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원룸에서 나혼자 산다-
05 돈과 집,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서울에서의 삶을 견뎌내지 못하고 패잔병이 된 마음으로 고향에 내려왔다. 나이는 먹어가고 졸업요건은 채워놔야 했기에 숨죽이고 학교에 다녔다. 예전처럼 중간중간 과외도 하고 알바도 하며 지냈다. 대학교 기숙사를 신청해서 18평 아파텔에서 살진 않았다.
학교만 다니는 고향에서의 삶은 무료하게 느껴졌다. 서울 생활이 녹록지 않았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재미없는 것보단 고생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1년 만에 영어공부를 핑계 삼아 상경했다. 지난번에 신세 졌던 상도동 형님에게 염치없게 또 부탁해서 원룸 바닥에서 같이 지내게 됐다. 휴학 중인 상태로 오전에는 알바해서 용돈 벌고 오후에는 공부했다.
부모님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구한다며 용돈을 받았다. 알바해서 번 돈과 부모님에게 받은 용돈으로 상도동 형님에게 월세 명목으로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될 수 있었다. 영어학원비도 낼 수 있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여전히 돈은 부족했고 사는 건 팍팍했다. 서울에만 있는 좋은 인프라를 누릴 수 없었다. 이렇게 살 거면 굳이 고생해서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영어공부는 하면 할수록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강해졌고 경쟁력도 부족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고민했고 그것은 돈이었다. 돈을 벌어야 했고 그러려면 직장에 가야 했다. 현실적인 삶을 살기로 했고 취업준비를 했다.
취업 준비 중 상도동 형님과 따로 살게 돼서 여의도동에서 원룸 사는 형님에게 잠깐만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여 1,2개월 정도 얹혀살았다. 그렇게 취업준비를 했다.
당장 돈이 없어서 빨리 일할 수 있는 중소기업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면접자 눈에도 돈 없어서 일하고 싶어 하는 애로 보였나 보다. 월 250만 원을 벌게 되었고 한 달에 50만 원 내외로 살던 나는 더 이상 생활고는 없겠다 싶어 부자가 된 것 마냥 행복해했다.
여의도동 형님과 약속한 동거 마감 기한이 다가와서 살 곳을 구해야만 했다. 때마침 지방 대학 동기가 서울 성산동에 1.5룸을 구했다는 것을 들었다. 동기를 만나서 나는 보증금이 없다. 1.5룸이니 나는 싱크대 앞에서 자고 너는 방 안에서 자면 어떻겠느냐. 월세의 반을 내겠다. 우리 대학 때도 같이 기숙사에서 살았지 않느냐. 지방에서 올라온 너도 돈이 부족하지 않느냐. 이렇게 설득해서 성산동에서 대학 동기와 동거를 시작했다.
동기와는 6개월 정도 살다가 결국 나오게 됐다. 동기이면서 친구이지만 보증금 없이 얹혀사는 모양새여서 묘한 갑을 관계가 생겼고 나는 을이 되어 눈치를 보게 됐다. 생활의 중심은 보증금을 낸 동기였고 나는 친구에게 최대한 불편함을 주지 않아야 했다. 더 같이 지내다간 불화가 깊어질 것 같았다.
상도동 형님 집, 여의도동 형님 집, 성산동 대학동기 집, 3번을 다른 사람 집에 얹혀살면서 그간 쌓였던 것들도 있었을 것이다. 취업하면서 돈을 벌게 됐고 대출받아 이자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되어 나갈 수 있었다.
신길동에 4평짜리 원룸 전세를 구했다. 전세가 7천만 원이었다. 보증금 대부분을 대출받았다. 조선족이 많아서 서울치곤 저렴한 동네였다. 4평짜리 원룸이었지만 서울에서 처음으로, 완전히 혼자서 살게 됐다. 독립을 했다.
혼자 사는 삶은 편하고 행복했다. 눈칫밥도 없었다. 내 마음대로 티비를 틀어서 보고 내가 원하시는 시간에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할 수 있었다. 샤워도 내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 밤에 늦게 혹은 아침 일찍 들어오고 나갈 때 눈치 안 보고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서울생활 3년 차만에 전세방을 구해 독립한 것에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