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나무위키 사이트에 '강의평가란 대학교에서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에게 설문지 형식으로 해당 강의에 대한 만족도를 평가하여 다음 학기의 강의를 대비하고 강의를 불성실하게 한 교수들에게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적혀 있다.
강의평가를 학교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강의를 듣고 수료증을 받아야 하는 각종 보수교육도 강의 만족도 평가를 하고 있다. 요즘에는 강의평가를 할 때 익명성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강의평가지에 이름을 기입하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교육 수강생이 교육을 마친 후 강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할 때 평가 항목들에 대한 점수와 함께 이름을 반드시 적어야 한다면 어떠할까. 16년 전, 내가 다니던 회사는 교육을 받고 난 후 강의평가지에 사번과 이름을 반드시 기입한 후 평가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교육팀 담당자는 평가지에 반드시 사번과 이름을 적으라고 말했다. 나는 평가를 익명으로 하지 않는 것에 민감하지 않았으므로 별생각 없이 사번과 이름을 기입하였다. 1990년대 초반, 내가 대학생 때 종강시간에 담당 교수의 강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에도 종이 평가지에 학번과 이름을 적는 란이 있어 적어 제출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선명 대리 있어요? 어느 분이죠?"
"네. 왜 그러시죠?"
평가지를 제출하고 며칠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교육팀의 A대리가 기술팀 사무실에 들어오더니 나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언성을 높여가며 화가 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이대리. 왜 이렇게 평가점수를 낮게 줬어요? 이대리 때문에 이번에 강의했던 강사를 앞으로 섭외할 수 없게 되었어요"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의 갑작스러운 화난 말투에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자기가 화난 이유를 말했다. 강사가 다음에도 회사에 와서 강의를 할 수 있으려면 교육 수강생들로부터 강의평가를 80점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하는데 내가 점수를 80점 미만으로 박하게 주었다는 것이었다. 교육 수강생 한 명이라도 80점 미만으로 점수를 주면 해당 강사는 다음부터 우리 회사에서 강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팀의 방침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다음부터는 강의에 대한 평가 점수를 후하게 주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지 못한 그의 설명에 놀랐다. 그는 내가 제출한 강의 평가결과 때문에 상사로부터 잔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는 교육생들이 다분히 주관적으로 매기는 평가점수에 대해 회사 교육팀이 아무런 사내 공지도 없이 자체적으로 강의에 대한 평가점수 하한치를 마련하여 일률적으로 적용하였다는 점이었다. 둘째로는 강의 평가에 대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는 회사의 이런 점들이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했다.
이후에 나는 회사에서 제안서를 작성하거나 프로젝트팀에 합류하여 일했으므로 사내 교육을 거의 받을 일이 없었다. 따라서 교육팀이 계속 기존 평가 방침을 고수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퇴사 후에는 내가 어떠한 온오프라인 교육을 받을 때에도 강의평가지에 실명을 기입하여 제출하는 경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