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 지각했다. 내가 살아온 날을 통틀어 중요한 공식 일정 첫 지각이다. 난 지각을 싫어한다. 차라리 결석한다.
북토크가 열리는 목소리예술연구소 앞 카페에서 1시간 넘게 앉아 다시 1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혼자 행복했다. 이런 얘기해야지. 저 단어 하나로도, 저 표현 하나로도 한 시간 넘게 얘기할 수 있지.
그랬다. 3시 55분, 문에 No Bears는 없더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문을 연다. 3시에 시작이었어요.
오퍼스의 Aqua에서, 피아노 선율이 거칠어지는 The Wuthering Heights에서 너무 눈물을 흘려버린 탓일까 괜한 과거에 핑계를 대 보지만 어쩔 수 없다.
돌아갈까 봐요, 쓸데없는 소리를 허공에 쏟아내고 부끄러움에 안내받은 맨 앞자리에 패닉으로 앉는다. 이럴 때 심장이 터져야 하는데. 눈을 감는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자기 안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길어 올리며 나누는 사람들이 조근조근 얘기를 한다. 고백을 한다. 한 분 한 분의 얘기는 한 권의 책이며 감동의 정점은 항상 꾹 참는 눈물로 이어진다. 꿈꾸는 시낭송, 정말 시를 사랑하고 낭송을 하는 분들의 목소리는 힘이 다르고 진지함과 열정이 다르다.
나도 더듬더듬 내 이야기를 한다. 어디선가 분명히 한 번쯤은 했었을 '나'라는 실체를 설명하는 일, 그건 언제나 낯설고 이상하다. 마음을 크게 열어 들어주시고 가만히 다가와 말 걸어 주신 분들이 계시다는 게 신기하고 뜨거웠다.
아, 지각하는 바람에 한 시간 반 중, 한 시간을 놓쳤다는 나의 경솔한 억울함에도 나를 혼낼 시간보다는 귀를 더 많이 가슴을 더 활짝 열고 싶었다. 이숲오 작가님은 프로다. 길을 열어주고 방향을 알려주고 일탈하지 않도록 이탈하지 않도록 잡아준다. 뭔가 더 하고 싶도록 끌어당겨준다.
우리는 서로를 길어 올리고 있었다. 사는 힘을 길어가는 우물로 이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 매 달마다 기대하리라. 풍성하리라. 살아내리라.
CSI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썸 반장을 닮은 영화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는 나의 가슴에 곰(bears)을 앉혔다. No bears 얘기에 나만의 곰을 풀어보자 했던 북토크였지만, 곰을 풀 새는 없었다. 문이 있었으므로 No bears는 필요 없었으리라. 나는 여전히 곰을 안고 산다. 그 두려움을 잘 다독이며 살아야 한다.
2월에도 역시 조금 일찍 도착해서 2장 복습을 할 거다. 지각하지 않겠다 다짐도 한다. 생명이 흐르는 시간, 다른 생명의 기운을 받는 그런 진지한 시간이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