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삭제 Aug 03. 2023

돈가스. 4

악덕업주.

반복된 학습이 몸에 배면 전문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걸까.


나만을 위해 하던 요리를 어느 순간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돈가스를 먹고 간 친구들은 유명식당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다고 난리가 났다. 먹어보지 못한 친구들의 서운함까지 쏟아졌다. 그러나 장사하는 가게에 친구들을 자주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나의 돈가스를 맛보고 싶은 친구들이 급기야, 학교 앞에서 떡볶이나 어묵을 사주기도 하고, 문방구에서 수첩이나 샤프, 예쁜 액세서리까지 사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음엔 꼭 데리고 가 달라는 부탁과 함께.

 

대가를 바라는 뇌물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나는 그런 친구들의 정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 덕에 거의 매일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내 돈가스를 대접했다. 그러다 보니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난 엄마보다 돈가스를 더 잘 튀기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나의 기술을 엄마가 조금씩 이용하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고 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다 차려 놓은 밥상에 돈가스 하나 튀겨 올려놓고는 생색을 내는 내 모습이 어이가 없던 엄마가, 내게 친구들에게 대접한 돈가스 값을 내놓으라고 했다. 당연하듯 돈이 없다고 하자 그럼, 돈가스라도 튀기라며 주말에 기름 앞으로 나를 세웠다.

 

그때부터 엄마는 내게 악덕 업주로 변신했다.


날이 갈수록 우리 집 돈가스를 찾는 사람은 많아졌고, 내가 튀겨야 하는 돈가스 수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정말 가게가 바빠지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만두까지 튀겨 내고 있었다.

 

반복적인 노동이 되어버린 돈가스는 이제 내게 더는 맛있기만 한 음식이 아니었다.

 

보글보글 먹음직스럽게 끓던 중탕기 속의 소스와 수프는 쳐다만 봐도 인상이 구겨졌다. 지글지글 음악 소리 같던 기름 소리도 엄마의 잔소리처럼 들렸다. 튀김용 집게와 뜰채는 몰래 갖다 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먹는 돈가스를 차려내는 일도 귀찮아지고, 언제 데려갈 거냐는 친구들을 피해 다니기 시작하자 당연한 듯 친구들의 선물 공세도 사라져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이제 정말 돈가스 튀기는 일은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다가온 주말에도 엄마는 여전히 내게 돈가스 튀기는 일을 맡겼다. 이제 친구들도 안 데려오고 나도 돈가스를 먹지 않는데 왜 자꾸 나보고 돈가스를 튀기라고 하냐며 집게를 집어던지고 주방을 뛰쳐나가 버렸다. 뒤에선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가게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뭐가 그리 서러운지 엉엉 울었다.

 

영업시간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주방에서 걸리적거리는 게 신경 쓰였던 엄마의 극약처방이었는데, 예상외로 한 사람 몫을 톡톡히 하는 바람에 바쁜 시간에 도움이 되어서 편했다고 한다.

 

그 후 엄마는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돈가스를 튀겨 주라고 했지만, 그 후로 난 한동안 돈가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억울한 생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