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사백 쉰아홉 번째 글: 오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진 속의 모습은 39년 전에 졸업했던 제 모교의 정경입니다. 지하철 3호선 명덕역 승강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3호선이 공중에 떠서 다니는 지상철인 탓에 승강장 자체가 최소한 5층 정도의 높이에 있으니 내려다보는 전망이 된 것입니다. 제 눈이 간사한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몇 년 만에 본 모교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짠하더군요. 셔터를 누르면서도 가슴속에선 뭔가가 뭉클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봤을 때는 한 없이 커 보였던 학교가 왜 저리 볼품없고 초라한가 싶었습니다. 저 작고 아담한 곳에서 어떻게 6년을 생활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리모델링이나 외벽 보강 공사를 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실제로 제 눈과 가슴속에 각인된 그때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실제로 새로 지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건물 외관이 근사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 눈엔 제 모교가 자꾸 초라해 보이기만 할까요? 사람으로 치면 나이가 젊어진 것이나 다름없고 훨씬 멋쟁이가 되었는데도 그 모습이 오히려 보기가 불편하기 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 거대하고 웅장했던 학교의 모습은 어디로 간 걸까요? 어렸을 적 봤을 때는 그렇게 커 보이던 학교가, 한참을 달려도 끝에 닿을까 말까 할 만큼 컸던 그 학교가 왜 저렇게 볼품없이 초라해졌나 싶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학교의 크기가 줄어든 게 아닌가 싶더군요. 그럴 리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각 건물들의 크기나 위치는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문방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다른 건물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지만, 그 문방구는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었으면 했습니다. 대규모 문구점들이 들어선 데다 인터넷 거래가 대세인 세상이니 작은 영세 점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리가 없었을 겁니다.
이름도 기억납니다. 중앙문방구라고 했었지요. 없는 것 없이 다 있던 그 좁아터진 문구점을 우린 제 집 드나들듯 했었습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중간에 시간이 붕 뜨고 딱히 갈 만한 데가 없을 때는 그곳이 우리들의 쉼터 역할도 했습니다. 즉석에서 가격도 깎아주셨고 돈이 없을 때는 외상으로 물건을 사도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셨던 마음씨 좋은 주인 내외분 덕분이었습니다.
대략 12년 전쯤 주인 내외분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물론 몇 년 앞서서 주인아저씨가 먼저 세상을 뜨셨고요.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겁니다.
마흔이 되기 전의 어느 때 딱 한 번 문방구에 들렀던 기억이 납니다. 약간 열린 문틈으로 많이 노쇠한 주인 아주머님이 보였습니다. 이미 그때 아저씨는 먼저 가신 상태였고요.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더군요. 삼십여 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탓에 저를 기억하실까 싶기도 했지만, 어릴 때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단아하고 젊었던 아주머니를 마주 대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뭐랄까요, 좋았던 기억은 언제까지라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싶었다고나 할까요?
오랜만에 유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도 정겨웠던 학교와 문방구에 대한 기억 덕분에 마음이 넉넉해진 듯합니다.
사진 출처: 글 작성자 본인이 직접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