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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Oct 12. 2023

개강, 불안지옥을 맛보다

에스벤서방정(벤라팍신) 50mg의 재복용 시도

불안장애 치료의 종결에 대한 희망적인 시선을 가지고 지난 글을 작성한 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났다. 지난 글을 쓰고 일주일 정도 후, 나는 학교에 다시 다니게 되었다.


지옥 같은 개강과 약물의 추가


개강을 맞게 되고, 다시 시작한 학교생활은 끔찍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어렵고 날 위축시켰고, 기존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을 더 느끼게 하였다. 

공부의 어려움은 나를 절망에 빠지게 만들었고, 끊임없이 주변과 비교하며 자기비판에 시달리게 했다.

나는 불안할 때마다 효과가 줄어들어 버린 필요시 약을 털어 넣으며 버티려고 할 뿐이었다.


    개강하고 나서 새로 복학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일들이 잦았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고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만날 때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자 했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항상 나 자신이 삐걱대는 것만 같았다. 기존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어려웠다. 항상 나 자신이 재미없는 사람인 것 같고, 매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 얘기할 주제가 없어 압박감을 느꼈다. 집에 들어오면 인간관계의 피로감에 절어 눕고 싶기만 했다.


    공부는 내게 큰 짐이 되었다. 매주 산더미같이 쏟아지는 과제들은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수 없게 만들었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내가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대부분의) 수업들은 내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절망하게 만들었다. 특히 주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업을 듣는 모습을 볼수록 나의 좌절감은 심해졌다. 항상 포기하고 싶었다. 그저 휴학계를 내고 도망쳐버리고 싶을 뿐이었다.


    지난 글-약 먹기가 귀찮아졌다는 것은 좋은 신호-를 읽어보았다. (https://brunch.co.kr/@s-ho/10) 스스로의 약물 치료의 종결에 대한 희망적인 관망이 담겨있었다. '내가 저런 생각을 했었다고?' 내 글을 읽고 든 생각이었다. 솔직히 놀라웠다. 저렇게 희망적인 내용을 글에 담았었다니.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생각의 차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나아졌던 것은 불안요소가 사라져서였을 뿐이다. 대인관계와 공부. 두 가지가 내 가장 큰 불안요소이다. 두 가지를 이겨내려면 내가 바뀌어야 할까, 불안요소를 제거해야 할까. 내가 바뀌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내가 바뀌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약을 추가하는 것이다. 약물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상황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유일해 보이는) 답이 되어주었다. 나는 불안이 견디기 힘듦을 인정하였고, 주치의 선생님과 약물 증량을 상의했다.


    "약물의 증량이 필요할까요?"


    내 불안을 토로하고 나서의 내 질문이었다. 이 질문의 의도는 '증량하고 싶어요'이었다.


    "환자분, 약물을 증량해 드리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아요. 일주일 더 지켜보시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질문을 한 것에는 사실 선생님이 증량하라고 결정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에 내게 돌아온 질문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내 바람은 증량이었고 이를 말하지 못할 정도로 살만하지 않았다.


    "약을 추가하고 싶어요."


    추가된 약물은 에스벤서방정(벤라팍신) 50mg. 매일 아침 1회 1정. 내가 치료 초기에 추가받았지만 부작용으로 복용을 중단했던 약물이다. (https://brunch.co.kr/@s-ho/5) 당시에 겪었던 부작용은 구역감, 하품, 그리고 졸림이었다. 당시에는 부작용이 굉장히 심하다고 느껴 학업에 지장이 생겨 복용을 중단했었다. 



에스벤서방정(벤라팍신) 50mg 복용 1주 차, 빠른 부작용과 빠른 효과를 보다.


    복용 1주 차. 이전에 복용했던 경력이 있어서인지 복용 1주 차가 차기도 전에 효과를 보았다. 물론 부작용과 함께. 우선 부작용부터 말해보자면 기존의 부작용과 함께 새로운 부작용이 생겼다. 하품, 구역감, 졸림은 그대로 왔고, 불면 증상이 새로 나타났다. 졸림과 불면이 같이 온다고? 싶을 수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다행히 불면 증상이 밤에 찾아오지는 않았다. 불면 증상은 아침과 낮에 찾아왔다. 일단 잠이 평소보다 1~2시간 일찍 깨고, 다시 잠들 수가 없는 독특한 형태의 불면 증상이 나타났다. 또 낮에는 누워있으면 굉장히 졸음이 쏟아져 잠을 좀 자려하면, 잠에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부작용보다 약의 효과가 주는 긍정적인 작용이 더 컸다. 하루에 한 봉지씩 뜯던 필요시 약을 에스벤서방정을 복용하고 나서 한 번도 먹지 않았다. 불안이 잡힌 것이다. 불안이 줄어드니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졸음이 공부를 방해하는 것보다 불안의 제거가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 더 컸다. 


    그렇게 나는 재발한 불안을 에스벤서방정의 추가로 잡았다. 지난 1개월 반동안 내 치료가 끝났는지, 살아는 있는지 궁금했을 분들이 있었을 것 같다.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사실 그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은 것은 개강하고 너무나 힘들어서. 이 글도 불안이 잡혀서 쓰는 것이다. 공부를 끝내고 밤에 잠깐 시간 내서 적고 있다. 이제 시험기간이다. 약물 덕에 불안하지는 않다. 다음 글은 언제가 될까? 치료에 변화점이 생기면 최대한 일찍 기록해 보도록 하겠다. 이 브런치스토리는 내 치료의 기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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