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3학년쯤, 항상 공주처럼 분홍색 계열의 원피스를 입고, 꽃이나 커다란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다니던 한 아이기 있었다.
나는 그 아이와 특별히 친하지도, 그렇다고 유독 나쁜 것도 아닌, 그냥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던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로부터 생일 초대장을 받았다. 딱히 안 갈 이유도 없었기에 그 아이와의 관계만큼 적당한 선물을 사서 갔다.
나를 포함 스무 명 정도 되는 반 친구들이 함께한 생일파티였다. 그 시절 귀했던 케이크에 초를 켜고 노래를 부르고, 선물 전달을 하는 평범한 파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며 선물의 크기만큼 기쁨을 표현하던 그 아이의 눈이 순간 새침한 세모로 변했다.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그 아이는 포장된 선물들과는 다르게 덩그러니 편지 하나만 건넨 아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쪽에 잔뜩 쌓인 선물 쪽으로 한번 눈을 쓱 돌리더니 다시 손에 쥔 하트 모양의 편지를 쳐다보았다.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이내 편지의 주인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선물이라기엔 너무도 미약한 편지를 건넨 아이의 표정도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눈빛과 표정으로 한껏 서운함을 표출하던 생일인 아이와 미안한 표정으로 연신 눈치만 보던 편지를 건넨 아이와의 어색한 공기는 생각보다 길게 파티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어졌다.
어쩌면 그 아이에겐 마음을 쏟은 편지가 준비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정성 들여 종이를 오리고 색칠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꾹꾹 눌러 하트 모양 종이 안에 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아이의 그 편지를 선물이라 부른 아이는 없었다. 빈정거리는 조롱거리가 되었을 뿐.
생일 초대를 한 아이도, 편지를 선물로 들고 온 아이도, 서로 마음을 가늠하는 기준이 달랐을 것이다.
생일 초대를 한 아이에겐 선물의 크기가 마음의 크기였던 것이고, 편지를 선물한 아이는 상대방에 대한 진심이 마음의 크기로 다가가길 원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다른 마음의 크기는 관계로 이어졌다. 그리고 두 아이는 아니 정확하게 말해 생일 파티를 연 아이는, 편지 속에 담긴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다.
나 또한 시간이 지나고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그날 그 아이의 편지가 그저 종이가 아니라 마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