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믿음과 상상 Oct 08. 2024

쌀 떡볶이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단편 소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퇴근하신 것 같았다.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엄마는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쌀 떡볶이를 하얀색 예쁜 접시에 담고 있었다. 나는 밀 떡볶이보다 쌀 떡볶이를 더 좋아한다. 밀떡은 특유의 밀가루 냄새가 나서 싫다. 그러나 쌀떡은 부드럽고 쫀득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나는 엄마에게 기쁜 마음으로 물었다.


"엄마 이것 내 거야?"


그러나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내가 중간고사를 못 본 이후로 엄마는 나를 본척만척했다. 나는 풀이 죽어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놈의 떡볶이 지겹지도 않아? 대체 언제까지 먹을 거야?"


엄마는 아빠의 말에 대답 없이 떡볶이만 먹었다. 조용히 쌀 떡을 오물오물 씹었다. 그리곤 냉장고에서 소주를 가져와서는 안주삼아 떡볶이를 먹었다. 아빠는 안방 문을 쾅 닫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시험을 못 보고 나서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나빠진 것 같아서 나는 괜히 주눅이 들었다. 


---------------------------------------------------------------------------------------------------------------------------


"민지야! 오늘 노래방 갈래?" 단짝 서현이 내게 말했다. 

"아니, 나 시험 망쳤어."

"그래도 시험 끝났으니까 놀러 가자." 예은이가 내 팔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안돼. 시험 못 봤는데 놀러 가기까지 하면 엄마한테 맞아 죽을걸."

"야~ 너 외동딸이라며? 하나밖에 없는 딸을 설마 그렇게 하겠어?" 서현이 휴대폰으로 놀러 갈 곳을 검색하며 말했다.

"네가 우리 아빠, 엄마를 몰라서 그래. 둘 다 스카이 나와서 나도 스카이 들어가야 한다고 엄청 스트레스 줘."

"서현아! 우리 노래방 갈까?" 예은이 서현에게 제안했다. 

"그래! 좋아~~."

"너희끼리 가." 

난 친구들을 멀리하며 고개를 숙이고 발길을 옮겼다. 뒤에서 서현의 음성이 들렸다.

"민지야! 정말 안 갈 거야?"


한 참 걷다 보니 어느새 수학학원 앞이었다.  수학 학원 선생님은 시험을 못 봤다고 혼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오게 된 것 같았다. 학원에 들어가니 수학 선생님이 깜짝 놀라 말을 건넸다.

"민지야! 웬일이야? 오늘 시험 끝나지 않았어?"

"네 맞아요."

"그럼 좀 쉬지 왜 왔어? 하루쯤은 쉬어도 돼."

"시험을 망쳤어요. 집에 가면 엄마한테 죽어요."

"얼마나 못 봤는데? 문제가 많이 어려웠니?"

"60점 정도 맞았어요."

수학 선생님은 나에게 수학 시험지를 달라고 했다. 한 참 문제를 보더니 수학선생님이 물었다. 

"시간이 많이 부족했겠구나! 너희 학교 시험 문제가 시간이 많이 부족한 문젠데. 일단 다시 한번 풀어봐. 왜 못 풀었는지 같이 분석해 보자."


난 수학 선생님 말씀에 마음이 편해졌다. 시험을 못 봤다는 걱정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틀린 문제들을 다시 풀어봤다. 이상하게 모든 문제가 술술 풀렸다. 시험 때 왜 틀렸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생님 다시 풀어보니 한 문제 빼고 다 풀려요. 시험 볼 때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고 잘 안 떠올랐거든요."

"원래 고등학교 시험이 그래. 변별력을 만들려 하다 보니 시험 시간이 부족하게 출제가 돼. 네가 이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학습량을 더 늘려서 많은 문제를 푸는 수밖에 없어."

"근데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 해서 수학만 공부할 수는 없어요. 다른 과목도 많이 부족하거든요."

"맞아. 너 성적대 아이들이 다 그래. 일단 실망하지 말고 고1 시험 조금 못 봐도 계속 열심히 하면 고2 때부터는 성적이 오를 수 있어. 정 안되면 논술이나 정시로도 대학 갈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틀린 문제들 거의 다 풀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난 속으로 수학 학원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말을 들으니 불안과 걱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선생님의 격려와 위로에 용기를 잔뜩 가지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오자마자 엄마는 거실에서 소리쳤다. 


"지금 몇 시야? 전화해도 받지도 않고. 너 오늘 시험 어떻게 봤어? 몇 점이야? 시험지 가져와 봐."

엄마는 재촉했다. 안방에 계시던 아빠도 거실로 나오며 말했다.

"요새는 고1부터 다 1등급 받아야 스카이 간다고 하던데, 민지 어떻게 봤어?"

엄마는 내 가방을 아예 낚아채고 시험지를 꺼냈다. 그리고 시험지에 적힌 60점이라는 점수를 봤다. 

"이것 뭐야? 60점? 아니 너 공부를 어떻게 한 거야? 학원 다니면서 제대로 한 것 맞아? 너 공부한다고 하면서 휴대폰하고 논 것 아니야?" 

아빠가 깜짝 놀라며 엄마에게 시험지를 뺐었다. 

"아니? 이런 문제를 왜 틀려? 지금 나도 풀 수 있을 것 같은데, 비싼 돈 들여서 학원 보내줬더니 제대로 공부나 하는 거야? 아빠는 학원도 안 다니고 혼자서 공부했다고?"


난 아빠에게 짜증을 냈다.

"아빠 때랑 달라? 요새 학원 안 다니는 얘들이 어딨어? 아빠 때보다 문제도 더 어려워졌다고~."

"뭐? 이딴 식으로 할 거면 학원 때려치워~. 공부도 못하면서 돈은 왜 써? 내가 너 학원비 벌려고 어떻게 일하는지나 알아?"

"그만두면 돼 잖아. 학원 안 다니면 될 것 아니야.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가 끼어들었다.

"이게 뭘 잘했다고 큰 소리야? 너 평소 인스타도 하고, 웹툰도 보고, 친구들하고 노는 것 모를 줄 알아? 내가 계속 참았다고. 시험 공부하는데 스트레스받을까 봐. 그런데 이게 뭐야? 네가 열심히 안 했으니까 점수가 이 모양이지~."


난 울면서 집을 뛰쳐나왔다. 너무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 아빠가 미웠다. 수학 선생님은 날 이해해 줬는데. 눈물이 안경으로 흘러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한 참을 가다 보니 신호등이 나왔다. 눈물에 젖은 안경 때문에 녹색불 신호가 얼마가 남았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난 가슴이 답답해서 횡단보도를 달려 나갔다. 옆에서 큰 트럭이 오는 것 같았다. 다행히 신호등을 건넌 나는 숨을 헐떡였다. 

'어디를 가지? 맞아. 친구들이 노래방 간다고 했지?'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반복해도 아무도 받지 않았다. 난 친구들이 노래를 시끄럽게 부르느라 내 전화를 못 받는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갈 만한 노래방을 찾아다녔다. 한 참을 찾아다니가 친구들들을 발견했다. 서현이와 예은이는 노래방에서 이상한 가발을 빌려서 그것을 쓴 채로 춤을 추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방 창밖에서 그들을 넋놓고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웃고 놀 기분이 아니었다.  나는 자주 가는 만화카페에 들러 한참을 만화책을 보다가 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조용히 현관 비번을 누르고 들어간 집은 고요했다. 

'다들 어디 갔지? 둘이 술이라도 마시러 나갔나?'


나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실에 나와서 날짜를 확인해 보니 며칠이 흘러있었다. 

'응? 이게 뭐지? 며칠씩 잠이 들었나? 근데 엄마는 나를 왜 안 깨웠지?'

엄마는 식탁에 앉아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엄마 나도 먹어도 돼?"

엄마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떡볶이만 먹었다. 아직 나한테 화가 안 풀린 것 같았다. 난 가방을 메고 아침도 굶고 학교에 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다. 교실에 오니 반 분위기가 조용했다. 그리고 내 책상 앞에는 흰색 꽃병에 예쁜 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난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꽃에 코를 갖대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난 조용히 옆자리 서현에게 물었다. 

"서현아! 이 꽃 뭐야?" 

그러나 서현은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서현은 아예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애들이 다 이상하네.' 

반 친구들은 하루종일 말이 없었다. 선생님들도 다른 말 없이 수업만 하셨다. 나도 조용히 수업만 듣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


침대에 누워있던 나는 엄마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걱정이 되어 조용히 방문을 열었다. 엄마는 떡볶이를 먹다 말고 식탁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었다. 난 엄마 앞에 앉았다.

"엄마 미안해! 앞으로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 잘 볼게. 그러니 이제 그만 울어. 엄마가 그러니까 나도 더 속상하잖아. 이제 공부만 해서 꼭 명문대 들어갈게."

엄마는 내 말을 듣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러더니 베란다를 향해 걸어갔다. 

"엄마 어디가?"

엄마는 베란다 방충망을 열고 어둠이 짙은 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아래로 뛰어내리려고 했다. 난 엄마에게 달려가며 아빠를 불렀다.

"엄마 왜 그래? 아빠~ 큰일 났어. 빨리 나와봐. 엄마가 떨어지려고 그래."

아빠는 내 말을 듣고 안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베란다 안전 펜스를 넘어가려는 엄마의 허리를 안았다. 

"여보 왜 그래? 그런다고 민지가 살아 돌아오지 않아."

아빠는 엄마의 허리를 잡고 가까스로 베란다에서 멀어지도록 거실로 안고 들어왔다. 엄마는 발버둥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놔~ 놓으라고. 민지 없이는 살 수 없어. 우리 민지 없이 살 수 없다고. 민지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 시험 못 봤다고 혼낸 거. 정말 미안해~."

아빠는 엄마의 어깨를 안으며 엄마와 함께 흐느껴 울었다. 엄마는 아빠의 품에서 엉엉 울며 말했다.

"민지 시험 보고 온 날, 내가 쌀 떡볶이를 많이 했어요. 우리 민지 주려고. 그런데 그것을 먹이지도 못하고 시험 못 봤다고 혼내서 민지를 죽였잖아~. 다 내 잘못이야."


'뭐? 내가 죽었다고?'

그때 문득 횡단보도를 건너던 일이 떠올랐다. 눈물에 젖은 안경 때문에 앞이 흐릿하게 보였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간에 신호동이 빨간불로 변한 것을 못 봤다. 그리고 큰 트럭이 달려가던 나를 덮친 것이 떠올랐다. 나는 충격에 며칠간 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엄마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내가 좋아하는 쌀 떡볶이를 하고 소주와 함께 그것을 먹었다. 아빠는 그런 엄마에게 처음에는 그만하라고 말을 걸었지만 나중에는 포기했는지 못 본척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말없이 지냈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 난 괜찮아. 이제 슬퍼하지 말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나 엄마와 아빠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난 서로 등을 돌리고 자고 있는 엄마와 아빠의 사이에 누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고 엄마와 아빠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엄마와 아빠와 가장 행복했던 놀이 공원을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느 순간 잠이 들은 나는 아빠와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게 됐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빠는 어린 시절에 다락방에서 노란 백열등 전구를 켜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는 방법은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명문대를 들어가서 기뻐하던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대기업에 취직한 아빠는 역시 명문대를 나와 그 회사에 먼저 다닌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아빠 부서의 팀장으로 아주 유능해서 회사에서 인정받았다. 결국 서로 사랑한 엄마와 아빠는 결혼을 했고 나를 임신한 엄마는 아쉬움을 남기고 회사를 그만뒀다. 엄마는 커다란 배를 어루만지며 나에게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줬다.  내가 태어나고 활짝 웃는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는 내가 딸이라는 것을 기뻐하며 결혼 때문에 엄마가 못 이룬 꿈을 내가 대신 이루기를 바랐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직접 공부를 가르치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의 늙은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회사에서 나이가 많다고 아빠는 푸대접을 받았다. 팀장 자리에서 쫓겨난 아빠는 팀원으로 지내며 젊은 회사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회사 사람들은 아빠가 없을 때 아빠 흉을 봤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퇴사를 안 하고 버티는 아빠를 놀렸다. 


'엄마는 나를 임신해서 인정받는 회사를 그만뒀구나. 그래서 내가 공부를 잘해서 엄마가 못 이룬 꿈을 이뤄주기를 바랐구나! 아빠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정말 스스로 모든 것을 이뤄냈구나! 아빠는 가난했던 과거 때문에 항상 불안했구나! 그래서 내가 공부를 잘해서 잘 살기를 바랐구나!'


난 엄마, 아빠의 과거 시절을 보면서 엄마, 아빠가 나에게 왜 그렇게 '공부', '공부' 했는지를 이해했다. 난 엄마, 아빠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어느덧 장면은 놀이공원으로 바뀌었다. 엄마와 아빠는 양쪽에서 여섯 살이던 내 손을 꼭 잡고 놀이 공원을 산책했다. 따뜻한 봄 날씨에 하늘에는 벚꽃비가 내렸다. 난 엄마, 아빠를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 나 낳고 키워져서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난 엄마, 아빠 너무 사랑해. 항상 엄마, 아빠 옆에 있을 테니 이제 나 없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


엄마는 나를 돌아보며 깜짝 놀라 웃었다.

"민지야~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민지 말도 예쁘게 할 줄 아네."

난 그런 엄마의 미소가 좋았다. 아빠는 웃으며 나를 안아 목말을 태웠다. 목말을 탄 나는 아빠에게 풍선을 사달라고 했다. 아빠는 풍선 한 묶음을 사줬다. 난 아빠의 목말 위에서 풍선을 잡고 좋아하다가 풍선과 함께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땅 밑에서 점점 작아지는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나는 슬펐지만 엄마와 아빠는 슬퍼보이지 않았다. 점점 작아지는 엄마와 아빠는 나를 보며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다음 날 잠에서 깬 아빠는 엄마를 깨웠다. 

"여보, 어제 꿈속에서 민지를 봤어."

엄마는 아빠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도 민지를 봤어요. 민지가 항상 옆에 있을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와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서로 오랫동안 꼭 껴안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 독자에게서 온 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