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 장을 하나씩 올릴 열두 번의 판타지 같은 상상의 문이 차례로 열렸다. 북토크를 향한 열두 개의 낯선 외출은말만으로도 흥분이었다.
2024개의 별이 후두둑후두둑 흩어져 내렸다. 내겐 그저 1년이 아니라 기다려온 숫자만큼의 별이 되었다. 다시는 없을 해가 되었다. 그 열두 번째 달을 가슴에 안았다. 별과 해와 달의 우주를 일 년 내내 따라 걸었다.
그 어느 때도 '두 번은 없다.'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를 한 연씩 읽어 내려가며 열두 번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바람이 부네(p.223)' 바람이 지나가는 걸 흔들리는 전깃줄이 말해주고 와글거리며 재잘대는 메마른 가을 나뭇잎들이 고자질한다. 바람이 아닌 것들이 바람의 존재를 알려주듯 사람도 그렇다.
황금색을 노란색(p.229)이라고만 한다면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쏟은 탓이다. 이리저리 잘라보고 뜯어보는 황금색은 다채롭다.
바람과 황금의 노란색이 각기 다른 참석자에게서 인상 깊은 부분으로 나왔을 때 나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끌어와 다리를 놓고 있었다.
나 자신도 제대로 모르는 나는 내가 먹는 것들, 내가 보는 것들, 내가 읽는 것들과 쓰는 것들로 규정지을 수 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로 내가 더 드러나고 내가 사람들과 하는 말로 나의 정체성이 퍼즐을 맞춰간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 가슴의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더 나를 어둠 속에 깊이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안으로만 침잠하는 나가 아닌 나를 둘러싼 시간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보고 듣고 읽고 쓰고 먹고 살고 말하고 돌보는 것들을 통해 세상에서 단 하나인 나는 어떤 사람인가가 파악되는 것이다. 내가 아닌 것들로 나의 가치가 명료해지는 것이다.
작가는 '방에서 세상으로 향하는 길 두 개(p.217)'를 열어 주었다. 하나는 문이요, 나머지 하나는 창이라 했다. 몸이 들락거리는 곳과 마음이 오고 가는 곳, 그래서 창이 없는 공간은 답답한 마음이 된다는 거였다. 문은 내 세상의 안전과 위안을 허락해 주고 창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떠돌며 해방의 출구로 향하게 하는 거라 믿었다.
마지막 달의 굿즈는 2025년 달력이었다. 작가가 여행하며 또는 일상에서 잡아둔 순간에 대한 기록들이 고스란히 다른 세상으로 펼쳐져 새로운 매 월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2024년의 마지막 달을 단호하게 끝내고 나만의 여정으로 발을 옮기리라는 다짐이 살살 흔들리고 있었다. 2025년을 끼익 열어주고 작가는 마무리했다. 갑작스러운 시작의 기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 채 얼마간의 긴장으로 새로운 해의 달력을 손에 들고 있었다.
처음이라는 이름으로 몰려온2024년의 큰 용기를 사랑이라 부를 것이다. 황홀했다 전할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올해의 별과 해와 달을 가득 넣은 따뜻한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