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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Apr 14. 2024

백인 남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사회는 아직도 생각보다 차갑다

인종차별. 외국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남편과 꼭 붙어 다니기까지 그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사이가 가까워지고 결혼을 하고 나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백인 남성인 그와 아시안 여성인 나의 차이가 드러나게 됐다.


당시 남자친구와 같이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혼자 다닐 때와, 남편과 동행할 때의 주변 반응이 사뭇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이든지 일처리가 왜인지 더 수월해지고 빨라졌다. 가만히 걷다가 괜히 인종차별적인 욕을 듣는 일 또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 갑자기, 길 가다가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듣는다.)


제일 차이가 나는 상황은 의외로 공항인데, 남편 없이 혼자 비행을 하려면 문제가 안 생겨도 될 부분까지 꼭 문제가 생기는 반면, 남편과 함께 있으면 그렇게 순탄한 비행일 수가 없다. 학생 시절 혼자 비행하다가 출국심사에서 정당한 이유도 없이 여권을 가져가더니 조사당한 적이 있는데 - 내가 예상하기로는 다음 비행시간이 30분 밖에 남지 않아 초조해 보였던 내가 의심스러웠나 싶다 - 남편과 함께 동행할 때면 (보통 남편이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거나 외국 비자 쪽에 사람이 너무 몰려서 인지 미국/외국 비자를 같이 심사를 받아 함께 나갈 때도 있었다.) 0.2초 만에 통과된다. 내 서류를 제대로 보지도 않는다. 해외생활을 오래 했다 보니 비행을 빈번히 하였지만, 남편과 비행을 하며 20년 평생 알던 공항사의 다른 면을 처음 보았다. 비행에 똑같이 문제가 생겨도 남편의 컴플레인을 쉽게 받아주는 걸 보며 기분이 묘했다.


병원에서 일하며 온갖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다 들어봤지만, 웬만한 경우 일반적으로 환자들에게 듣는 말은 “어디서 왔어?”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그런데 아시안 발음이 아니네? “ 였다. 그러면 웃으며 “뉴저지에서 자랐거든요.” 하면 “아, 그래서 그렇구나.” 하며 이해한다. 발음이 다르면 다르다고 차별받고 발음이 능숙하면 능숙하다고 해명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다니면 다들 당연하게 내가 미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다니면 한 번도 “어디서 왔냐,” “그런데 발음이 왜 아시안 발음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개인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미국에서 불필요한 나의 개인정보를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쌓이며 도달한 결론은, 남편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더 대우받는다,라는 것이었다. 나라는 사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있음으로 나의 중요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 피부로 느끼는 것은 달랐다.


연애 초창기, 인종차별이 당연했던 나와 달리 인종차별을 겪지 않고 자란 남편은 서로의 관점을 이해 못 할 때가 종종 있었다. 남편은 쉽게 나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겪는 어려움과 그로 인해서 생긴 나의 사고방식을, 남편은 내가 그저 부정적인 사람이라 생긴 문제처럼 받아들일 때가 있었다. 나와 너무나도 각별하고 가까운 존재인 남편, 심지어 같은 공간에서 자라왔지만, 그 안에서 각자 겪는 경험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었다.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수차례에 걸쳐 긴 대화가 이루어지고, 남편과 나의 관계가 더 가까워지며 의도치 않게 남편은 간접적으로나마 내가 겪는 차별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하기를 “정말 이 정도일 줄은, 그럴 줄은 몰랐다,“ 했다.


이제는 이해의 간격이 많이 좁혀져서 더 이상 이 부분에서 남편과의 마찰은 없지만, 아직도 가끔은 마음이 조금 시릴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하게 많은 관심을 받아 개인적으로 겪은 인종차별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써 둔 글입니다. 더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은 보러 와주세요.

https://brunch.co.kr/@abri/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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