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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밤 Oct 17. 2023

나는 정말 잘해왔고, 이대로만 하면된다.

어느새 여행의 끝자락


새벽 다섯시 눈이 떠졌다. 그래도 아주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안씻은채로 갈 수는 없었다. 일찍 일어나 단정히 몸을 씻고 짐을 정리했다. 이제 다음 여행지에서 펼칠일은 없기 때문에 캐리어가 닫히기만 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편히 정리 했다. 잊은 것은 없는지 꼼꼼히 돌아보고 체크아웃을 했다. 출입 카드를 건네니 체크 아웃은 이걸로 충분하다고 한다. 마지막 체크아웃이 시원섭섭하기만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거리로 나와 우버를 기다렸다. 포르투는 우버로 공항까지 가도 10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곧 하얀색 푸조 승용차가 도착했고 공항으로 가는 짐을 차에 실었다. 포르투의 밤거리를 출발하면서 우버 기사는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포르투는 어땠어?”


너무 아름다웠고 꼭 다시 오고싶다고 말했다. 가벼운 웃음으로 화답해주고는 이내 조용히 운전에 집중했다. 공항으로 가는 마지막 길에서 여행을 돌아봤다. 이 여행을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과 원하던 바를 나는 다 이뤘을 지 생각했다. 



여행을 떠나기전의 나는 생각이 정말 많았다. 내 진로, 연애, 미래, 인간관계 모든 것에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결국 근본적으로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왜냐면 이제는 그걸 누군가 대신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더이상 어린 아이도 학생도 아닌 다 큰 어른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스스로 그것을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걸 스스로에게 말 할 확신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솔이에게 말했던 것처럼 생각을 스스로 정리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일이 아니었다.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혼자 있는 기차안에서, 에펠탑을 바라보고 혼자 앉아서 혼자 있는 시간동안 생각을 하고 또 해도 결국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을 뿐이었다. 생각이 차곡차곡 개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접어주기 시작했다. 진로 고민을 하는 대학원생 현우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생각을 이야기 해주면서 되려 나는 스스로에게 조언을 했다. 10살이나 어린 23살 대학생 다현이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 나이에 겪었던 가슴 아렸던 사랑이야기를 해주면서 내가 잊고 살았던 사랑을 떠올렸다. 연애는 뭐고 사랑은 뭘까 고민했던 나지만 알고 있지만 잊고 살았다는 걸 꺠달았다. 요리를 하다가 공대생이 된 지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방식이란건 하나로 정의 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사업실패를 겪고 호주에 간 민정씨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나의 삶을 정의해야만 한다는 것은 참 오만한 생각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내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니다. 그 중 누구의 삶을 따라가야지라며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결국 나도 모든 상황에 그들에게 나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는게 중요했다. 내가 생각하는 진로와 사랑 그리고 인생의 방향성에 대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는 생각보다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잘해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여행은 나에게 질문의 책이었던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글로 적기 힘들어 질문의 책에 적힌 질문에 답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정리한다는 한솔이처럼, 나도 내 생각을 어찌 정리 해야할지 몰라서 여행이라는 질문의 책을 열어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그 질문에 답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질문의 책을 다 채우고 나니 알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관된 정답은 없다. 저마다의 정답이 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하던대로 살던대로 사는 것이 그 자체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잘해왔고, 이대로만 하면된다.


이제는 이 말을 나에게 해줄 수 있다. 내 지난 날에 더 이상 후회를 남기지 않을 수 있고, 내 앞으로의 날에 걱정을 놓지 않을 수 있는 한마디, 이 한마디를 나에게 해주기 위해서 이 여행을 떠난 것이다. 해가 뜨려고 하는 새벽하늘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는 정말 잘해왔고, 이대로만 하면된다.” 한마디를 되뇌었다.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리가 나온탓에 우버 기사는 자기한테 뭐라 하는줄 착각하고 고개를 잠시 돌리기도 했다. 이 한마디를 진심으로 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웠다.


여행을 결론짓기위해 억지로 내린 결론 아니야? 라고 한다면 할말은 없다. 어찌됐건 나는 이런 결말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을 누군가 읽는다면 스스로에게 이 말 한마디 해보기를 바란다. 굉장히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최고의 응원이 될지 모른다.


공항에 내렸다. 우버 기사는 짐을 내려주고 포르투에 꼭 돌아오라는 가벼운 인사를 남겼다. 런던을 경유해서 이제 한국으로 돌아간다. 


내 익숙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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