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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브리 Apr 28. 2024

미국에서 아직도 인종차별이라니

“칭챙총”이 귀에 익어버렸다

최근에 인종차별을 가볍게 다룬 브런치 (https://brunch.co.kr/@abri/48​) 를 발행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웠다. ​많은 관심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솔직히 좋은 얘기도 아니라 깊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동정심을 자극하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감성적으로 글을 쓰는 재주도 없어 투박하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말하기에는 흥미롭지 않을 거란 걱정도 있었다. 그래도,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니까. 궁금한 분들이 계시다면 간단하게나마 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 글을 쓴다.




이미 여러 번 기록하였듯, 외국에서 자라 온 나는 인종차별에 익숙했다. 사실 어느 순간 무더져갔다. 길 가다 듣는 “칭챙총” 소리를 못 듣는 경우가 빈번해져 나중에 눈치 보던 친구에게 전해 들을 만큼.


그러나 병원에서 일을 시작하며 내가 모르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이번 글은 병원에서 내가 겪었던 인종차별을 중심으로 써보려고 한다.


의료보조로 일한다는 것은 의사 선생님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환자를 볼 수 있기 위해 미리 준비 작업을 다 해둔다는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만큼 환자와 대면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환자 차트 준비를 다 해두고 클리닉 시간이 되면 환자를 대기실에서 부른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몸무게를 잰다. 여기서부터 이미 기분이 싸할 때가 있다.

내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듣고 인사를 건네면 가볍게 씹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못 들으셨나 싶어 몇 번 더 인사를 건네어도 눈도 안마주치며 지나가버린다. 나를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하는 거다. 하루에 60명가량에 환자를 보는데, 놀랍게도 10명 정도는 매번 그런 분들이 계신다.


심한 경우는 본인의 이름이 불리고서는 나를 한번 쳐다본 후 다시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하신다. (???) 어쩔 수 없으니 여러 번 더 이름을 부르면 심통 난 표정으로 들어오신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솔직히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미 진료실로 들어가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진 상태로 환자가 복용하는 약과 기본 상태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시작한다. 필요한 경우 간단한 심전도 등의 테스트까지 진행한다. 그런데 치료를 위해 필수적으로 대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나를 가만히 노려보며 아무 대답도 안 하실 때가 있다. 나도 뭐 별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기에 지지 않고 수차례 다시 물어보면, 약이 담긴 봉투를 쾅하고 책상에 던지거나 본인 성질에 못 이겨 고개만 예, 아니요, 로 저으며 답한다.


그러다 백인 의료 보조인이 바이탈 (혈압, 심박수 등)을 재러 들어오면 그렇게 상냥하고 사글사글하게 대할 수가 없다. 그들에게는 본인 손녀 이야기까지 늘어놓으면서 나의 질문에는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아 백인 의료 보조인이 대신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환자 분은 그제야 답을 하며 좁은 진료실에서 굳이 얘기를 건너 듣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환자분이 말이 굉장히 많은 경우도 있는데, “너는 어디서 왔냐,”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 “ 하면 ”아, 그러니까 중국? “ 이런다.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기 위해, ”가까이 위치해 있긴 한데, 한국이라고 다른 나라예요,“라고 답하면, ”그게 중국이지, 난 차이를 모르겠더라. 너네 다 똑같이 생겼잖아,”라고 한다. 혹은, “너는 아시안이니까 불법체류자겠네, 합법으로 일하는 거 맞니? “라고 묻기도 한다. 이런 식의 대화를 내가 답을 하지 않아도 일방적으로 몇 분 가량을 지속한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화가 나있는 상태라 내가 묻는 질문 하나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왜 자기가 질문에 답해야 하냐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딱 한번 들어 봤지만 쌍욕을 하기도 한다.


누가 봐도 심각한 인종차별이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다른 백인이 아닌 동료들도 숱하게 겪고, 이제는 그냥 서로 농담으로 주고받는 이야기. 믿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은 안타깝게도 먼 옛날 일이 아니라 2024년,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다.


원칙적으로는 무례한 환자를 보면 신고할 수 있지만, 내 위치에서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대처를 할 수가 없다. 의료 보조인이나 일반 간호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힘이 없다. 내 경험상, 의사를 수차례 모욕하는 경우에서나 겨우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에 대한 잔뼈가 굵은 편이라 웬만한 경우에는 끄떡없는 편이다. 별생각 없이 진료실에서 나오면 밖에서 훔쳐들은 동료들이 호들갑 떨며 걱정해 주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되려 의아해하며 ”왜?” 하고는 눈치조차 채지 못할 때가 많았다. (웃프게도 그럴 때는 끝까지 몰랐으면 괜찮은데 괜히 알게 되어 그제야 기분이 상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유난히 차별이 심한 날에는 하루 종일 찝찝하다.


이제는 다른 이유로 퇴사했지만, 더 이상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매일 같이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스트레스도 현저히 줄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건,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만나는 환자 분들 중 정말 뜻깊고 좋은 분들도 많이 뵈었고, 동료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도 미국인, 또 백인 아닌가.


그러나 어딜 가나 심적으로 매우 불우한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인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내가 해를 입어야 한다는 것이 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1초라도 더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아까워, 최대한 금방 털어버리려 한다. 오늘도 나는 그들보다 한걸음 더 앞으로 나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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