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타노를 왔는데도 이리도 좋지 않다니
어제 아주 일찍 잠에 든 탓에 여느날보다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호스텔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한번도 자고 나서 개운하다는 생각이 든적이 없다. 그렇게 1~2주 정도를 생활하니 피로가 누적이 되었다. 그러니 여행을 나가도 금새 지치기 마련이다. 근데 오늘은 그중 나름 개운하게 잠을 자고 일어난 느낌이다. 원래는 8시쯤 일찍 일어나서 아말피행 시타 버스를 숙소 근처에서 탈 예정이었으나 이미 눈을 뜨니 오전 아홉시다. 그래서 급히 아말피나 포지타노를 갈 방법을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소렌토로 기차를 타고가서 소렌토에서 버스로 갈아타서 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가는 방법이 어렵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 일단 가장 빠른 소렌토행 기차를 예매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이탈리아 남부로 오고 난후 옷을 입기가 더 애매해졌다. 해가 나는 낮에는 타들어가는 더위가, 해가지는 밤에는 서늘한 밤공기가 나를 괴롭혔다. 일단 밤이 되기전에 돌아오자라는 생각으로 반팔 반바지의 가벼운 옷차림으로 길을 나섰디. 기차를 타기위해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중앙역이 아닌 작은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은 굉장히 낙후되어있었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건물과 빨랫줄 투성이 아직 발전되지 않은 나폴리의 적나라한 민낯을 느낄 수 있었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소렌토행 직행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모여있었다. 그중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시간이 되면 다같이 기차를 타러 이동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함께 무리에 끼어 기다리다가 함께 이동해서 직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 열차는 주요 관광지를 지나는 열차같았다. 나는 가지 않았지만 나폴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주 들른다는 폼페이를 지나는 열차였다. 나는 한시간여정도를 타고 소렌토역에서 내렸다. 소렌토역에서 내려 역 안의 매점에서 포지타노행 시타버스 티켓을 샀다. 티켓을 사고 나오니 역 앞에 누가봐도 버스를 기다리는 듯한 줄이 있었다. 가서 줄에 서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포지타노를 가기위한 줄이라고 한다. 나도 뒤에 줄을 잠시 서있으니 포지타노로 향하는 시타 버스가 이내 도착했다. 우르르 타는 사람들 따라 나도 버스에 탔다. 오른쪽 편으로 타야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인터넷 꿀팁에 따라 오른쪽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살면서 꼭 한번은 가봐야한다는데 살면서 봐야할 바다가 왜이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굽이굽이 산길 절벽길을 따라 30분정도를 가자 아름다운 포지타노가 보이기 시작했다.
포지타노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하고 나는 완전히 아래쪽에 내려주기 전에 도시의 위쪽에서 미리 내렸다. 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을 좀 더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위쪽에서 천천히 사진을 찍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멀리서 보는 바다는 이미 맑고 아름다웠다.
포지타노 해변으로 가는길 이곳에 오면 많이들 먹는다는 레몬슬러쉬를 발견했다. 마침 목이 마르던차라 2유로를 내고 한컵을 주문했다. 새콤한 슬러시가 종이컵에 담겨져 나왔다. 양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목마를때 차가운 레몬맛 슬러쉬를 마시니 잠시 갈증을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레몬슬러쉬 한컵을 들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해변으로 향했다. 막상 해변에 도착하니 물론 아름다운 해변이었지만 생각보다 아담한 해변이 조금은 실망감을 주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해변은 일부 식당들이 점유하고 있던 탓에 40유로 가까운 돈을 내야만 선베드와 함께 그 해변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 옆에 굉장히 좁은 부분의 해변만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상업화된 포지타노의 해변은 기대 이하였다. 여기서 딱히 시간을 오래 보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보다는 배를 타고 한번에 나폴리로 돌아가보기로 했다.
먼저 선착장에 가서 2시간 뒤 나폴리로 떠나는 배 티켓을 미리 구매했다. 이후 해변에 잠시 발을 담그고 앉아있다가 햇볕이 너무 뜨거워 바닷가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곳에서 레몬맥주와 햄버거를 먹으며 배 시간을 기다리며 시간을 떼웠다. 진짜 이곳이 별로인걸까 아니면 오랜 여행에 매너리즘에 빠진 내가 문제인걸까 고심했다. 누군가는 정말 아름답다고 할 이 포지타노를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다니 여행을 끝낼때가 온 것 같다. 밥을 먹고 기념품샵에 들러 레몬캔디를 몇개 샀다. 그리고는 4시 30분 나폴리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배는 소렌토를 들러 나폴리로 바로 향했다.
기분이 많이 좋지는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갑자기 쳐지는 여행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지않는 컨디션이 반복되고 어느정도 여행기간이 길어지다보니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포지타노를 보고도 큰 감흥없이 돌아왔다는게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힘든 포지타노로의 당일 치기 일정을 끝내고 나니 힘이 빠진다. 얼른 밥을 먹고 숙소에서 밀린 글을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슬슬 오히려 한국이 그립니다. 한때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의 그리운적이 있었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매일매일 새로운 걸 보며 사는 삶 말이다. 하지만 되려 긴 여행을 하다보니 한국에서의 내 집과 내 일상이 그리워진다. 하루하루 안정적인 삶을 살며 똑같은 일상을 사는 게 얼마나 안점감을 주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매일 새로운 것을 하지 않아도 되고, 매일매일을 사진으로 꼭 남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편안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역시 사람은 뭐든지 없어보아야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하니 지친 몸을 이끌고 나폴리 시내에서 피자를 시켜먹었다. 두번째로 유명하다는 디 마테오 피자집을 갔지만 어제 갔던 소르빌로의 감동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나폴리에 온 사람은 꼭 소르빌로를 가보길 바란다. 돌아오는 길에는 밤만 되면 흥겨워지는 나폴리 시내의 분위기에 잠시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발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내일은 아침일찍 포르투로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