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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Oct 13. 2024

국가공무원법 제7장

# 최종회.

그새 목소리에 노기가 풀렸는지 교감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교장선생님, 그놈이 그렇게 발칙한 짓을 했다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도(도교육청)에서 우리 청(지역 교육지원청)으로 연락이 왔다며 박 장학사한테서 전화가 왔더군요. 그런 글을 놔둬 봤자 좋을 게 없으니 하루빨리 하 선생이 글을 내릴 수 있게 잘 달래보라더군요.”

“네, 맞습니다. 저나 교장선생님이 그동안 어떻게 쌓아 올린 탑인데, 한순간에 무너뜨리려 하다니……. 이 기회에 제가 그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그들은 자신들이 가는 길에 먹구름이라도 낄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일단 며칠만 더 두고 보기로 합시다. 제 놈도 사람이라면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아채겠지요. 괜히 우리가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꺼냈다가 그걸 협박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일만 더 커질 테니까요."

"그래도 그냥 내버려 뒀다가 인터넷 여기저기에 학교 일을 죄다 까발리면 어떻게 할까 싶어 걱정이 됩니다."

"아마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놈이라면 그렇게까진 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봅시다. 뭐, 우리가 어디 저런 놈들을 한두 번 겪어 봤나요?"

저런 놈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 선생은 잘 알고 있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인간, 불평불만이 많은 인간, 자신만이 옳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사는 인간, 그리고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는 인간인 하 선생 자신을 지칭한다는 걸 말이다.

“그나마 이 불미스러운 소식이 교육감님 귀에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도에 있다는 총무과 담당자가 눈치껏 일을 잘 처리했더군요. 이름을 들어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던데 학교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인 것 같더군요.”

그러고 보니 글을 작성할 때 ‘귀하의 민원이 교육지원청 소관일 경우 해당 기관으로 이송되어 처리될 수 있습니다’는 문구를 본 기억이 났다. 결국 그렇게 해서 하 선생의 민원에 대한 해결 권한은 이미 교육지원청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리고 교육지원청은 교장 선에서 이 소동이 진정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들에겐 진상 조사 따위는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다.

“네. 그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하 선생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교장의 의중을 떠보는 교감의 말에 하 선생은 귀가 솔깃했다.

“강경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우리에게 손해만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살살 달랩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하자는 말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적당한 구실을 붙여 다른 곳으로 쫓아 보내는 방법은 어떨까요?”

교감이 하는 말은 아마도 조정 내신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최후의 수단으로 조정 내신(현 근무지에서 근무기간이 만료되지 않은 사람을 적법한 이유를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하는 조치) 발령을 내면 서로가 더 부딪칠 일도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것이 지금으로선 하 선생도 손해 볼 일은 없는 셈이다. 몇 마디 말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교감선생님, 그 방법은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네요. 하 선생을 쫓아낸다는 건 놈이 쓴 글의 내용을 은근히 우리가 시인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 않겠어요? 지금까지 잘 달려왔는데 이제 와 그런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따라붙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군요.”

손발이 맞아도 저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은 척하면 척이었다.

“참, 교감선생님! 그 녀석은 어떻게 됐나요?”

“아, 그놈은 벌써 지난주에 전학을 갔다고 합니다. 이제 아무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별 걱정은 안 합니다만, 거기에서 잘못 지내더라도 설마 여기로 다시 올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아무리 속이 없는 녀석이기로서니 그럴 일은 없을 거라며 교감은 큰소리쳤다.

“아무튼 교장선생님, 어쨌거나 이번 일을 계기로 놈이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었으면 합니다. 이 일 때문에 결과적으로 누가 더 다치게 될지를 말입니다.”

“암요, 그래야지요. 더러운 배신자라는 딱지를 이참에 확실히 붙여줘야 할 겁니다. 저 하나 살겠다고 치졸한 변절자의 길을 선택한 놈의 고매한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주어야 할 겁니다. 이런 꼬리표가 따라붙는 한 다른 어느 곳을 가더라도 발붙이고 지낼 수 없을 겁니다. 교감선생님이나 나나 다른 곳에 가서라도 저놈을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한 번 배신한 인간은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다시 배신하는 걸 수도 없이 봐왔으니까요. 게다가 인터넷에 맛을 들인 놈은 툭하면 같은 짓을 저지를 수도 있으니 제가 각별히 주의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 선생은 두 번 다시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따위의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참, 다른 선생님들은 그놈을 어떻게 대하고 있던가요?”

“뭐, 말씀드리지 않아도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도 그놈과 말을 섞으려 하지 않습니다. 말은커녕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선생님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 선생과의 친분을 과시해 봤자 본인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의 호탕한 웃음을 들으며 교실로 돌아온 하 선생은 멍하니 천장만 쳐다보았다.


합리적인 문제 해결 방법 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며 기대하며 벌인 일이 결국 일만 크게 키우고 만 꼴이 되어 버렸다. 오랜 시간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뒤통수를 칠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말았다.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침을 뱉고 만 것과 무엇이 다를까?


더도 덜도 아닌 완벽한 고립이었다. 결코 의도한 적도 없고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끝내 하 선생에게 돌아온 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심 각오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의 하 선생은 다른 선생들의 안락함을 뒤흔들고 있는 필요악일 뿐이었다. 그 말은 곧 하 선생만 학교에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뜻했다.

교감이 호언장담한 것처럼 이제는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심지어 하 선생이 먼저 말을 걸면 못 들은 척 하기 일쑤였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듯 쏜살같이 지나쳐 버리곤 했다.

- 옳은 일이 반드시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야.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 열 사람 중에 아홉이 그르다고 하면 그건 아닌 거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란 말이야.

너무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믿고 행동하다가는 오히려 교직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될 거라던 윤정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결국은 윤정의 말대로 사태는 흘러가고 있었다.


하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빈 교실을 서성였다. 뒤로 밀려난 의자 소리와 둔탁한 발소리만 요란할 뿐 주변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앞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보았다. 족히 칠십여 미터는 됨직한 긴 복도에 인기척 하나 없었다. 그 흔한 문 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고 누군가가 계단을 딛고 올라오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면 반대편 벽까지 닿았다가 고스란히 되돌아올 것만 같았다.

어쩐지 이 적막이 꽤 오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려 하 선생은 관자놀이를 누르고 또 눌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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