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달리면 뒤에서 지뢰가 막 터지는데….”
또 시작되었다. 그렇게 시작되는 이야기 속 군인은, 빗발치는 총알에도 몸에 상처 하나 없다. 살아 있는 표범을 맨손으로 때려잡는다. 지뢰밭을 달리는 차 뒤로 폭탄이 터져도 영화 속 주인공처럼 살아남는다. 어느 하나 믿을 수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 속 남자의 모습은, 그 시절 기록을 남긴 흑백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지된 흑백종이 속 남자는, 이제 영영 돌아갈 수 없는 젊음을 간직하고 커다랗고 멋진 지프 앞에서 더없이 강인한 포즈를 잡고 있다. 금방 살아서 튀어나올 것 같은 표범을 힘겹게 들고 뿌듯해하는 표정은 누가 봐도 합성이 아니다. 그러나 남자 앞에 무릎을 꿇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베트남전쟁 한가운데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반쯤 감겨 졸린 눈을 억지로 뜨고 참아보지만, 마음만큼 눈꺼풀도 성가시다. 그러다 졸고 있는 모습을 들키기라도 하면 다시 남자의 고생스러웠던 지난날로 이어지는 도돌이표 시간여행으로 밤을 새운다.
한량 같은 아버지와 그 한량의 기질을 꼭 닮은 장남을 대신해 집안의 무게를 지고 살아온 날들. 전쟁이 일어난 타국에서 부모와 형제의 생계를 위해 젊음을 바친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장가를 가지만, 목숨 바쳐 고향으로 보낸 돈은 한 푼도 쥘 수가 없었다. 결국 빚으로 시작된 결혼 생활.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시 아부다비와 인도네시아의 뜨거운 열기 속으로 던져진다. 갖은 고생을 하며 노동자로 살아온 이야기. 늘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레퍼토리가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생각 없는 어린 마음은 흑백 TV에 나올법한 이야기들에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부모와 형제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군인의 삶과 처자식을 위해 뼈가 부서지게 고생한 노동자의 삶. 남자는 부모와 형제가 알아주지 못한 지난날이 억울하기도 하고 힘들었는지, 어린 자식들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거나하게 술이 들어간 날이면 했던 말들을 하고 또 하지만, 당시 철없던 자식들은 졸린 눈을 끔벅거릴 뿐이었다.
어느덧 자식들은 남자의 고생스러웠던 시절의 나이를 지나 하나둘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지나간 세월만큼 귀에 박힌 남자의 영웅담도 딱지가 되어 떨어져 나가 버렸다. 남자는 점점 늙어가고 정지된 사진 속에만 남아있던 패기와 힘도 사라져 갔다. 그렇게 이야기 속 영웅인 남자, 나의 아빠에게도 말없이 가만히 누워만 계셔야 하는 날이 찾아왔다.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연락에 급하게 갔지만, 편하게 주무시고 계셨다. 그렇게 잠이 깬 듯 일어나서 먼저 온 동생과 나와 눈을 맞춰주셨다.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인 순간이 다가올까 봐 무서웠다.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 속 영웅으로 남고 싶었던 걸까, 가슴 아픈 모습은 보이지 않으셨다. 다시 눈을 감고 주무시듯 점잖고 깔끔하게 마지막을 맞으셨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을 목격했지만, 죽음이 그리 공포로 다가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의 입에선 사망 선고가 내려지고 있었지만, 잡은 손은 여전히 따뜻했고, 얼굴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사람처럼 평온하셨다.
귀에 울리는 기계 소리는 일정하게 끝을 알리고 있었지만, 얌전하게 누워 계시던 모습은 내가 서 있는 여기도, 마지막으로 가야 할 거기도 속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다. 그냥 이젠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 같았다.
자신의 영웅담을 수없이 들어주었던 가족조차 알아주지 못한 그 마음을, 나라에서 알아주었다. 마지막을 국가에서 내어 준 한 자리에 뉠 수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 당신이 영원히 잠들 곳을 생전 여러 번 방문하시고는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무겁게 살았던 삶에 비해 너무나 작은 가벼움으로 남아버린 아빠를, 이제는 골바람도 고추바람도 들지 못하게 튼튼한 유리가 막아주고 있다.
벌집 같은 아파트는 답답하다며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칸칸이 마련된 작은 공간들이 마치 아파트 같다. 그러나 도심의 아파트와는 다르게 사방이 트였으니 조금이나마 괜찮지 않을까. 산과 나무를 좋아하셨는데, 뒤로는 산이 있고 울창한 나무도 많아 공기까지 좋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기엔 더없이 좋은 장소다.
의식 없는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그리도 힘들게 살아들 가는 것일까.
사람은 왜 마지막이 되어서야 편안해질까. 아니, 그 마지막이 편안하다는 건 남아있는 사람의 위안일지도 모른다.
뒤늦게 알아준 고생스러움이 마지막 순간에라도 편해졌다 여겨야, 보낸 이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기에, 남아 있는 이들이 그리 단정 짓는 것이리라. 이제는 편안하다고.
어느덧 네 번이나 지난 기일. 할 때마다 몇 번의 절을 하는지 세어봐야지 하다가 만다. 기계적으로 절을 하고 또 묵례하고 다시 절을 하고…, 그저 형식에 매이는 행위 자체가 지루했다. 무섭게 두 눈 부라리고 있는 생선을 대신해서 아빠가 좋아하는 치킨을 놓고, 이빨도 안 좋은데 씹느라 고생하는 문어 다리 대신, 달달한 아이스크림을 놓으면 참 좋아하실 거란 생각을 늘 했다.
6.25 전쟁 시대에 태어나 가난한 시절 고생을 하셨지만, 입맛은 피자와 파스타 같은 흔히 말하는 요즘 음식을 좋아하셨다. 사실, 소리 없이 와서 차린 음식을 드시고 간다는 말도 믿지 않지만, 혹여나 그렇다 친다면 형식적으로 차려대는 것 말고, 정말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준비하자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옛날 방식의 엄마는 싫다 하신다.
아빠는 알까, 당신을 위해 차려진 상에 당신이 좋아하는 건 달랑 딸기 하나뿐인걸. 참 아이러니하다. 종일 온 가족이 고생해서 준비한 상에, 사서 올린 딸기가 전부라는 것이.
올해는 치킨이라도 올려드리자고 완강하게 고집을 좀 부려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