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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17. 2023

포르투1, 매너리즘은 내 탓이 아니야

포르투가 이렇게나 좋을 줄 이야


나폴리 숙소에서 주는 조식을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무료로 주는 조식이니 그리 맛이 있지는 않다. 비행기를 타야하니 무게를 조절해서 짐을 꼼꼼히 챙겼다. 숙소 근처에 나폴리 공항으로 향하는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다. 울퉁불퉁한 돌길을 캐리어를 끌고 오래가지 않아도 되니 참 다행이다. 버스에 오르니 버스비 5유로를 현금으로 내라한다. 다행히 캐리어안 작은 가방에 현금 남는 것이 조금 있었다. 버스에 올라 캐리어를 열고 현금을 찾았다. 이제는 사람들 한복판에서 캐리어를 여는 일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 나폴리의 교통은 극악이었다. 시내는 서로 먼저가겠다는 차들로 붐비고 서로 경적소리를 내며 짜증을 냈다. 좀처럼 갈 생각을 않는 버스에 멀미를 하기도 했다. 가뜩이나 컨디션도 그리 좋지 않아서 살짝 나폴리를 한시바삐 떠나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교통 체증 구역을 벗어나 조금 달리니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저가항공인 이지젯 항공에 탑승 수속을 해야한다. 저가 항공에선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한다. 



나는 따로 탑승권을 출력해오지 않아서 탑승권을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물으니 앞쪽 창구로 가라고 한다. 근데 막상 앞쪽 창구로 가니 탑승권을 제시하라며 성질을 낸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 저쪽에서는 탑승권을 발급해주지 않는다고 어디로 가야할지 다시 물으니 재차 그쪽으로 가라고만 한다. 그래서 다시 가서 물어보니 그 사람이 그제서야 여권을 보여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사람이 바뀌지도 않았다. 저가 항공의 혼란은 언제나 예상하곤 하지만 항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래도 어찌됐건 짐을 무사히 부쳤으니 긴장이 풀린다. 뭐라도 좀 먹을까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빵들이다 도저히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살짝 우울한 마음이 들어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니 전화가 온다. 그래도 한국에서 온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좀 났다. 친구에게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전화로 푸념을 늘어 놓으니 또한 마음이 한결 낫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비행기 탑승시간이다. 


확실히 좌석이 좁은 이지젯 항공에 몸을 실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여행을 끝내고 포르투갈로 간다. 여행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지만 매너리즘도 함께 끝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차의 변화를 포함하여 약 4시간 정도를 비행하니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포르투갈에 도착하여 핸드폰의 비행기모드를 해제하니 간만에 보는 국가간 이동 경고 문자가 온다. 오랜 여행으로 몸은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기대하던 새로운 나라에 도착하니 또 마음은 신나기 시작한다. 공항에서 짐을 찾아 지하철을 타러 나왔다. 한시간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면 숙소 근처 역에 내릴 수 있다. 그래도 오늘 저녁부터는 새로운 동행과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같은 아름다운 나라를 경험하고 왔으니 건물이나 풍경부분에서는 포르투갈에 딱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포르투 지하철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포르투의 모습은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지의 북적북적함에 지쳐 있었던 것일까 사람이 많지 않은 포르투 주택가의 한적함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길 마주한 집들은 정말 포르투갈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집안의 모습을 차마 알 수 없지만 포르투갈 집은 각각 저마다 다른 타일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집 걸러 한집 다른 타일을 부착해 서로다른 외관을 갖고 있는 집들이 굉장히 아름다웠다. 매너리즘에 빠져 지쳐있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15kg 캐리어를 끌고도 신나서 방방 뛰는 내 모습을 보았다. 마치 거리에서 풍기는 냄새조차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풍경을 감상하며 15분정도를 걸어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가볍게 짐을 풀었다. 그리고 동행이 기다리고 있기에 빠르게 포르투 시내로 향했다. 내 비행기가 20분정도 지연되는 바람에 만나기로 한 시간이 좀 늦어져 발걸음을 재촉해야했다. 하지만 발걸음을 구지 재촉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내로 가는 골목골목 너무 아름다운 집들과 풍경 그리고 일몰의 하늘의 나의 발걸음을 절로 신나게 만들어주었다. 



매너리즘이라는 것도 참 단순하다. 어찌보면 이탈리아는 내게 그리 맞지 않은 여행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긴여행 때문에 지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나는 이 좋은 이탈리아에서도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또 한적하고 아기자기한 포르투에 도착하니 온데간데 사라져버렸다. 이탈리아는 아름다웠지만 어딜 가든 관광객들로 붐볐다. 어딜가든 기다려야 했고 한적한 여유는 즐길 수 없었다. 이런 북적거림 자체가 내게 피로감을 주었던 것 같다. 매너리즘이라는 생각이 들었을때 때로는 나를 자책하기보다 나에게 이런 느낌을 들게하는 환경을 탓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탈리아보다는 포르투가 나에게 더 잘 맞는 느낌이 들었다.



동행은 도우루 강변 식당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골목 골목을 지나 도우루 강변이 보인다. 도우루강의 잔잔한 윤슬이 밤가로등 빛을 받아 일렁인다. 만나기로 한 식당의 테라스 자리를 둘러보니 한명이 열심히 메뉴를 보고 있다. 30살의 한솔이다. 늦었다며 멋쩍은 인사를 건네고 앉아 함께 메뉴를 보기 시작했다. 포르투에 먼저온 한솔이는 이곳의 유명한 음식인 해물밥을 먹어보는게 어떻겠냐 제안했고 나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해물밥 하나와 문어 샐러드 하나를 주문했다. 그래도 몇일만에 한국어로 하는 대화가 반가워 이런저런 대화를 쉴새없이 나누었다. 여행을 하면서 동행을 많이 만났지만 이렇게 30대의 고민을 직접적으로 나눌 수 있는 동행은 처음이어서 더 말이 잘 통하기도 했다. 한솔이는 낯을 좀 가리는 듯했지만 지난 여행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해지니 금새 편한해진듯 했다. 대화를 좀 하다보니 샐러드와 해물밥이 나왔다. 문어 샐러드는 부드러웠지만 조금 짰고, 해물밥은 되려 좀 심심했지만 해장하기에 좋은 시원함이 있었다. 두 음식 모두 화이트 와인과 즐기기에 좋았다. 한솔이도 나와 비슷한 6년차 직장인이다. 이 연차쯤되면 비슷한 고민을 한다. 직업에 대한 고민, 결혼에 대한 고민 그리고 잡다한 생각이 많아지는 나에 대한 고민들 말이다.


한솔이도 2주 정도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리스본에서 시작한 여행이 어느새 일주일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서로 여행의 목적을 이야기 하니 한솔이의 목적도 나와 비슷함을 알 수 있었다. 뭐 각자 다양한 말로 표현했지만 결국은 ‘생각 정리’였다. 취업후 정신 없이 달려 온 시간을 한번 돌이켜보고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하는지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훌쩍 여행을 왔다고 한다. 근데 어느새 여행의 절반이 다 가까워 오는데 하려던 생각정리는 하나도 못하고 여행이 마냥 즐겁다는 생각만 하고 있어서 때로는 생각 정리를 좀 해야하는데 하며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굉장히 참신한 발상이다. 생각정리를 해야하는데 못하고 있어서 또 조급함이 든다. 그래서 나는 되려 이렇게 말해주었다. 


“혼자 생각정리를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도를 닦는다고 해요, 사람들은 속세에서 그걸 못하니 산속으로 들어가기도하고, 불경을 외기도 하고, 밥을 먹지 않기도 해요, 근데 그걸 그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아닐 거 같아요.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거나, 여행같은 새로운 경험을 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책을 읽는 등의 행위를 통해 생각정리를 대신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 지금 충분히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법으로 생각정리를 잘하고 있는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왜냐면 생각정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수많은 생각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걱정이 되지 않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혼자 골똘히 해답을 내리는 건 우리에게 너무 힘든일이다. 새로운 경험이 그 정리를 도와준다면 그것으로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면 그또한 훌륭한 생각정리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한솔이는 나의 대답을 듣더니 생각보다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 한마디로 생각 정리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늦은 시간에도 식당의 웨이팅줄은 길었다. 와인 두잔만으로 살짝 오른 취기에 더 무언가를 주문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계산을 하고 나왔다. 잠시 도우루 강변을 걸었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래와 웃음소리가 들리니 가을밤의 강변이 완성이 되는 기분이다. 우리는 내일 오후 와이너리 투어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다시 어둑해진 포르투의 골목을 따라 걸었다. 호스텔로 돌아오는 길에도 골목마다 퍼지는 버스킹이 들려왔고 때로는 신난 사람들의 떼창도 들렸다. 나도 한편으로는 신나는 분위기에 편승하고 싶었지만 내 다리는 얼른 가서 쉬라며 숙소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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