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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Oct 20. 2024

반대의 의미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 October 2024

꿈이었다.


아이는 산꼭대기 커다란 공연장에서 발레 콩쿠르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올라가도 아트홀이 나올 것 같지 않았지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가 어두운 저녁 하늘 아래 서 있을 짠함에 끝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힘겹게 힘겹게, 급경사에 뒤집어질 것 같이 차가 휘청거릴 때마다 운전대에 가슴을 붙이고 끝까지 액셀을 밟았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수석에 올라타며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콩쿠르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 했다.


보라색과 하늘색 펄로 넓게 진한 화장을 한 아이 눈이 신비롭고 새로웠다. 슬퍼 보이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흘깃거리며 아이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아트홀 관객석에서 꽃다발을 들고 앉아 있었어야 할 나는 도로에 묶여 아이 공연을 보지 못했다.


나의 갈증을 채우느라 시간에 늘어지다가, 늦어서 미안하다는 톡을 보내고, 엄마가 없어도 공연 잘하라고 톡을 보내고, 끝나면 공연장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으라는 톡을 연신 보냈을 뿐이었다.


나는 제대로 된 엄마가 맞을까.




판타지였다.


10월의 셋째 토요일, 꿈꾸는 낭송 공작소 북토크에 내 뜻대로의 밝은 시작을 하지 못했다. 대범하게 남의 땅에 차를 세우고 싶어 처절하게 애걸했건만 무심하게 눈빛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거센 거부에, 내가 잘못했으면서도 야속함이 앞섰다.


힘겹게 힘겹게, 앞 길을 막아버린 트럭 주인이 사라져 버려 긴 후진의 예술을 해야 했다. 세워둔 오토바이 두 대를 닿을 듯 비켜가면서 나는 내가 꽤 후진도 잘한다는 걸 그 와중에 깨달았다.


북토크는 시작했을 터였다. 머릿속이 하얀 듯 눈앞이 노란 듯 정신까지 내려두고 또 다른 남의 터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목소리예술연구소를 향해 걸었다.


서운함으로 부운 두 볼에 체념의 마음까지 가득 찼다. 이미 일어난 일은 뒤집을 수 없다.


나는 제대로 된 독자로 북토크에 참여할 수 있을까.




부끄러워 뜨거워진 온몸으로 자리에 앉았지만 정신이 금방 추슬러지지 않았다. 그 누구의 눈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래도, 기운을 내야지.


여전히 미숙한 시간 관리, 쓸데없이 대범한 불법 주차, 준비되지 않은 독자의 이미지는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던 중인 바로 그 '얼룩'이었다.


'산지 오래된 후 읽게 된 책 페이지 사이사이에 몽고반점처럼 번져있는 흐릿한 경계의 다른 색깔의 자국, ' 그 얼룩이었다.


10월 북토크 공지 댓글에 '게으른 채로 가겠습니다!'라고 쓴 내 말이 씨가 되어 싹이 트는 순간이었다.


절대 자유롭지 않았던 내 참여 과정의 심한 당황은 '매번 실패하는 것인지 모르는' 인간 의지의 오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북토크 마무리쯤에 조용히 잦아들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 의미 깊은 문장들을 낭독할 때에야 심장 박동이 느려지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의 의미와 가치, 억압되지 않고 스스로에게 틈을 허락하는 그 단어에 마음을 얹어 두었다. 나도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에 기대어 산 순간들에 얼마나 스스로 위안했던가.


'시작'이라는 힘겨운 문을 열고 나면 결국 기꺼이 마치게 되는 삶의 미션들을 돌아보는 독자의 고백과 기쁨을 들으며 나의 충동적이고도 무모했던, 선택과 집중을 향한 시작을 조심스럽게 나누었다.


일단 선택하면 되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가는 습성은 권태와 고독을 극복하게 했고 현재의 나를 존재하게 했다. 또한 미숙하고 비이성적인 북토크 참여자로서의 부끄러움까지 바로 그 현장에서 나의 현재가 되었다.


내가 골몰했던 극단의 가치들을 혼란 속에서도 인정해야 했다.


권태 없이는 불가능한 성취, 고독 없이 찾기 힘든 진실한 나 자신, 치욕스러움 없이 가능하지 않은 사랑, 이 모든 것들이 현재의 존재를 위해 과거가 채우는 것들이라는 깨달음이 10장의 영어 노래 가사 한 줄을 통해 또렷해졌다.


You don't know what love is until you've learned the meaning of the blues. (p. 178)


권태나 고독, 치욕 따위의 부정성들과의 의미적 전투에서의 승리 후에야 '사랑'을 알게 된다는 것, 그 과거와 현재 시간 사이를 채우는 찢어진 조각들의 자유로운 춤으로 이루어 내는 삶의 의미라는 것에 다가서게 되었다.


작가가 인용한 영어 문장으로 영문법에서 다루는 '완료'시제의 경이를 다시 한번 느끼며 작가의 언어 간 통찰력에 감동한다.


열심히 기능해야 자유롭다. 자유로울 때 상상하고 새로워지고 더 진실하고 깊은 자신으로 살 수 있다. 나 또한 최대한 열심히 민첩하게 집중하며 여유를 확보한다. 그 여유에서 생각하고 유영하며 글을 쓴다.


부지런해야 성질이 다른 것으로 스위치가 가능하다. 관점을 바꾸는 능력은 예술적 창의적 부지런함에서 온다는 작가의 말이 뜨겁게 심장으로 다가왔다.




10번째 북토크에 참여하며 가장 스릴 넘치고 새로운 시간이었다. 시간의 현재성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우매함을 절절하게 깨달았던 시간이었다.


북토크 중 나의 경솔한 주차로 인한 잦은 부재에 작가에게 미안했고, 제대로 집중을 못해 북토크 참여한 분들과도 바로 눈을 맞추지 못했다.


이제는 이러한 찢어진 상처들을 봉합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을 찾아야 할 때라고 여긴다.


북토크를 마치고 터덜거리며 집에 도착하니, 일주일 전 있었던 발레 콩쿠르에서 아이의 발레팀이 1등을 했다며 아이가 활짝 웃으며 행복해한다.


믿고 싶지 않았던 꿈이 현실로 돌아왔다.


어떤 당황과 긴장에도 제대로 하는 아이, 나는 내 아이로부터 새로운 자유를 마주한다.


10월의 굿즈는 공간, 틴케이스가 예쁘다. 내 자유를 그곳에 기억해 두었다가 야금야금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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