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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삭제 Jul 23. 2023

쓸데없이 술술 거리네.

술 그게 뭐라고,

“내가 맛있는 닭발에 술 한 잔 사줄게.”


여든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언제나 깔끔한 손과 발을 자랑하시는 어머님은 나의 단골손님이다.


단아하고 고우신 자태를 뿜어내며, 언제나 예쁘다며 예쁜 말씀과 딸 같다며 딸처럼 좋은 말을 해주시는 분이다. 그분에게 따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 역시 내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서 헤어에서 네일로 전향하면서 만나기 시작한 오래된 단골이시다.

두 분이 항상 친구처럼 자주 술잔을 기울인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 그 모습이 참 부럽다는 나의 말에 대뜸 술을 사주신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술을 잘 못 드신다. 이슬톡 한 캔도 다 드시지 못하고 어지럽다고 하신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술을 드시던 외할아버지와 그에 못지않게 탁배기를 좋아하시던 외할머니. 그 피를 이어받아서, 한 술 하시던 외삼촌. 그런 가족을 벗어나 만난 신랑마저 술을 그리도 잘 드셨으니, 술이라면 질려하셨다.

그리고 다행인지 몸이 받아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놈의 딸과 아들은 아빠의 알코올 DNA만 물려받았는지 어찌나 다들 시원하게 들이켜는지. 지금이야 언니들과 동생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려 예전만 못하지만, 나는 여전히 즐기는 편이다.

 

어릴 적엔 술을 드시는 아빠의 모습만 봐도 싫었다. 저 술을 다 마시고 나면 우린 아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또 긴긴 시간을 버텨야 했다. 그땐 나도 참 술을 싫어했다. 좋아하려 해도 좋아할 수도 없었던 나이었지만, 수학여행에서 아이들이 몰래 싸 온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뻗는 내 모습은 아마도 그때 아빠와 술의 상관관계 때문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했던 것일까.


소주 한 병을 맥주잔에 단 두 번에 나눠 마셔 버리는 아빠는 급하게도 마셨지만, 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피를 물려받았으니 그 반만 먹어도 다른 사람에게 지지 않고 마셔대는 유전자의 소유자였다. 굳이 깨달을 필요가 없었던 그 사실을 깨우친 순간은 사실 서러움에서 발동된 오기였다.

 

나의  미용사 시절 고된 하루의 마무리는 늘 시원한 맥주 한잔이었다. 그때 나는, 그간 손가락 안에 꼽는 술 경험으로 보아, 술을 못 마시는 스무 살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스물을 맞이하던 때도, 맥주 한 모금에 엎어져 자는 바람에 희망차게 맞이하고자 하는 스물의 첫날이 날아가버리지 않았던가. 그랬기에 난 엄마를 닮아 술을 못 마신다고 생각하며 맥주 한잔을 위해 따라나선 자리에서 안주를 축내는 안주파이터였다. 


술을 안 마신다고 막둥이를 홀로 기숙사에 두고 가자니 냉정했고, 그렇다고 안주만 먹어대는 안주 킬러를 데리고 가자니 술값이 너무 많이 나왔다.

같이 간 언니들의 남모를 고민이 있었겠지만, 해맑던 스무 살이 아니던가. 그나마 정말로 술을 마시지 못하는 동료 언니가 있었기에, 죽이 맞는 우리 손에서 메뉴판이 떠날 틈이 없었다.


사실 어떨 땐 눈치가 살짝 보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술값은 고객님들이 주는 팁을 한데 모아서 갖는 술자리였기에, 누구든지 먹고자 하면 술이든 안주든 먹을 수 있는 지분이 있는 자리였다.


그래도 눈치가 없었는지, 자주 가는 단골집 안주가 맛있었는지, 아니면 늘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간 자리에서 밀린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어대는 식탐이었는지, 그날따라 유독 안주만 날름 먹어대는 내 입이 얄미웠던 언니에게 서러운 소리를 들었다.

결국 안주만 먹을 거면 술자리에 따라오지 말라는 말까지 했고, 입으로 들어가던 어묵인지 닭다리인지 모를 음식을 야무지게 씹어 삼켜야 했는데, 그렁그렁 눈물을 삼켰다.

 

서러움과 오기로 똘똘 뭉친 비참한 마음이 벌컥벌컥 맥주를 삼킨 건, 어린 마음에 그 자리에 남아있고 싶어서였다.


일을 마치고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일할 때는 바빠서 가르쳐주지 못하던 노하우를 알려주고, 막내라고 챙겨주는 언니들이 좋았다.


그런데 술을 안 마실 거면 이제 오지 말라는 그 말이 진실로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당장 눈앞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다른 언니들마저도 등을 돌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오기는 한 모금이 되고 두 모금이 되고 어느새 한잔이 되면서, 학창 시절과 다르게 다 자라 성인이 된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알코올을 쭉쭉 잘 흡수시켰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사건을 계기로 나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주당에 계열에 오르게 되었고, 술을 마신다고 안주를 먹는 손이 결코 한가해지지 않았다. 술을 마시는 왼손도 안주를 집어 먹는 오른손도 함께 바빠졌다.

나의 오기를 발동시킨 언니는 잠재된 능력을 괜히 깨웠다며 후회한다는 농담을 하는 아이러니한 지경에 이르는 상황이 벌어진 데는 불과 서너 달이었다.

 

젓가락을 뺏던 언니들은 어느 순간부터 술잔을 뺏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기술을 배우러 올라간 서울에서 술을 배웠다. 한때의 별명이 유학파 주당이었다.

 

나이가 들자, 오기로 먹는 술이 아닌 분위기를 즐기게 되자, 부모님과 술잔을 기울이는 주변 사람들이 괜히 부러웠다.


술, 그게 뭐 좋은 거라고 맑디맑은 쓴 물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 그림이, 우리 가족의 울타리에선 상상이 되지 않는 그 모습들이 괜스레 부러움을 샀다.

 

내가 술에 눈을 뜬 성인이 되었을 땐, 간암 선고를 받은 아빠는 하루 두 갑씩 피우시던 담배와 하루 걸러 드시던 술을 한 번에 끊으셨다.


어릴 적엔 그렇게 술 마시는 모습이 싫었는데, 아빠가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한 번에 털어 마시던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함께 술잔을 짠~ 부딪치며 술기운을 빌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그때의 아빠를 좀 더 빨리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늘 무언가 깨닫고 하고자 하면 늦어버리거나 그 대상이 사라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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