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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비 Jun 23. 2023

언젠가는 너를 영원히 안을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알아

고양이 별로 떠나는 날까지 함께 할 거야

사람보다 빠른 시간 속을 살고 있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다 보면 언젠가 겪게 될 이별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영원히 볼 수 없는 무지개다리 너머로 보내줘야 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마음이 아픈 일이다. 먼저 보내야 한다는 것, 남은 삶은 평생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렇지만 돌콩이를 안고, 돌콩이와 장난치며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옅어지곤 한다. 언젠간 겪게 될 이별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나를 너무 세게 깨물어 생긴 팔과 다리의 상처에 속이 상하고, 가끔 치는 장난에 집이 엉망진창이 되면 짜증이 나고, 지독한 똥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렇게 지내다가도 마치 경각심을 주려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이별에 대한 생각은 불쑥 다시 찾아와 나를 한동안 맴돈다. 요 며칠이 그런 시기였다. 평소 좋아하는 반려동물 채널의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은 날이면,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별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하게 된다.



정말 좋아해서 오래 구독해 온 고양이 유튜브 채널이 있다. "22 똥괭이네"라는 채널인데, 각양각색의 사연을 지닌 길고양이들이 "이삼"집사님과 함께 아웅다웅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 곳이다.

이 수많은 고양이들 중 나를 슬프게 한 고양이는 이 채널의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막내 역할을 하던 "기적이"라는 친구였다.


기적이는 안구가 돌출되고 감염이 되어 발견되어 끝내 적출을 했으며, 뇌병변으로 인해 발작이 있고, 몸 구석구석 낭종이 있었다. 보는 사람이 애처로울 정도로 이곳저곳 아픈 곳이 많아 병원 신세를 많이 졌던 기적이는 이름처럼 여러 번의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에서도 보란 듯 이겨냈다. 씩씩하고 쾌활했으며, 무엇이든 잘 먹어 "먹깨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였다.


그런 기적이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오래 지켜보며 기적이가 매번 이름처럼 기적을 보여주던 모습을 많이 봐서 이번에도 씩씩하게 이겨내고 제일 좋아하는 "고기국수(육회)"를 먹을 줄 알았는데 영원한 안식을 찾아 고양이 별로 떠났다.


가장 좋아하는 채널의 가장 응원하는 고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으니 오래오래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기적이가 아픈 육신을 버리고 평온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생의 거의 모든 순간이 아픔이었을 기적이가 영원한 잠을 통해 편안해지길 바란다. )



이렇게 슬픈 소식을 들은 날이면 나도 언젠가 분명 겪게 될 돌콩이와의 이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헤어질 때 우리 모습은 어떨 지도 생각해 보게 된다.

아주 먼 미래의 일일 테지만 내 나름의 마음 준비일지도 모르겠다. 헤어짐은 상상만으로 버거워지는 일이니까 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자조하면서.



나는 우리 돌콩이가 아주 나이가 많이 들어서, 천수를 다 누리고 편하게 잠자듯 떠났으면 한다. 긴 시간 함께하면서 돌콩이가 나에게 준 행복과 사랑은 그 자체로 무엇보다도 크고 값진 것이라서, 돌콩이 없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어떤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받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부족하기만 했던 나의 단 하나뿐인 고양이가 되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사랑한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돌콩이가 예고 없이 찾아온 병에 많이 아파서 떠나야 한다면 너무 오래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나에게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 꾹 참는 일만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아픈 것을 숨기려 하는 고양이는 본능에 충실하게도 자신의 죽는 모습까지도 잘 보이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출근 전만 해도 숨이 붙어 있었는데 퇴근해 돌아온 집구석에서 생명이 꺼져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왂던 터라 나는 이게 제일 무섭다. 다 괜찮으니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숨기지 말아 줬으면, 병을 고쳐내 함께할 시간들이 더 많았으면.



돌콩이가 슬슬 나이가 먹어가는 만큼 나도 더 걱정이 많아진다. 무엇보다도 '어리광쟁이', '떼쟁이'라고 맨날 놀리기만 해서, 괜히 미안한 마음에 많이 아프더라도 숨기려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부터 든다.

돌콩이는 집사를 생각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는 아주 착한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돌콩이 같은 고양이는 다신 없을 천사 고양이라고 칭찬을 했었다.)



이젠 떼쟁이라 그러지 말아야지. 떼를 쓰면 쓰는 대로 다 받아줘야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고양이는 늘 아기니까. 놀아달라고 보챌 때 귀찮은 마음에 간식으로 대충 때우려고 하지 말아야지. 이런 시간도 돌콩이가 떠나고 나면 다신 없을 테니까. 화장실을 더 잘 치워줘야지. 돌콩이의 악의 없는 살벌한 장난에 내가 조금 다칠지언정 그걸로 짜증 내지 말아야지.

곁에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줘야지.



삶의 속도가 다른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저릿해지는 일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 자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언젠가 고양이 별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나도 행복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만큼 더 소중하게 대해줘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천사 고양이의 악마 시절. 맥북 충전기 깨물어서 고장냈던 날




Take a look, 김건영


나 고양이는 집사에게 실망했다

나 고양이는 너보다 어리게 태어나서

영영 너보다 우아하게

영영 늙어갈 것이니

내 눈 속에 달이 차고 기우는데

깜빡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뒷동산에는 감자가 가득한데 캐지 않고

내 털이 지폐보다 귀한 줄도 모르고

투정이나 가끔 부리고

길에서 다른 고양이한테 가끔 사료나 챙겨는 주고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로 잊히겠니

어느 날 내가 다녀간 후에

아무도 할퀴지 않는 밤이 여러 번 지나더라도

타인을 너무 많이는 미워 말고

장롱 밑에서 내 털을 보고 울지나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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