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강아지똥>, 권정생
“무수히 존재하고 있는 생명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느낍니다.”
권정생 선생님께서 남기셨다는 당선 소감은 그야말로 권 선생님의 인격과 삶을 축약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나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낸 권정생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존재를 사랑하고 그들에게 베푸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동화 <강아지똥>은 그의 삶을 잘 보여주는 선명한 비유와 같습니다. 똥, 그것도 강아지의 똥이라는 이유로 세상에 나오자마자 비난을 받지만 길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이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강아지똥. 누군가는 ‘존재’라는 이름도 붙여주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여정을 통해서 우리는 인생의 많은 면모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 강아지똥은 흙덩이, 감나무 잎, 병아리 엄마 그리고 민들레 등 다양한 존재를 만나지요. 그중에서도 이번 개정판에 추가되었다는 감나무잎의 이야기가 유난히 저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강아지똥과 담담한 목소리의 감나무 잎이 나누는 대화에는 삶의 다양한 측면이 암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엄마 나무에서 태어난 우리는 반드시 엄마에게서 떨어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엄마가 새로운 이파리를 피울 수 있거든요. “엄마야! 불쌍해라.”하는 강아지똥의 말에 감나무 잎은 그저 “어쩌지 못하는” 일이라고 대답합니다. 마치 그것이 인생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감나무 잎의 말에 강아지똥은 “흙덩이는 죽지 않고 살아서” 갔다고 반박합니다. 그러자 감나무 잎은 “흙덩이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나 봐“라며 생의 길고 짧음은 각자 다르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자 강아지똥이 “왜 세상이 그렇게 복잡“하냐며 따집니다. 하지만 감나무 잎은 그저 ”맞아. 너처럼 한밤중에 댕그랗게 혼자 울고 있는 애도 있고 나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하고”라는 답만 내놓습니다.
그렇게 덤덤하게 답변을 하던 감나무 잎의 목소리가 이상해집니다. 목소리가 왜 그러냐는 강아지똥의 마지막 물음에 “난 이제 곧 숨이 질 거야. 그래서 그래.”라며 초연하게 말합니다. 그리고는 밤바람이 휘익 불어 감나무 잎이 홀랑홀랑 굴러갑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어디론가’ 굴러가 버린 것입니다.
슬프지도, 극적이지도 않은 이유 없는 감나무 잎의 사라짐이 좋았습니다. 그 마지막 장면이 있어 이 대화가 온전한 ’인생‘의 비유로 완성된 듯합니다. 어디에서 왜 왔는지도 모르지만 나름의 삶을 살다가 알 수 없는 어둠 속으로 굴러가 버리는 것. 감나무 잎은 그런 게 삶이라고 말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