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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20. 2022

나의 초(라한)능력들 0

이것은 육체에 관한 이야기

정신을 챙기느라 육체에 소홀했던 날들


오늘도 나의 몸뚱이는 수고가 많았다.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느라 애썼다. 트럭의 짐칸이 비었다고 기름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듯이 세 끼의 먹을거리들이 몸으로 어김없이 투입되었으나 그다지 훌륭한 일을 하지 도 못했고 나라를 구하지도 못했고 나 하나 간수하느라 급급했다. 그래도 장하다. 몸이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내가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정신이기도 하지만 육체의 상태가 살아있음의 최종 판단 근거가 아닌가. 정신은 가끔씩 그 줄을 놓아보기도 하지만 육체는 부단히 멈추지 않아야 살아있는 것이 된다. 정신은 간헐적인 관심이어도 되지만 육체는 지속적 기적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건 의지 너머의 문제라는 생각에 미치니 이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몸은 살아가고 있으면서 죽어가고 있다. 몸의 역설을 읽고 싶다.

 


나의 숨겨진 몸의 사소한 기능들에 대하여


벨기에 사진작가 바바라 이반스는 내가 가진 사물들에 대한 목록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사가 잦았던 그녀는 소유하고 있는 사물들을 사진 찍고 사용빈도를 작성해 파일로 정리했는데 무려 12,795점에 이른다. 불필요한 것들의 처리와 꼭 간직해야 할 것들의 보관을 위한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은 교훈은 한 가지였다고 한다. 

-내게 소중한 것은 불과 1%에 지나지 않구나.  


나의 몸이 가진 기능들을 하나씩 기록해 보고자 한다. 그것은 사소하고 평범하고 일상적일지도 모른다. 누구나의 몸짓이고 행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육체의 움직임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거나 각자 결의 차이를 보일 것이다. 한 나무에 붙어있는 나뭇잎의 모든 잎들이 똑같은 모양이 없듯이 말이다. 단순한 움직임부터 추상적이고 계획된 움직임까지 면밀하게 관찰해 보려 한다. 당연한 몸짓은 없을 것이라 상상해 본다.



초라한 능력에서 초능력을 찾을 때까지


나의 초라하고 누추한 몸의 능력들을 지켜보며 당신은 위로받을 것이고 용기가 생길 것이다. 에게게게! 나는 더 잘할 수 있겠군! 그러면 1차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유의미하다. 나의 몸 사용설명서가 타산지석, 반면교사가 되어 당신의 초능력을 끌어내는데 기여를 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기록할 능력들이 저 해변의 모래알처럼 한없이 작고 하찮고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놀리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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