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패터슨

현대 젊은 남성의 구원자?

by Park parks at the park

조던 피터슨: 젊은 남성들의 구원자인가?

조던 피터슨의 새 책 "We Who Wrestle With God"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성경의 이야기들을 신학, 심리학, 상징주의를 혼합해 재해석하며, 심지어 디즈니 영화의 비유까지 동원한다. "미녀와 야수"로 아담과 이브를 설명하고, "라이온 킹"의 스카를 통해 카인을 이야기한다. 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목사가 디즈니+ 구독권을 받은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그런데 이런 독특한 스타일의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강연은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다. 최근 뉴욕 근교에서 열린 북 투어에서는 피터슨 포스터와 머그컵이 판매되었고, 기타 공연까지 있었다. 그가 삼중 린넨 정장을 입고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의 청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매력적인 인물로 만드는 것일까?


시대적 맥락

정보화 시대로의 전환은 남성들, 특히 젊은 남성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안겨주었다.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던 육체노동의 가치는 하락했고, 교육에서도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 MeToo 운동과 함께 '독성 남성성'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많은 젊은 남성들은 사회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의 정치학 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적했듯이, 피터슨과 같은 인물의 부상은 "실제로 큰 사회경제적 변화에 의해 추동된" 것이다. 남성들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만한 작은 바이올린이 있을까?"라는 냉소를 불러일으키던 시대에, 피터슨은 과감히 "소년들은 현대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고 선언했다.


세로토닌의 정치학

이런 상황에서 피터슨은 흥미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그는 랍스터의 계층 구조를 예로 들며, 승자가 더 많은 세로토닌을 받는 생물학적 구조를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젊은 남성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너희의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설명은 복잡한 사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동시에 많은 젊은 남성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는 역설적 효과를 낳는다. 그들의 고통이 단순한 개인적 실패가 아닌, 보다 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모호성의 수사학

하지만 피터슨의 전략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의 모호한 수사법이다. "현대 메타-마르크스주의자들, 포스트모던 권력 플레이어들은 말하자면 마르크스를 전이시켰다"와 같은 그의 문장들은 지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모호성은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1. 그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검증하기 어렵게 만든다

2. 청중들이 자신의 해석을 자유롭게 투영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그의 새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성경 이야기를 디즈니 영화와 뒤섞고, 구식 영어와 현대 심리학 용어를 혼용하는 방식은 독자들이 명확한 논리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게 만든다.


구원자인가, 위로자인가?

피터슨이 젊은 남성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단순한 메시지들이다: "똑바로 서라", "어깨를 펴라", "책임감을 가져라". 이는 새로운 통찰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자기계발서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조언들을 복잡한 심리학적, 철학적, 종교적 개념들과 결합시키는 방식은 독특하다. 이는 마치 현대의 고해신부처럼, 젊은 남성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정당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의 강연에서 자주 보이는 눈물은 이러한 공감적 태도를 극적으로 강화한다.


결국 성별이 아니라 젊은이에 대한 메시지가 중요하다.

조던 피터슨은 구원자라기보다는 시대적 증상을 보여주는 지표에 가깝다. 그의 인기는 현대 사회에서 젊은 남성들이 겪는 어려움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그의 모호한 수사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의 불안과 혼란을 달래주는 위로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진정한 해결책은 피터슨의 복잡한 수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남성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들이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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