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겨울 간식'이 떠오르는 날씨. 이토록 거대한 일교차로, 집 밖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발걸음에 따라붙는 찬바람이 살벌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도 출근길 머릿속 내내 '란'이 떠오르는 걸까. 끈적하고 기름맛 나는 뜨끈한 호떡이며 붕어빵도 좋지만, 은은하고 달큰한 가을의 먹거리들을 조물조물 직접 손으로 뭉쳐 빚은, 란이 문득.
전통 찻집에 가면 간혹 밤으로 만든 '율란'을 다과로 내어주는데, 그 달달하고 고운 맛이 아침나절 내내 입가를 맴돈다. 한국 전통의 디저트 '란'은 과일을 찌고 다져 본래 모양을 흉내 내 빚어내는 '과일류를 익혀서 만든 과자'다. 다졌을 때 입자가 다시 뭉쳐지기 좋은 것들로 만들면 손으로 빚는 맛도 재미진 귀요미 먹거리. 특히 가을에 나는 밤이며 고구마며 호박이며, 먹었을 때 묵직한 것들을 으깨 만들면 점토놀이 하던 어린 날이 생각나는 아주 놀잇감이 따로 없는 요리.
최근 시즌 메뉴로 여러 카페에서 볼 수 있는 '밤 라테'라든가, 핫한 OTT 요리 예능 속 '밤 티라미수' 등 다양한 밤 메뉴들이 여기저기 인기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무르익어 묘하게 단 밤을 더 달달하게 만들면 진해진 단밤의 향이 혀에서 코로 넘어오는 가을의 율란. 게다가 집에 벌써 박스째 쟁여 후숙에 들어간 단고구마라든가, 다시 돌아온 할로윈 시즌을 맞아 집어 온 단호박도 란으로 만들기에 딱 좋다. 그러고 보니 '단 것'들만 줄줄이 사탕인 것이, 역시 빼박 살찌는 계절이 아닌가!
밤, 고구마, 단호박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익힌 후 체에 걸러 곱게 내린다. 숟가락 같은 도구로 으깨도 좋다. 체에 내린 밤 가루, 고구마 가루, 단호박 가루에 꿀, 계핏가루, 소금 등을 넣고 본래의 모양으로 몽실몽실 빚어준 다음, 밤 머리에는 깨를 얹고, 고구마에는 자색고구마 가루를 발라주고, 단호박 란은 둥글게 호박 모양을 내준 다음 호박씨를 척 얹어 나름 호박 꼭지 모양도 흉내 내준다.
이 모든 과정이 다 요리라니, 놀이 같은데? 만드는 방법도 그저 놀이처럼 느껴지는 '란'은 따뜻할 때 입 속에 넣으면 그 은은한 온기가 식도를 따라 내려가면서 내 속을 다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든다. 달콤한 간식이 입 속에서 바스러져 뱃길을 타고 밤의 향기가, 고구마의 향기가, 단호박의 향기가 흐른다. 그 향기가 다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밖으로도 온기를 뿜어내주길 바랄 뿐.
부엌에서 엄마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지 우리 집 어린이가 다가와 물끄러미 쳐다보면 "엄마 클레이 만들어. 미니어처 만들기. 너도 해볼래?" 응당 권유하는 것이 인지상정. 이거 진짜 먹을 수도 있다고 얘기하니 눈만 꿈뻑꿈뻑하는 어린이도 쌉 가능한 놀이, 아니 요리! '율란' 만드는 상세 레시피는 아래 새미네부엌 사이트 참고.
✅찬바람이 서늘하게 코끝을 스치면 '율란' 재료
주재료
밤 20알(200g)
부재료
통깨 1스푼(4g)
양념
꿀 2스푼(20g)
계핏가루 1/2스푼(1g)
소금 약간
✅찬바람이 서늘하게 코끝을 스치면 '율란' 만들기
1. 깐 밤은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넣고 랩을 씌워 4~5분간 조리해요.
2. 조리된 밤은 체에 곱게 내려요.
3. 체에 내린 밤에 꿀, 계핏가루, 소금을 넣고 본래 밤 모양으로 만든 후 깨로 머리 모양을 꾸며주면 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