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23일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입니다. 우리는 그저 크리스마스 전날을 가리키는 말로 알고 있고요. 제가 모르는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인가 싶어 찾아보니, 다음 위키백과엔 이렇게 나오더군요.
크리스마스이브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 24일 밤, 또는 하루 전체를 의미한다. 크리스마스는 전 세계에서 기념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크리스마스이브 또한 크리스마스를 앞둔 전체나 부분 공휴일로 널리 기념하고 있다. 기독교 국가와 서구 사회에서는 양일을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기념일로 여긴다.
아마 제가 처음 크리스마스를 알게 된 건 한글을 갓 뗀 다섯 살쯤이었던 걸로 아는데, 대략적인 뜻을 알고 난 뒤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도 안 다니는 저희 집에서 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나 하고 말입니다. 어쨌거나 저희 집도 이맘때가 되면 약간은 들뜬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특히 저희 양친께서는 12월 24일을 크리스마스 2부라고 부르셨습니다. 전쟁통에 고아가 되셨다가 어릴 때부터 생업에 뛰어드신 아버지, 열 명이 넘는 형제자매 속에서 여자로 태어나 교육의 기회마저 빼앗긴 어머니 두 분 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신 탓에 영어적인 문화를 모르셨던 것입니다. '이브'란 말이 '이부' 즉 '2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순서로 보면 1부가 앞이고 2부가 뒤인데 왜 크리스마스는 2부가 먼저냐고 말입니다. 어머니는 제게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특별한 날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지하면서도 좋게 말하면 순진했던 분이셨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리면, 얼떨결에 동네 형과 누나들을 따라 집집마다 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 잘 밤에 그렇게 몰려다니며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고 다니던 그 기억은 그 자체로도 특별한 이벤트였습니다. 그때는 교회를 다니냐 안 다니냐의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온 동네의 아이란 아이는 다 모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무리들 속엔 반드시 동네 교회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의 아들과 딸이 섞여 있어서 교회에 다니는 집만 골라 대문을 두드렸던 기억이 나네요.
사실 제게 크리스마스라는 날은 그저 신기한 날 중의 하나로 기억된 하루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닌 외국인의 탄생을 저렇게도 기념하는 걸 보면 예수라는 인물이 역사적으로 꽤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어린 나이의 저에게 원죄, 대속, 그리고 구원 등의 개념은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였으니까요.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다 교회에 모여 파티 아닌 파티를 즐겼던 기억도 납니다. 어린아이가 그 늦은 시각에 제대로 집에 오기는 하는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이가 많은 형과 누나들이 일일이 집에 데려다줬으니까요.
오랜 기억은 그것만으로도 추억이 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그 뒤로는 이런 풍습(?)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전국의 어느 곳을 가든 교회가 없을 리가 없는 곳에서 말입니다. 그만큼 민심이 흉흉해진 탓일 테고, 그때 그 시절만큼 더는 순박한 모습을 사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크리스마스 2부를 앞두고 문득 그 오랜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사람의 따뜻한 냄새가 그립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다들 못 배우고 가난했던 시절이었지만, 그때보다 훨씬 풍족하게 살고 있는 지금이 아닌 그때가 새삼 그리운 이유이기도 할 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