은 다양했다. 무역업 자영업자, 광고회사 임원, 건설회사 직원 등 과거 이력이 각각 다 달랐다. 특이한 것은 이곳의 주된 일이 외국인을 상대로 하고 업무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서인지 중국동포, 신용불량자나 전직 조폭 출신 사장도 있었다.

  

이삼일쯤 지났을까. 내가 직업소개소에 와서 영업을 한 건도 못하여 수입이 전혀 없는 것을 본 소장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그는 사업하겠다고 온 초보 사장들은 이곳에서 돈을 벌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벼룩시장 사이트나 신문을 통해 구직자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고, 그렇다고 벼룩시장 사이트의 한쪽 면에 '구직자 취업알선' 관련 광고를 내는 것은 벼룩시장 운영회사에 광고비를 내야 하니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루에 한두 명씩 외국인에게 취업 알선을 하여 수수료를 받는 사장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 근처는 찾아오는 외국인으로 인해 활기가 띠었는데 우리 근처는 조용했다. 나는 그들이 어떻게 해서 외국인에게 직장을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지 궁금했다. 


"하는 일은 잘 되세요? 돈은 벌었나요?"

"아직 하나도 못 벌었어요"


방금 전, 사무실로 찾아온 중국동포에게 직장을 소개해 준 A사장이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돈을 전혀 벌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서 일한 지 여러 해가 지났다고 말했다.


"처음 일하시는 분들은 돈을 못 벌어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 일을 하려면 노하우가 필요하죠. 노하우는 하루 이틀 일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에요"

"네"


그는 오른손으로 들고 있는 수첩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중국동포 구직자가 사무실에 들어왔을 때 그는 수첩을 뒤적이며 무엇인가 살펴보았었다.


"이 수첩에 제 영업 노하우가 적혀 있어요. 여기에 외국인 구직자 명단이 있죠. 여기에 적혀 있지 않은 내용은 제 머릿속에 있구요"


그러면서 그는 오늘 퇴근 후에 직업소개소 사무실 사장님들이 음식점에 모여 식사할 건데 오시라고 오셔서 친해져야 영업 노하우를 조금씩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퇴근 후 저녁시간이 되었다. 사무실 옆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동포 사장과 함께 음식점을 찾아갔다. 음식점은 고깃집이었으며 주인은 중국동포였다. 우리가 도착해 보니 이미 여러 명의 사장이 한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단골 음식점이었는지 우리에게 중국동포 주인은 서비스라며 가끔씩 음식을 더 갖다 주었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가고 사장들은 식사 후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밤 9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갈 생각을 안 하고 술과 살아가는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었다. 나에게 영업 노하우나 외국인 구직자 데이터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밤늦은 시간이라 인사를 하고 먼저 음식점을 나왔다.


그들은 날마다 업무가 끝나면 단골 음식점에서 저녁 식사와 술을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며칠 동안 퇴근 후 그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런데 날짜가 지나가도 나에게 업무상 도움이 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음식점에서 나오는 음식만 달라질 뿐 밤 9시가 넘어서 술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이 멀어서 먼저 가겠다고 말하고 집에 가기 바빴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저녁식사 시간에 업무 노하우나 구직자 데이터에 대해 사장들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업무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나와 얼마만큼 친해져야 본인들의 노하우를 조금씩 알려줄까?'라는 의구심만 들뿐이었다. 그들은 구직자에 대한 영업 노하우가 자신들의 생업과 연관되기 때문인지 공유하기를 매우 꺼리는 같았다. 12월 초, 나는 직업소개소 소장에게 이곳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대림동의 직업소개소로 출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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