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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Aug 25. 2023

약 먹기가 귀찮아졌다는 것은 좋은 신호

아빌리파이/인데놀/리보트릴 복용 4개월 차, 약물의 첫 감량

약 먹기가 귀찮아진 나


"선생님, 예전에는 약 먹기가 귀찮다는 생각을 안했는데 요즘에는 한 2주 전부터 약 먹기가 귀찮아요."


    몽골을 다녀온 뒤 첫 진료에서 내가 한 말이다. 

    그러자 주치의 선생님은 의외의 답변을 내놓으셨다.


"약 먹기가 귀찮아졌다는 건 좋은 신호예요. 그 전에는 약을 먹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고, 문제가 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만큼 살만 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해요."


    예상치 못했던 긍정적인 피드백이었지만 납득이 되었다. 실제로 나는 최근에 계절학기 종강도 하고, 여행도 다녀오고 하며 학업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었고,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을 만한 상황에 놓이지도 않았다 보니 스스로도 '이정도면 살만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저 지금 좀 짜릿했어요. 환자분이 많이 나아지신 게 느껴지네요."


    주치의 선생님은 내 긍정적인 신호에 꽤나 기쁘신 듯했다. 나는 진료실을 나서며 어쩌면 이것이 내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치료가 끝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물의 첫 감량을 시도하다. 리보트릴 복용의 중단


    계절학기가 끝나고 나는 자취방이 아닌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본가에서 지내는 최근 2주간 나는 수면에 있어 문제를 겪었다. 그 문제는 수면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잠을 너무 잘 잔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루에 원래 8시간씩 잤고, 불안장애를 겪은 뒤로는 수면시간의 감소로 7시간 정도 자면 깨버렸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하루에 9시간 반은 기본이오, 어쩔 때는 10시간 반까지도 잠을 자고도 오후에 누워있다가 깜박 잠이 들어 낮잠까지 1시간씩 자버리고는 했다. 초반에는 그냥 피곤한가보다 했는데, 이러한 증상이 2~3주째에 접어들자 나는 원인이 리보트릴정 복용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이러한 부작용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다음 진료 때 주치의 선생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기로 했다.


"요즘에 잠을 너무 많이 자요. 하루에 9시간 반에서 10시간 반씩 자고도 낮잠을 자기도 하구요. 제 생각에는 리보트릴정 때문인 것 같아서 복용을 한번 중단해 보고 싶어요."


    주치의 선생님께 내 생각을 말씀드렸다.


"혹시 약이 나를 누른다거나, 감정을 끌어내리는 듯한 감각이 있을까요?"


    나는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이런 추상적인 표현으로 정신적인 감각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약이 내 정신적인 각성을 누르고 있다는 감각은 맞는 것 같았다.


"네,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불안이 많아서 약이 그걸 잡아줬는데 지금은 덜 불안하다 보니까 약이 오히려 졸리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것도 긍정적인 신호로 볼 수 있나요?"


"그럼요, 많이 나아지신 거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지금 공부도 안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있어서 개강하면 다시 불안이 생길까봐 걱정이 돼요."


"개강이 언제죠?"


"9월 1일이요."


    주치의 선생님은 개강일 전후로 내 상태를 보실 생각인 듯했다.


"약은 그대로 아빌리파이, 인데놀, 리보트릴 다 드릴게요. 그런데 다 드시는 건 아니고 리보트릴정 먼저 그만 드셔보시다가 잠을 못 주무시거나 그대로 잠이 너무 많이 온다 하시면 병원으로 연락 주세요. 그 때는 다른 약을 한 번 조절해 보거나 복용을 더 할지를 결정해 보도록 할게요."


    '드디어 첫 감량이구나.' 나는 생각했다. 약물 치료를 끝내기 위한 첫 수순을 내가 밟고 있었다. 개강 이후에 내 정신 상태에 따라 이제 아빌리파이와 인데놀도 이별을 고할지, 아니면 더 오래 함께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기대도 되었다. 걱정은 약이 없이 내가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기대는 약을 먹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 여기에 더해 치료가 끝나면 주치의 선생님과 더 만나지 못한다는 아쉬움. 정신적으로 많이 의존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목표는 아빌리파이 절반 감량이다.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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