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삭제 Jan 19. 2024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빛을 잃은 시간.

“안녕, 나는 서울에서 왔어. 아빠가 잠깐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되어 이 학교로 오게 됐어. 앞으로 잘 지내자.”

 

병아리색보다 더 예쁜 노란색 투피스에 단정한 단발머리를 하고, 작은 시골 도시 아이들이 흔히 메고 다니는 그런 촌스러운 책가방이 아닌 고급스러운 가방을 멘 아이. 옷과 세트 같아 보이는 옆으로 멘 또 하나의 작은 가방 안에는, 열어보지 않아도 소중한 물건이 들어 있을 것 같았다.


무릎 아래까지 올라온 양말은 마치 처음 보는 새하얀 눈처럼 너무 맑아서 눈이 부셨다. 그렇게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오는 여자아이가 어느 날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상냥한 서울말을 장착하고.

 

반 아이들의 관심은 순식간에 그 아이에게 향했다.


늘 단정하고 예쁜 옷차림과, 상냥한 미소를 띤 얼굴은 남자아이들의 작은 가슴에 분홍불씨를 키웠다. 아빠 직업 때문에 여러 나라를 다닌 이야기보따리는 여자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내 시선 또한 그 아이에게 머물렀지만, 아이들 틈에 내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틈을 삐지고 들어갈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고, 이젠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우린 친해졌다.

 

그 아이의 기간은 정해져 있었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살기 불편한 나라에 일 년 동안 가야 했기에, 할머니 댁에 맡겨진 남매의 시간도 일 년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린 더 오래 더 가까이 붙어 있어야 했다.

 

주말이면 그 아이 할머니 댁으로 가서 종일 노는 것도 모자라 같이 잠을 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별의 시간은 다가왔고, 열한 살 소녀들의 헤어짐은 애달고 서러웠다. 편지 자주 하고 여름방학에 꼭 만나자는 약속 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손을 억지고 하나하나 떼어내며 울먹였다.

 

우린 반년을 꼬박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는 여름방학 그 아이의 집이 있는 서울에서 우린 상봉했다. 그러나 서울이란 곳은 모든 곳이 높고 넓었다. 내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그 아이도 무척 높았다.

 

순간 소심한 내 마음이 한없이 작아져 버렸다.

 

터미널로 나를 데리러 온 그 아이 아빠 차는 전에 보지 못했던 차였다. 미끄러지듯 들어선 아파트 건물은 너무 높았고, 발을 들이기 미안할 정도로 깨끗한 거실 바닥. 모든 것이 고급스러웠던 가구들. 언니들과 엉켜 지내는 내 방과는 다르게, 동화 속에 나올법한 그 아이의 방. 모든 물건은 손대기조차 조심스러웠다. 서울 그 아이의 집은 드라마에서나 봤던 담장 높은 부잣집이었다.

 

그 순간 어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불편해졌다. 전에 없던 벽을 혼자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내 마음은 서울에서 4일의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우리의 일 년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내고 있었다.

  

“얘, 너 왜? 우리 애한테 편지 답장 안 하니?”

 

여름방학이 끝나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그 아이의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말을 걸어왔다. 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편지 답장을 하지 않은 그 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주소를 까먹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돌아서 버렸다.


식당을 하며 같이 딸린 우리 집의 입구도, 따로 없던 내 방도, 예쁜 원피스 하나 없는 낡은 옷장도 다 꼴 보기 싫었다. 그렇게 부(富)에 무너진 열한 살의 자존심은 자존감마저 떨어뜨렸고, 착하고 예쁜 친구마저 배신했다.

 

일방적인 우정은 빛을 잃어갔다. 빛을 잃은 세월은 소중했던 시간을 없던 기억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갔다.




십일 년만인가, 십이 년만인가. 어쨌든 강산이 한번 변하고도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마주한 공기는 어색하다.


스치듯 들려오는 모르는 이들의 알아들을 수 없는 음성처럼, 앞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 또한 낯설다.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지만, 그 시절만큼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못하다.

 

들어서자마자 시킨 따뜻한 그녀의 커피는 다 식었고, 내 잔 속에 얼음이 녹아 이슬이 맺히는 시간 동안 그리 많은 대화도 오 가지 못한다. 정말 이런 분위기는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어쩜 나는 예상했다.

 

동창생을 찾는 사이트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시절, 다시 그녀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SNS에 일상을 올린 그녀의 사진에선 착실히 쌓아온 빛남이 품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 또한 그녀와는 다른 결의 시간이 있었다. 겹치지 않은 그 시간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그림자를 만들었다.


열 살의 순수함도, 열한 살의 소심함도 아닌 다른 이면의 자존심을 자극했고, 결국 그녀와 마주 앉게 했다.

 

서로가 잘 지냈느냐는 형식적인 인사말은 하지 않는다. 지금 뭘 하느냐, 어떻게 지내느냐는 궁금함도 전하지 않은 채, 그저 서로를 보고 말없이 지었던 엷은 미소가 그것들을 대신해 준다.


그래도 한때 같은 시간과, 같은 기억을 간직한 우리였기에, 잠시 그때로 돌아가 서로의 얼굴에서 지나온 시간을 읽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른 추억이 되어버린 서로의 지금을 보았기에 말을 아낀다.

 

곧 결혼해서 남편 될 사람과 같이 유학을 떠난다는 그녀.

갑자기 유행처럼 번진 동창 사이트가 마치 날 한번 보고 가라는 신호 같았다며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남긴 말은 미안하다는 말.

 

그에 나도 미안하다고 답해 주어야 했지만, 난 끝내 그러지 않는다. 고맙다는 마음이라도 전해야 했지만, 못난 난 그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잘 가라는 못난 자존심만 던진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때 서울에서 시간을.


내내 불편해하던 내 눈치를 보며 더 안절부절못하던 아이.

내가 조금만 예민하게 반응하면 괜히 엄마에게 뭐라 짜증을 냈던 아이. 조금이라도 신경 쓰일까 봐 동생에게 잔소리를 하던 아이.


그 후, 내게 보낸 편지에 늘 미안한 표현을 돌려서 했던 아이. 


하나 모자랄 것 없던 그 아이가, 하나 잘난 것 없는 나에게 한없이 잘해주고도 또다시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십여 년을 돌아왔는데,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난 그 아이에게도 다시 찾아온 그녀에게도, 끝끝내 못난 친구로 남아버렸다.


이제 변명할 기회도 영원히 놓쳐버렸다.

 

이십 년 전, 그 자리에 다시 마주 앉는다면 묽혔던 미안함을 전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안다, 시간도 쏟아버린 마음도 돌이킬 수 없음을.


다시 돌아가 그 얼음을 얼린다고 해도 처음 모양과 같을 수 없고, 식어버린 커피를 데워도 향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매거진의 이전글 돈가스.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