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다지이 오사무
소설 속 인물들이 요조에 대해 극과 극의 평가를 한 것처럼, 나 역시 두 가지 상반된 시선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읽었다. 실제 그의 삶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나는 소설 속 묘사와 연보를 참고해 이해하고자 했다.
그를 ‘총명한 부잣집 아들이 방탕한 생활 끝에 몰락하며, 자신의 실패를 미화하듯 변명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실패자이자 비겁자로 읽힌다. 그는 자신의 인생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좌익 운동을 그만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이유였고, 생활이 곤란해졌을 때에는 "성실하게 살면 집에서 돈을 대줬을 텐데"라고 불평하며 책임을 외부로 돌린다.
그는 자기보다 더 삶이 고단하거나 외로운 여자들의 동정심에 기대어 살아갔고, 타인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혹은 세상의 파도에 휩쓸리며 되는대로 살았다. 가까이 두기엔 음울하고 기운을 앗아가는 기운이 강한 인물처럼 느껴지며, 실제로 그를 사랑하거나 돕고자 다가온 이들은 행복해지기 보다는 불행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신을 결코 속이지 않고 내면의 어둠을 끝까지 직면하려 했던 인물로도 읽힌다. 이처럼 끝없이 노력하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 다자이 오사무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는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자기 희생적인 삶을 산 사람이 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어둠을 들여다볼 수 있듯이 타인의 어둠도 관찰할 수 있었고, 세상의 부조리와 사람들의 추한 의도를 쉽게 간파하는 재능을 가졌다. 뛰어난 두뇌와 배경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상류층으로 살 수도 있었겠지만, 재능과 더불어 양심이 눈을 떠 버린 것이 문제였다.
그가 살아간 전란의 시대는 불의에 눈감는 것이 오히려 생존의 조건이었던 시대였다. 시대 전체와 싸우기는 버겁고 두려웠지만, 마냥 눈감고 침묵하고 사는 것은 저항하며 죽는 것보다 더 어려웠기에, 그는 가족들의 기대처럼 살 수는 없었다.
무지해서 순수한 어린 시절에는 옳은 것이 선한 것이며, 선한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사람들은 '알아주지도 않는 가난하고 고독한 도덕책의 군자보다는, 야비한 건물주의 화려한 인생이 더 낫다', '잠시 눈 감으면 세상 사는 것이 편해진다', 라는 삶의 지혜를 배운다. 많은 사람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을 가진 채 침묵하고 타협하며 살아간다. 훌륭하게 사회화된 인간은 부조리를 어느 정도 눈 감는 인간이다.
그러나 다자이 오사무는 전란의 시대, 진격하는 일본의 이면을 보았고, 세상에 가담할 수 없었다. 눈 떠버린 그의 양심은 타협하여 살아가기보다는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죽을 것을 요구한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서 우리 마음속 가장 구질구질한 부분의 한 조각을 대신 읽어 준 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지만,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둠에 빛을 비추어 그 모양을 알려준 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의 외형적 형태는 부족할 것 없는 집의 재능있는 도련님으로 태어나 자살로 몰락한 듯 보인다. 그러나 내적으로 보자면, 텅 빈 공허와 어둠에서 출발해 시대 속의 자기를 직시하고 난 뒤, 이를 세상에 드러내고 죽음으로써 채우고 완성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