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아파트 단지 앞에서 검은 고양이가 몸을 움츠리며 조용히 나를 노려봤다. 어두운 하늘, 어두운 풀 숲에 검은 고양이의 노란 눈빛만 날카롭게 빛났다. 힘없이 그놈과 눈을 마주치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밝은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김팀장, 얘기 들었어?"
기획실 입사 동기 이 부장이었다.
"무슨 얘기?"
"지금 TV 매출이 너무 떨어져서 회사에서 디스플레이 파트를 대폭 축소한다고 하네. 아마 인원을 대폭 감원하려고 할 거야."
그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TV대신 스마트 폰을 보느라 내가 일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분야 매출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얼마나 감원할까?"
"아마 팀 별로 4~5명은 자리를 빼고 스스로 나가도록 할 것 같아. 잘 버티라고."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강아지 벤이 꼬리를 흔들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역시 나를 반기는 건 너밖에 없네.'
아내는 안방에서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여보 애들은?"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애들은 스카 갔죠." 아내는 침대에 누워 대답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는 딸들 때문에 하루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냉장고 문을 열고 켄 맥주를 하나 꺼내 식탁에 올려놓았다. 벤은 뭐가 좋은지 계속 꼬리를 흔들며 내 발을 간지럽혔다. 그때 아내가 안방에서 나와 내게 물었다.
"여보 과일이라도 깎아줄까요?"
"응? 과일? 좋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맥주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 아내는 방금 깎은 과일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처음 보는 과일이었다.
"여보, 이게 뭐야? 키위야?"
"레드 키위요. 연락 못 받았어요?"
"무슨 연락?'
아내는 낮에 레드 키위가 한 상자 배달됐다고 했다. 발송인이 모르는 사람이라 전화를 걸어보았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나의 대학 동기인데 제주도에서 레드 키위 농장을 하게 돼서 올해 첫 수확물을 보냈다고 했다.
"이름이 상자에 뭐라고 쓰여 있었어?"
"송경묵이요. 당신하고 오래된 친구라고 하던데요."
"경묵?"
나는 경묵이가 보낸 레드 키위를 포크로 집어 입에 넣어보았다. 아주 달콤하면서 새콤했다. 아내는 레드 키위가 일반 키위와 무화과를 교배해서 만들었다고 알려줬다.
경묵이는 대학교 동기였다. 같은 동아리에 들어온 친구였다. 경묵이는 정말 남달랐다. 제주도에서 서울 명문대에 들어왔다는 것도. 그것도 전체 대학 수석으로 법대에 합격했다는 것도.
나와 경묵이가 가입한 동아리는 그 시대 대부분의 동아리가 그러하듯이 운동권 동아리였다. 그때는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이어받아 9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던 시대였다.
경묵이는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정말 뛰어난 학생 운동가가 되었다. 특유의 뛰어난 머리로 어려운 마르크스 이론을 공부했고 그것을 우리들에게 설명해 줬다. 어느새 경묵이는 우리 학번의 운동권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나는 그런 경묵이가 부러웠다. 경묵이는 너무 완벽하게 우리가 살기를 바랐다. 우리는 경묵이의 눈치를 보며 노래방이나 당구장을 가야 했고, 가끔 경묵이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호된 비난을 받아야 했다.
학생운동 이론 세미나가 끝나고 경묵이가 말했다.
"동지들, 우리는 치열해야 합니다. 아직까지 힘들게 투쟁하는 활동가들이 있고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지들이 술에 취해 노래방이나 가고 당구장이나 간다면 부르주아들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연애할 시간도 없습니다. 치열하게 이론 공부를 해야 하고 민중들과의 연대 투쟁을 하며 미래 활동가가 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경묵이는 이론뿐만 아니라 생활에서까지 철저하게 살아갔고 결국 고학년이 돼서는 전국 운동권 조직의 중요 직책을 맡는 위치까지 가게 됐다. 나는 선배들 따라 몇 번 시위를 나가다 유치장에 가게 됐고 그것을 부모에게 들켰다. 결국 강제로 군대에 보내줬고, 그 이후는 경묵의 소식을 동아리 선후배들과의 편지를 통해서 듣게 됐다. 군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여 동아리에 들렀다. 후배들 몇몇이 동아리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참을 후배들과 이것저것 얘기하다가 경묵의 소식을 물었다.
"경묵이 형이요? 아마 지금은 어디 현장에 위장 취업했을걸요."
"그래? 졸업도 안 하고?"
"형 군대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묵이 형이 노태우/전두환 연희동 진격 투쟁 주모자로 몰려서 수배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잠수 타면서 노동 현장에 취업한 걸로 알고 있어요."
어느새 난 졸업을 했고, 취업을 했고, 결혼을 했다. 경묵이와는 연락이 안 돼서 결혼식에 초대도 못했다. 결혼식을 찾은 동아리 선후배들에게 경묵의 소식을 들었다. 경묵이는 결국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갔다고 했다. 다행히 6개월 옥살이를 하다가 집행유예로 나와서 모 국회의원 비서로 일한다고 했다. 그 뒤로는 바쁜 일상에 쫓겨 경묵이를 잊고 살았다.
그리고 몇 해전 동아리 선배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경묵이를 만났다. 거의 20년 만의 재회였다. 경묵이는 많이 변해 있었다. 깡마른 몸매는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고, 얼굴도 푸짐하게 살이 쪄서 기름끼가 흘렀다.
"경묵아! 정말 오랜만이다. 어떻게 지냈어?"
"영실아! 반가워."
경묵이는 국회의원 비서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대치동 논술 강사가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아주 유명한 일타강사라고 자랑까지 했다.
"너희 자녀들 논술해야 하면 나한테 보내!" 명함을 돌리면서 경묵이가 말했다.
난 경묵이만은 그래도 우리랑 다르게 살 줄 알았다. 아니 다르게 살길 바랐다. 우리와 똑같이 돈 걱정을 하며, 어떻게 돈 많이 벌까?를 고민하는 경묵이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의 말을 들고 있자 역겨움에 토악질이 나려고 했다. 나는 분을 못 이기고 소주잔을 연거푸 들이키며 경묵이를 째려봤다. 경묵이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술이 취해 주먹으로 탁자를 "쿵"하고 내리쳤다. 그리고 그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야! 송경묵. 너는~너는..... 그러면 안 되지 않아?" 내 눈시울은 붉게 충혈됐다.
"너는 우리랑 다르잖아. 네가 대학교 때 우리한테 그렇게 얘기한 건 다 어디 갔어? 너도 우리랑 똑같이 이렇게 살 거면서 그렇게 잘 난척했니?"
동아리 사람들이 나를 말리기 시작했다. 양쪽에서 내 어깨를 잡고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다.
"자본주의를 그렇게 싫어하고, 지배계급을 그렇게 비난했던 네가, 사교육을 얘기하고 억대 연봉을 얘기하는 것 역겹다!"
그때 경묵이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실아! 그래도 난 너만은 나를 이해해 줄 줄 알았어. 미안하다~."
경묵이는 장례식장을 조용히 나갔다. 그리고 소식이 끊겼다. 장례식 이후, 논술 강사를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은 몇 년 후에 듣게 됐다.
그날 장례식장을 나와 집으로 가면서 나는 왜 그렇게 경묵이를 호되게 비판했는지 생각해 봤다.
대학도 수석으로 들어와 똑똑하고, 우리의 리더였던 경묵이에 대한 열등감이었을까? 아니면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경묵이에게 쏟아부은 것일까? 부모 핑계로 비겁하게 운동권에서 도망간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을까? 아니면 경묵이만은 끝까지 이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에서 희망이 되기를 바랐을까? 그 마저 포기한 이 시대에 대한 절망의 외침이었을까?
다시 레드키위를 입안에 가져갔다. 아주 달콤했다. 차가운 이미지의 경묵이와 어울리지 않은 달콤함.
경묵이는 왜 제주도로 내려갔을까? 정말 장례식 때 내 애기 때문이었을까?
'경묵아! 이제는 편하게... 편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이제 너를 우리의 리더가 아닌 친구로 맞이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