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밤 Oct 17. 2023

포르투2, 포트와인은 내 스타일은 아니야

온전히 포르투에서의 하루


포르투에서 보내는 온전한 하루이자 마지막 하루이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완벽히 시차적응을 한 탓인지 피로가 누적이 된 탓인지 눈을 뜨니 벌써 9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오늘 숙소도 무료 조식을 제공해준다고 하니 그건 놓칠 수 없어 얼른 식당으로 내려가본다. 식당으로 내려가니 눈이 돌아간다. 빵과 베이컨 달걀볶음 부터 포르투의 명물 에그타르트 거기에 주스와 시리얼까지 생각보다 푸짐한 조식이다. 돈을 생각하니 한그릇만 먹을 수 없어 배가 좀 부르더라도 두번 리필해 가져다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제 저녁도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샐러드와 해물밥 하나만 시켜서 먹느라 배가 그리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포르투 구경에 나갈 채비를 했다. 오후 4시경에는 어제 함께한 동행과 와이너리 투어에 참여할 계획이라 그 전에 시내 관광을 끝내두어야한다. 이제는 무슨 옷을 입을지도 고민이다. 날이 이렇게 더울줄 모르고 짧은 옷을 많이 챙겨오지 않은 탓에 벌써 입을 옷이 없다. 그래도 좀 깔끔해 보이는 반팔을 골라 냄새를 두어번 맡아보고는 괜찮다 싶어 그대로 입었다.



오전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나섰다. 어제 봤던 포르투갈의 집들은 밝을 때 보니 더 아름다웠다.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의 패션에 눈이 갔다면 포르투갈에선 집의 패션에 홀린듯 눈이 간다. 저마다 개성을 뽐내듯 붙여 놓은 타일이 마치 멋들어진 옷을 입고 걷는 모델들 같다. 마치 밀라노의 패션위크인양 멋진 집들을 향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오늘도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늦어진다. 이게 자유여행의 맛이다. 첫 목적지는 숙소 근처 수정궁 공원이다. 


공원에 들어서니 생각지 못한 동물이 나를 반긴다. 닭이다. 공원에 닭이 풀어져 있다니 하며 신기해하던차 닭보다 더 신기한 공작새가 있었다. 이런 새 친화적인 나라라니 재미있는 광경이다. 신기한 조류들을 뒤로하고 수정궁공원의 뷰포인트로 향했다. 공원 뒷쪽으로 가니 도우루강의 동쪽이 넓게 보이는 전망대가 있었다. 뜨거운 햇빛을 잠시 피해 그늘가에 앉아 전망을 바라봤다. 다른 나라였다면 이런 곳이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을 곳이지만 포르투에서는 꽤나 한적함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런 한적함이 좋다.



수정궁 공원을 시작으로 시청, 상 벤투역, 대성당 등 주요 관광지와 골목골목을 돌았다. 아름다운 포르투를 여유없이 하루안에 돌아야 한다는 것이 못내 슬펐지만 그래도 하루안에 왠만큼은 돌아볼 수 있는 크기의 도시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돌았다. 오후 2시쯤 되니 배가 고팠다. 그래서 와이너리 투어를 하기전에 한솔이를 미리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무래도 해산물이 유명한 만큼 도심에 있는 해산물 맛집을 찾았다. 내가 먼저 도착했고 다행히 테라스에 한자리가 비어 있었다. 10분정도 후 한솔이가 도착했다. 



우리는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문어 스테이크와 생선 대구 요리 하나씩을 시켰고 화이트 샹그리아 두잔을 주문했다. 문득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었다. 포르투갈의 골목 한가운데에 앉아 해산물요리와 와인을 마신다. 이 순간을 나중에 돌이켜본다면 얼마나 소중한 순간일까. 판교 사무실의 회색 공기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 상쾌함을 나는 고작 이주도 안되는 시간에 질려하고 있다니 참 간사하고도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재미있는 것은 이제 곧 일주일정도 여행을 하게되는 한솔이도 벌써부터 여행 매너리즘이 오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나는 공감의 웃음을 지으며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둘이 샹그리아를 들고 건배하면서 약속하고 다짐했다. 여행이 끝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원없이 행복하기만을 말이다. 지치는 것은 우리 일상에서만으로도 충분하다. 한시간여정도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우리는 와이너리 투어까지 남은 시간을 또 아직 가보지 못한 포르투의 시내를 돌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동행이 없는 혼자 일때는 남기지 못했던 각자의 사진을 남겨주었다.



4시 30분 시간에 맞춰서 와인투어를 위해 샌드맨 와이너리를 찾았다. 다들 포르투를 찾으면 포트 와인의 와이너리 투어를 꼭 해보라고 추천했다. 애초에 한솔이를 동행으로 만나게 된 것도 와이너리 투어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와이너리 투어는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약 3~40분 가량 와인 저장고를 보면서 포트와인과 샌드맨 브랜드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마지막에 3종류의 와인을 시음하고 끝이났다. 다른 와이너리 투어는 잘 모르지만 이런 투어라면 나라면 딱히 추천할 거 같지는 않다. 만약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진짜 와인밭을 방문해보고 그곳의 음식과 함께 페어링을 경험해볼 수 있는 진짜 투어를 가보고싶다.


포르투를 여행한다고 하니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있다.


“포트와인 많이 마시고 오세요.”


포트와인이란 것은 와인의 제조과정에서 또다른 술을 첨가해서 도수를 강하게 만든 와인이다. 나는 포르투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포트와인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술을 꼽으라고 한다면 요즘의 나는 단연코 와인을 선택한다. 내가 와인에 대한 전문가라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와인을 마시면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취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면 내 몸은 쉴준비를 한다. 술이 들어가서 몸을 더 들뜨게 만드는 것이 아닌 몸을 차분하게 만든다. 더욱이 마음 또 따라 차분히 쉴 준비를 한다. 그래서 나는 술 마시는 시간을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와인이라는 술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포트와인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포트와인은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원체 아직 위스키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의 맛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기도 한터라 부드럽게 들어와야할 와인에 강한 알콜이 느껴지는 것에 대한 묘한 불편함이 싫었다. 마치 착한 여자일줄 알고 만났다가 뒷통수를 맞은 사내의 슬픔같은 것이었다. 포트와인을 마셔보기 전까지는 집에 돌아가는 길 두어병을 사가지고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도 하였으나 내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포트와인에 대한 추억은 이곳에 묻어두고 가기로 했다. 그래도 와이너리 투어에서 준 세잔은 남기지 않고 모두 마셨다. 술을 남기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으니 말이다. 술마실때 배웠을 것이기에 누가 가르쳐줬는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이제 포르투 여행의 진미라 할 수 있는 일몰을 보러간다.


포르투의 일몰은 모루공원에서 본다. 물론 더 높은 수도원에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모루 공원의 언덕에 앉아 버스킹의 노래를 들으며 바라보는 포르투의 일몰을 사랑하는 이들이 참 많다고 한다. 여행객 뿐만아니라 현지인들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에그타르트를 사들고 언덕으로 향했다. 언덕으로 향하는 길, 저 멀리 언덕을 보니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동루이스 다리 위를 걸어 모루공원으로 가는 길, 어느새 내려갈 준비를 마친 해는 다리를 건너는 나의 오른쪽 뺨을 뜨겁게 했다. 모루공원은 마치 일몰이라는 콘서트를 볼 수 있는 관객석 같았다. 높이 솟은 언덕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공평하게 일몰과 함께 아름다워지는 포르투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우리도 사진 몇장을 찍고 언덕 초입에 자리를 잡았다. 사온 에그타르트를 한입먹으며 멍하니 해 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유럽의 아름다운 도시에 가면 일몰을 찾게 된다. 매순간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해가 지기전에만 보여주는 이 붉은 얼굴은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다. 오늘은 좀 더 아쉽다. 왜냐하면 이번 유럽여행에서 볼 수 있는 마지막 일몰이기 때문이다. 파리 에펠탑의 일몰, 니스 해변의 일몰, 피렌체 붉은 성당의 일몰, 로마 콜로세움의 일몰, 그리고 나폴리 미항의 일몰, 지난 여행에서 만난 모든 일몰이 기억속에 스쳐지난다. 여행은 내 일상 속의 일몰이 되어주는 순간일지 모른다. 하루 중 아주 짧은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일몰, 그 순간은 대화도 생각도 필요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 그런점들이 내 삶속에 여행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일몰도 한번 지나간다하여 다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니 이렇게 나의 여행이 마지막에 다다른다 하여도 또 언젠가 돌아올 여행이 있을테니 많이 아쉬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모루공원 한켠에서는 버스킹이 한창이다. 감미로운 음악일 줄 알았던 버스킹은 생각보다 신나는 락밴드의 공연이 한창이다. 우리는 락밴드의 음악이 감미로운 일몰과 생각보다 잘어울린다 생각했다. 해가 지고 건너편 강변의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도원에서의 야경을 한번 보자며 자리를 옮겼다. 수도원은 모루공원에서 성벽을 타고 조금만 올라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확실히 더 멀리서 포르투의 강과 도시를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는 이제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기 위해서 미리 찾아둔 식당으로 향했다.


20여분을 걸어 식당에 도착해지만 슬프게도 식당이 모두 만석이다. 최초로 알아본 포르투 강변의 해물밥 맛집은 도착하니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혹시 몰라 주인에게 웨이팅을 할 수 있냐 물었지만 주인은 말없이 저기 분수까지 길어진 줄을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는 멋쩍게 웃고는 가게를 나왔다. 그리고도 그 주변 3개정도의 가게를 방문했지만 모두 웨이팅까지 꽉차있는 상태였다. 우리는 처음겪는 어리둥절한 상황에 당황했지만 이내 조금 강변에서 떨어진 식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잠시 북적이는 강변의 광장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했다. 15분정도를 걸어 도착한 식당에도 사람이 꽉차있었다. 정말 다행이도 바좌석에 2자리가 남아있었다. 우리는 앉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바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되려 좋았던 것은 그 식당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우연히 현지 맛집을 찾아 들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대구 요리 하나와 버섯 리조또를 주문하고 포트와인 두잔을 주문했다. 포트와인이 내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한번은 더 마셔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식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또 하다보니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한솔이에게 이번 여행이 끝나면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30대 나의 고민을 담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여행을 겪으며 나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담고 싶다고 말했다. 한솔이는 본인이 공대생이라 자신은 그렇게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이냐 물어보니 지금 2년째 질문의 책을 채우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아무리 오늘 겪은 일이라 할지라도 질문없이 백지를 글로 채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매일매일 책에 어떤 질문이 써있든지 그것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나의 생각과 일상에 대해 적는다고 한다. 그래서 비록 하루의 일을 디테일하게 모두 적을 순 없겠지만 자신의 오늘 기분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달라져 나중에 그 글을 읽었을때 그날의 나의 기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글 쓰는 것이 익숙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는 것 자체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마다 일기를 써보라며 쉽게 말했다. 그조차도 쉬운일은 아닌 사람들이 있을 텐데 말이다. 근데 만약 어떤 것에 대해 쓰라는 질문이 있다면 한결 편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이 나왔다. 생각보다 의외의 음식이 너무도 맛있었다. 우리는 오히려 포르투의 대구 음식을 기대했으나 버섯리조또가 너무 맛있었다. 탱글한 쌀알과 버섯의 짙은 풍미가 베어있는 소스가 너무 잘어우러졌다. 이탈리아에서 리조또를 못먹어본게 못내 아쉬웠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맛있는 리조또를 먹었다. 평소 같으면 안그랬겠지만 양이 조금 부족하기도 했고 버섯리조또를 하나 더 주문해서 먹었다. 포트와인은 한잔으로 족했다. 맛이 너무 달았고 강한 알콜향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래서 적당한 화이트 와인 두잔을 추가로 곁들여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게에서 나왔다. 한솔이는 숙소가 있는 강변쪽으로 나는 그 반대편 시내쪽으로 가야했다.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동행이었던 한솔이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나는 나머지 여행 잘하라는 인사, 한솔이는 집에 잘 돌아가라는 인사, 서로 다른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다. 마지막 동행을 마치고 나니 정말 여행이 끝이 나는 느낌이 들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호스텔 불은 꺼져있었고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내일 오전 6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갈 채비를 해야한다. 짐은 내일 아침에 싸기로 하고 간단히 씻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마지막 밤이 아쉬웠으나 그 밤을 강하게 붙잡을 체력은 없었다. 

이전 18화 포르투1, 매너리즘은 내 탓이 아니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