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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작이 Nov 24. 2024

문화가 있는 날

303일 차.

사실 내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쉽게 얘기해서 관내의 주요한 곳에 가서 오후의 한적한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는 취지로 실시되는 행사라고 보면 됩니다. 솔직히 업무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학교를 대표해서 출장을 간다거나 학생을 지도하고 인솔하는 등의 일이 아닌 관계로, 출장을 상신하지만 출장비를 수령하지는 않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올해 네 번의 '문화가 있는 날'이 계획되어 있었고, 이번이 마지막 행사입니다.


며칠 전에 출장을 상신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뭔가가 찜찜하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문화가 있는 날이라는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방향으로 운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후 2시부터 4시 반까지 출장을 달아서 나가는 것이라, 원칙적으로 보면 그 일을 마치는 즉시 자발적으로 퇴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이 2시부터 각자가 개별적으로 시간을 갖는 방식으로 행사가 운영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원래는 관내의 주요 관광지 같은 곳에 가서 바람도 쐬고, 동학년 선생님들과 함께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는 등으로 진행이 되어야 하는 행사입니다. 물론 그 못 다 나눈 이야기들의 귀결점은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끝 또한 거기에서 맺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각자가 자유 시간을 가지는 걸로 퉁치게 되는 행사입니다. 각자가 커피 전문점 등에 가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더러 마음이 맞는 사람들 몇몇은 그들만의 시간을 가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한은 거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곧장 퇴근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문화의 날'에서 저는 이미 동학년 선생님들의 의향을 파악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행사일에는 사실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다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많은 대화들을 나누면서 공동체 구성원들과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었습니다만, 그건 어쩌면 저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두 번째 행사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까 하며 의논을 하던 중 사람들이 대놓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각자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느냐고 말입니다.


그 이후로 두 번의 '문화가 있는 날'은 출장비를 받지 않는 출장을 상신한 뒤에 각자 볼 일을 보곤 했습니다. 저 역시 혼자서 인근 커피전문점에 가서 글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사실 저에게 손해는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북적거리며 수다를 떨지 않아도 되고, 안 그래도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젊은 선생님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입니다. 혼자 커피전문점에 가서 글을 쓰고 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문화의 날'이 아니라 단체로 조퇴를 달고 일찍 퇴근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생각들을 나머지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런 눈치조차 줘선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사람들을 무슨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그 자리에 오게 한다는 건 저 역시도 내키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내일 하루만이라도 행사의 취지를 살려 모두가 함께 하는 시간을 갖자는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굳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분명 내일 행사도 똑같은 방식으로 운영이 될 것입니다. 혼자서 아등바등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만약 그런 걸 두고 순리라고 할 수 있다면 뭐 어쩌겠습니까,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내일은 출근할 때 노트북이라도 챙겨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 풍광이 좋은 커피전문점에라도 가서 글이나 몇 편 쓰다가 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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