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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Jun 13. 2023

정신과 첫 방문, 우울증 확진받고서 안심한 이유

"선생님, 제가 이걸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까요?"

    우울감에 정신과를 예약하고 그다음 주까지, 우울과 무기력함은 나에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무기력감 속에서도 되지 않는 공부는 하려 했고, 관성적으로 하는 과외 수업은 어떻게든 해내고 있었다.  무기력감이 굉장히 심한 한편으로 나는 정신과가 나에게 무언가 해답을 주리라는 생각에 내심 기대되기도 하였다.



정신과 첫 방문, 난 뭐가 문제인 걸까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밝은 미소와 함께 여쭤보시는 프로의 면모가 느껴지는 여자의사 선생님. 내게 여기 온 이유를 물으셨다.


"제가.. 우울증 증상이 있는 것 같아서요. 인터넷으로 해본 우울증 검사에서 중증 우울도가 나오기도 했고.."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그때 처음 입 밖으로 뱉은 것처럼 혀가 어색하게 움직였다.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으로 내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서 약간의 수치심이 느껴졌다.


"밖에서 검사지를 몇 장 드릴 거예요. 이건 제가 환자분을 귀찮게 하려는 건 아니고 어떤 점이 문제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니까 밖에서 안내해 주는 대로 작성해 주시고 다시 한번 뵐게요."


    밖에 나오자 카운터에 계신 간호사분께서 여러 장의 검사지를 주셨다. 내가 진행한 검사는 다음과 같다: BECK 우울 자기 척도 검사, PHQ-9, GAD-7, 문장완성검사 등. 우울증 검사는 휴대폰으로, 문장완성검사는 군대, 고등학교에서도 해본 적이 있어서 익숙했다. 따로 마련된 방으로 안내를 받고 나는 하나하나 빈칸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자살에 관한 생각을 한 적이 있나? 난 죽음에 관한 생각은 군대에서 이미 끝냈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잠을 잘 못 잔다? 요즘 휴대폰 수면 측정 앱에 수면 질이 떨어졌다고 나왔으므로 '그렇다'. 등등 쭉쭉 체크를 해가며 웃기게도 나는 '생각보다 나 별로 안 우울한 것 같은데? 정상으로 나오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쩌면 내 문제의 원인을 이곳에서 찾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워했던 것 같다.


    질문지를 다 작성하는 데에 45분 정도 걸렸다. 빈칸이 모두 채워진 검사지를 간호사님께 드리고 5분 정도 대기석에서 기다리자, 'OO님 들어가실게요~'라고 하셔서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OO님은 우울도랑 불안이 꽤 높게 나오셨어요."


    별로 청천벽력 같은 소리는 아니었다.


"이 정도는 단순히 가벼운 우울증이 아니라 어쩌면 1년 이상 지속된 우울증일 가능성이 커요."


    '으음' 하는 앓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오면서 고개가 숙여졌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으신 것 같아요."


    나는 긍정하고 싶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 놀랍게도 막상 이렇게 진단을 받으니 약간의 불안감뿐만 아니라 안도감이 몰려왔다. 내가 이상한 게 나 때문이 아니었다는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단순히 아파서 그런 거였구나. 마음이 아팠구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정신과를 이렇게 적극적이게 온 걸지도 모른다.


"우선 제가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약 복용은 처음이시니까 먼저 최저용량으로 드릴 건데, 저희 약을 조금 빨리 올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필수로 먹는 약이랑 필요시 약을 드릴 건데, 필수로 먹는 약은 하루 한 번씩 아침에 드시면 되고 필요시 약은 상태가 안 좋을 때 하루 최대 두 알까지 타이레놀처럼 드시면 돼요. 일주일 동안 경과를 지켜보고 한번 다음 주에 증량을 결정해 볼게요."


    빠른 증량은 바라던 바였다. 나는 약의 효과를 최대한 빨리 보기를 바랐다.


"환자분은 아마 지금 닥친 문제들이 너무 눈에 가까워서 문제를 제대로 보기 힘든 상태일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지금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조금은 문제와 거리를 두실 필요가 있어요."


    등등. 이런 이야기를 일어서서 몸짓과 얼굴표정까지 섞어가며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금 내 상태로는 나에게 닥친 상황들을 적절히 거리를 두고 살펴보지 못할 터이니 지금 당장 그것들을 해결하려 들지 말고 약효가 들 때까지 마음에 여유를 두라는 것이었다.


"제가... 이걸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까요?"


약간 울먹거리긴 했지만 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우울증'을 '이것'으로 표현한 것은 다시 그 단어를 입에 담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이런 사소한 문제는 내 스스로 결정하면 되지 않겠냐고 한편으로 생각하면서도, 의사 선생님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환자분이 편하실 대로 하시면 돼요. 되게 많은 환자분들이 여쭤보시는 질문인데, 아마 밝힘으로써 가족에게 받을 수 있는 상처를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진료를 받는 데에 있어 금전적인 어려움이 없으시다면 자유롭게 하시면 좋을 것 같고,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가족의 지원을 받으시는 게 좋겠죠."


"네.. 알겠습니다."


"네, 그럼 약 일주일 동안 잘 챙겨드시고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진료실을 나섰다. 뭐가 감사하다는 걸까. 진료를 봐준 것일까 우울증을 확진시켜 준 것일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텍스트로 표현해서 약간 딱딱해 보이지만 의사 선생님은 계속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다시 대기실로 나와 앉아있자 카운터에서 결제를 진행하며 약을 받았다. 초진 진료비는 약 47,000원. 인터넷에서 찾아보아서 예상은 했지만 적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진료 시간에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것 같다는 생각에 아깝기도 했다.


    우울증에 걸린 것을 가족에게 말할 것인지는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었다. '완치되면 말하자.' 나는 이미 군입대 2개월 전에 부모님께 우울감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원하던 해답, 위로를 해주기보다는 '네 생활이 정상적이지 않아서 그렇다'며 혼을 내셨다. 그때 당시 나는 매주 용돈벌이로 하던 과외를 제외하고는 딱히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집에서 소설과 만화를 보거나 자격증 준비를 하던 입대 전의 학생이었다. 딱히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때 생긴 부모님을 향한 약간의 불신과 마음속 상처는 내게 '이것'을 말할 생각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나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진료비+약값 6~7만 원을 취미생활, 인터넷 쇼핑, 식비 한 달 예산에서 빼서 옮기기로 결심하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에는 우울증 약을 2주간 복용하면서 나타났던 변화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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