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눈은 없으나 추운 날씨
크리스마스의 한적한 오후를 맞이했다. 눈이 오면 마냥 좋아서 펄쩍펄쩍 뛰는 강아지나 어린아이 같은 심성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을 턱은 없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딱히 들떠 있을 이유도 없다. 누군가는 그런 내게 참 멋대가리가 없다고 해도 할 수 없다. 마치 대통령선거를 앞두었지만 누구를 찍을지 아직 결정 못한 채 그저 하루나 쉬어볼까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내게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 아니다.
그저 주중에 하루 쉬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좋을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연말연시 아닌가? 하루쯤 휴식을 맞이해서 지난 1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만족하려 한다. 내게 크리스마스는 딱 그 정도의 의미만 지닐 뿐인지도 모른다. 한창때처럼 사랑하는 누군가와 맹목적으로 번화가를 쏘다니면서 시간을 소일할 때는 지났으니 말이다.
오늘은 하루를 꽤 여유 있게 시작했다. 청소도 하고 다른 할 일도 마친 뒤에 모처럼 만에 책도 좀 읽었다. 그러다 문득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을 고민했다. 어차피 집에 아무도 없으니 그냥 집에서 글을 써야 할지, 아니면 커피 전문점에 가서 쓸지에 대해 고심했다. 쉽게 해결이 나지 않는 문제였다. 과연 어디에서 글을 쓸 때 글이 더 잘 써지는지 하는 게 관건이겠는데, 확실히 이곳이 집보다 더 낫다는 말을 하기는 어려웠다. 장소보다는 순간적인 집중력이 중요함을 익히 느껴왔기 때문이겠다.
노트북 장비를 가방에 챙겨 넣고 집을 나설 때 머릿속으로 숫자가 지나갔다. 6300, 갈 때마다 시켜 마시는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 가격이다. 두 시간 반 정도에서 세 시간쯤 있다가 온다고 가정하면 시간당 2,100원의 자릿세를 내고 오는 셈이다. 집에 있으면 그 돈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이건 어쩌면 돈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즐거운 나의 집, 세상 어디보다도 더 편한 내 집이 글을 쓸 때는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냥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글을 쓰는 게 더 편한 건지도 모른다.
길게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어느새 집 앞에 있는 파스쿠찌의 문을 밀고 들어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요즘은 더는 1층에서 글을 쓰지 않는다. 2층에 막성 와 보니 등받이 있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뭐 대단한 걸 쓰는 건 아니라고 해도 글이 막히면 등을 기댄다. 아주 짧은 휴식, 그러고 나서 다시 몰두해서 쓰게 된다. 아무도 나를 불러대는 이가 없다. 이미 값을 치르고 자리를 잡았으니 내게는 볼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이런 곳에서 글을 쓰는 게 확실히 편하다.
자, 지금부터 오늘의 글을 쓰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