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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태하 Jun 21. 2023

독립선언 후 남의 집에 얹혀살기-

04 돈과 집,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

부모님께 호기롭게 18평 아파텔에서 독립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서울에서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막막했다. 모아놓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서울 과외시장에 명함을 내밀 실력은 아니었다.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마련해야 했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고 싶진 않았다.


생활비도 문제지만 서울에서 지낼 공간, 집이 필요했다. 보증금이 있어야 방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보증금 내고 나면 생활비가 없었다. 독립 선언은 해버렸고, 독립은 해야겠는데,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살 곳을 마련해야만 했다


은인 나타났다. 아는 형님이 상도동 원룸에서 직장 다니며 살고 있었다. 고민하다 형님에게 같이 살아줄 수 있냐고 물어면서 질척거렸다. 형님도 고민 끝에 그러자고 했다. 원룸은 현관문을 열면 왼쪽에는 화장실과 싱크대, 정면에는 책상과 옷장, 오른쪽엔 신발장이 있는 전형적인 원룸이었다. 나는 박스 하나에 옷 몇 가지와 책 등을 챙겨 입주했고 1년 정도 동거했다. 침대도 없는 원룸이라 둘이서 바닥에 장판 같은 걸 깔고 잠을 잤다


힘들게 결정한 상경이기에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하고 싶었다. 서울에만 있는 마케팅 동아리도 하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학점교류생도 했다. 다시없을 시간이라 생각해서 신경이 예민했었고 마음이 조급했다. 이기적인 판단도 많이 했었고 뭐든 빨리 이루고 싶었다.


얹혀사는 주제에 빨래, 설거지, 청소 등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았었다. 나 하고 싶은 것만 했다. 눈치는 있어서 형님의 사소한 행동들에 괜히 눈칫밥을 먹었다. 자고 있을 때 들리는 세탁기 소리, 설거지 소리, 청소기 소리는 나를 작아지게 했다. 그래서 나름 음식 만들어주고 청소도 해보고 하려 했었지만 형님 성에 차않았을 것이다.


서울생활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갈까 수없이 고민했다. 뭐 대단한 일 하겠다고 굳이 이 고생을 하는가 싶었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내서 서울에서 지내보기로 했다. 방학  집중적으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했다.


상도동에서 살다가 암동으로 학점교류생을 다니게 되면서 고시원으로 이사했다. 택시비가 없어서 나는 지하철로 이동고 짐 1박스는 고시원으로 택배보냈다. 고시원에서는 3개월 정도 있었다. 침대는 좁은 데다 오래돼서 삐걱거렸고 화장실은 샤워한 후 물바다가 되었다. 방음은 잘 안돼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1끼에 2끼 치를 욱여넣거나 대충 먹으며 살았다.


서울에서 학점교류생을 신청한 이유는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서였다. 자신감도 좀 있었다. 하지만 수한 학생들에 비한 열등감과 나의 미천함만 느끼게 되었다, 고시원에서 살아가는 생활의 어려움까지 겹치며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극에 달했고 피부는 다 뒤집어졌었다. 성적도 대학생활 중 최하였다. 힘들었어서 그런지 잘 기억나지 않는 시기이다. 


돈 없는 지방 출신이 연고 없이 서울에서 살아기란 쉽지 않았다. 돈은 다 떨어졌고 뭔가를 해서 돈을 벌 자신도 없었다.


결국 1년 만에 서울생활을 접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게 됐다. 고향으로 내려갈 때의 기분은 패배자가 된 기분이었다. 패잔병이 되어 부대로 복귀하는 병사의 심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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