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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한 행위

0588

by 이숲오 eSOOPo

차라리 손끝으로 발화하는 편이 낫다.


백번을 양보해도 글을 쓰고 나서가 말을 하고 나서보다 후회가 더 적다.


술술 나오는 게 말이라고 수월한 탓에 저질러놓은 말들은 하는 즉시 휘발되어도 마음 한켠엔 서툰 상태로 조각되어 한참 동안 스스로를 조롱한다.


글쓰기의 진중함은 혀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덕분에 더딘 기록이 답답함을 선사하지만 추후 돌아보면 그 순간의 내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어 사진보다 선명하고 영상보다 도발적이다.


말하기는 혈액검사

글쓰기는 엠알아이

각각의 지향은 독립적이고 자발적이다.

필요가 다르고 쓰임이 다르다.

대체도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글이 말의 우위에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말하기의 허약함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위함이다.

노련하지 않은 조련사가 매번 자신의 망아지를 두고 쩔쩔매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나의 망아지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기대를 저버리기가 쉽지 않다.


https://brunch.co.kr/@voice4u/136


그 부끄러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말을 글로 번역해 기록해야 한다.

누구도 나의 말을 나의 글로 통역할 수 없다.

이 점이 불가사의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방치하고 생략하면 잃고 놓치는 손실이 막대하다.


나의 입에 꽃으로 재갈을 물리고 글을 쓴다.

말 사이에 먼지를 제거하고 사색의 공기가 통하도록 글마다 말없음표를 망아지똥처럼 심는다.

지금은 냄새이지만 이내 향기로 바뀔 것이다.


말은 둘 이상이

글은 저 홀로인 것을 이제야 알겠다.

외롭지 않고서야 고독하지 않고서야 이 어찌 숭고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다시 말을 쏟아내야 할 계획들이 즐비하다.

글을 쓰듯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간직하리라.


나로 말미암아 너에게 온전히 안착할 고유의 언어만을 생산하기로!


가까스로 혀끝의 발화를 용인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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