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숲오 eSOOPo Jan 21. 2024

마땅한 행위

0588

차라리 손끝으로 발화하는 편이 낫다.


백번을 양보해도 글을 쓰고 나서가 말을 하고 나서보다 후회가 더 적다.


술술 나오는 게 말이라고 수월한 탓에 저질러놓은 말들은 하는 즉시 휘발되어도 마음 한켠엔 서툰 상태로 조각되어 한참 동안 스스로를 조롱한다.


글쓰기의 진중함은 혀끝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닌 덕분에 더딘 기록이 답답함을 선사하지만 추후 돌아보면 그 순간의 내가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어 사진보다 선명하고 영상보다 도발적이다.


말하기는 혈액검사

글쓰기는 엠알아이

각각의 지향은 독립적이고 자발적이다.

필요가 다르고 쓰임이 다르다.

대체도 불가능하고 불필요하다.


글이 말의 우위에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말하기의 허약함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위함이다.

노련하지 않은 조련사가 매번 자신의 망아지를 두고 쩔쩔매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나의 망아지를 아끼고 사랑하기에 기대를 저버리기가 쉽지 않다.


https://brunch.co.kr/@voice4u/136


그 부끄러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말을 글로 번역해 기록해야 한다.

누구도 나의 말을 나의 글로 통역할 수 없다.

이 점이 불가사의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방치하고 생략하면 잃고 놓치는 손실이 막대하다.


나의 입에 꽃으로 재갈을 물리고 글을 쓴다.

말 사이에 먼지를 제거하고 사색의 공기가 통하도록 글마다 말없음표를 망아지똥처럼 심는다.

지금은 냄새이지만 이내 향기로 바뀔 것이다.


말은 둘 이상이

글은 저 홀로인 것을 이제야 알겠다.

외롭지 않고서야 고독하지 않고서야 이 어찌 숭고한 일이 가능하겠는가.


다시 말을 쏟아내야 할 계획들이 즐비하다.

글을 쓰듯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간직하리라.


나로 말미암아 너에게 온전히 안착할 고유의 언어만을 생산하기로!


가까스로 혀끝의 발화를 용인할 수 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길어 올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