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너의 노래!

14년 지기 정든 세탁기

by 유정 이숙한

너와 만난 지 어연 14년. 너를 처음 만날을 때 나도 풋풋한 50대 초반이었으니 젊었구나. 널 만나서 무척 반가웠지. 넓은 우리 집 화장실에 네 자리가 있었지, 네가 물을 뱉으면 기다린 통로를 타고 하천으로 달려갔어.

네가 우리 집에 올 즈음 건조되는 세탁기가 흔한 시절이 아니었. 지금은 일반화되었지만. 그땐 그랬어.

내가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대부분 탈수 기능이 있는 세탁기를 쓰고 있더구나. 너를 만나고 기뻤지.

넌 믿음직스럽고 생활형 미남이었어. 시간을 예약해도 척척해내고 찌든 때와 삶는 빨래까지 척척 해냈어.


난 그때 매일 바빴거든. 아침에 일어나면 직원들 일 시키고 제조한 물품이 출고가 잘 됐는지, 원료가 잘 입고 되었나, 냉장창고는 이상이 없는지 살펴봐야 했고 고등학생인 작은아이도 챙겨야 했거든. 그러다 우리 업장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됐어. 그땐 휑하니 넓은 창고 한쪽에 플라스틱 파렛트 위에 네 자리가 있었어, 넌 쓸쓸했을 거야. 나와 자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으니까, 세탁이 끝나면 불러주는 네 노래를 듣지 못했거든. 사무실이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커다란 이불 빨래도 척척 세탁해 주고 더러운 걸레도 깨끗이 세탁해 주었지. 참 고마웠어. 만약에 네가 내 옆에 없었다면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없었을 거야. 지금 네가 머리의 상처는 환경이 좋지 않은 창고에 있을 때 생긴 거야. 거긴 습기가 많았으니까. 난 네 옆의 초록색 천막 안에서 식사준비를 했었지. 지금 사는 곳에 널 데려와서 보니 네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했어, 아크릴 물감으로 네 아픈 상처를 덮으려고 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잘 입히지 못했어. 내 삶을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 준 게 너인데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해!

넌 지금 베란다 정해진 자리에서 묵묵히 네 일을 하고 있어. 세월이 흘러 너도 늙었고 나도 나이가 많아, 우린 친한 친구였는데 많이 아쉽다. 세탁이나 건조를 마쳤다고 불러주는 네 노래를 매일 들었는데. 요즘은 힘이 없어 탈수를 하지 못해 태클이 걸리고 있구나, 정말 미안해!


앞으로 한 주면 너와 헤어져야 할 거 같아. 네 자리에 젊은 아이가 오겠지, 그동안 고생 많았다. 널 살려내고 싶지만 헛된 욕심이라고 다들 말리는구나.. 넌 집으로 돌아가면 새로 태어나게 될까?


오늘도 힘이 달린다며 5번이나 날 불러내서 수동으로 탈수를 도와야 했어. 청바지 하나 세탁하느라 한나절이 훌쩍 가버렸거든. 다른 빨래들은 손세탁해서 어느 정도 물기를 빼주고 네게 탈수를 부탁했는데.. 네 심장이 30프로밖에 작동되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 너도 힘든데 일을 시켜서 미안하고 고맙다! 친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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