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찬장 정리 하다말고 전을 부쳐요
언제였던가. 이 장조림 캔을 찬장에 넣어뒀던 것이. 언제고 여행 전에 샀던 것들, 여행지에서 샀던 것들이다. 또 언젠가 해외여행 갈 때 들고 가자며 남은 반찬캔 굳이 아껴 다시 컴백홈 한지가 1년은 족히 지난 것 같다. 흠, 해외여행은 무슨, 마스크만 줄곧 쓰고 다니다 찬장 정리할 때나 보물찾기 하듯 발견하는 중인걸.
부엌 찬장도 냉장고와 비슷해 유통기한 유독 긴 상온보관 것들이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본격적인 대청소가 아니고서야 다시 꺼내기가 참 어렵다는 말씀. 그래도 정리 한 번 해야지. 괜한 군소리 더하며 겨우 엉덩이 떼고 일어나줘야, 아직도 유통기한 한참 남은 그것들이 손안에 들어온다. 넣어둔 기억은 이미 증발해 다 사라졌는데, 유통기한은 참 많이도 남았네!
팬트리 정리함을 사서 차곡차곡. 자주 먹는 식료품들 열 맞추는 숏츠나 릴스는 많이 봤는데, 또 손발은 안 움직이고 머리로만 정리를 끝냈다. 아, 이사라도 새로 가야 저렇게 예쁘게 정리해 두고 살지 소리도 이쯤되면 습관이고. 생각날 때 교정해주지 않으면, 살림을 머리로 하는 것이 곧 습관이 되고 만다.
돼지고기와 메추리알이 섞인 장조림 캔이 두어 개. 그대로 뒀다가는 언제 갈지도 모르는 해외여행 전에 먼저 하늘로 가실 것 같아 구태여 꺼냈다. 한데 이걸로 뭘 만들면 좋을까? 비도 오는데. 그 궁리도 귀찮아 그저 비가 오니까 부쳐먹고 말지 했다.
생반찬처럼 바로 만들어 먹는 맛은 없어도, 남이 해준(?) 반찬이라 그런지 밥이랑 같이 먹기만 해도 맛있다. 그치만 보물 찾기로 찾아낸 나름 보물이니까, 색다르게 내 스타일로 즐기면 더 좋겠지, 암. 묵은 반찬을 생반찬처럼 만들려면 역시 불에 지지는 것이 제일 아니겠는가.
장조림 캔을 열고 돼지고기를 결대로 찢는다. 메추리알은 숟가락으로 꾹꾹 눌러 으깬 다음, 고여있던 장조림캔 국물도 같이 부어 따로 간을 하지 않는다. 거기에 부침가루와 물을 보태면 부침개 반죽 완성. 홍고추, 청양고추, 쪽파도 쫑쫑 썰어 넣고 휘~ 저으니, 달달하고 고소하고 매콤한 반죽 향기가 금세 올라온다.
김치고, 오징어고, 녹두고, 부추고, 다 좋아도 부침개 하려고 그것들 사오고, 손질하고, 자르기가 여의치 않을 때는 돌아다니는 반찬캔 하나 뜯어 부치면 된다. 캔 속에서 묻어나온 '묵은 맛도 묵은 향도 다 달아나라', 주문을 외우며 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둘러치면 준비 완료.
지글지글 열 오른 팬에 한 국자 듬뿍 반죽을 올려 펴면, 납작하게 눌린 물기가 치익치익 소리와 함께 날아간다. 우리 집 기름 냄새야 멀리멀리 퍼져라, 자랑하는 마음 반, 고약스러운 마음 반으로 창문도 열고 보니, 추적하게 내리는 비와 함께 오늘도 나만의 부침개 완성. 안팎으로 들리는 자글자글 소리에 막걸리도 하나 꺼내 철퍽 주저앉아 부침개 한 점 뜯어먹으면, 우리 집이 무릉도원이고 유토피아다.
그 맛을 보면, 반찬캔으로 이런 부침개를 만들다니 스스로에게 탐복한다. 이대로라면 찬장에 쌓인 통조림들 전부 따서 사나흘은 부침개로 연명해도 되겠다. 유통기한 지나기 전에 부지런히. 저도 모르게 찬장이 깨끗해지니 어깨 춤도 같이 나는 장조림 캔 뚝딱 부침개 상세 레시피는 아래 새미네부엌 사이트 참고.
✅장조림 캔만 있으면 뚝딱, 부침개 재료
주재료
쓱쓱싹싹 밥도둑 돼지고기 장조림 캔 1개(80g)
부침가루 1컵(150g)
부재료
청양고추 1개(10g)
홍고추 1/2개(5g)
쪽파 3줄기(30g)
양념
포도씨유 3스푼(30g)
물 약 1컵(180mL)
✅장조림 캔만 있으면 뚝딱, 부침개 만들기
1. 쪽파, 청양고추, 홍고추를 다진다.
2. 볼에 모든 재료를 넣고 섞는다(장조림 캔의 국물도 모두 사용하면 별도의 간 없이 만들 수 있다).
3. 예열 팬에 포도씨유를 두른 후 중불로 앞뒷면을 노릇하게 부쳐주면 완성!
TIP. 예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반죽이 기름을 많이 먹기 때문에 충분히 예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