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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Jun 16. 2023

내 불안의 역사와 원인에 대해

불안이 내게 끼친 영향들과 그 원인, 과민성대장증후군과 함께한 내 인생

- 내 불안은 어디서 왔는가

    우울과 불안은 함께 온다.라고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온 정신병의 이름은 '우울장애'와 '불안장애'. 둘 중 무엇이 먼저 온것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불안이 더 근본적인 원인인 것 같다. 나는 어릴 때 분리불안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별다른 치료를 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것을 못 견뎌했던 기억이 있다. 

    어린이집을 처음으로 갈 때의 기억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부모님과 떨어진다는 것의 공포. 나는 내가 부모님과 떨어져있는 동안 집에 불이 나거나 교통사고가 나거나 부모님이 심장마비를 일으키거나 창문에서 빨래를 널다 떨어질까봐 두려워하여 부모님과의 연락을 계속하려 했다. 엄마가 나를 집에 두고 볼일을 보러 갔을 때 10분마다 연락이 되지 않거나 집전화로 엄마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받지 않으면 엄마가 죽거나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뿐인가, 수련회나 수학여행에서는 학생들만 모여있는 방에서 불안을 견디지 못해 선생님을 찾아대기도 했다. 분리불안 자체는 성장해가며 사라졌지만(군대 입대 후 훈련소 첫 2주간 재발하긴 했다.) 내게 내재된 불안은 내게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내게 불안은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내게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는 거의 내 일생과 함께해온 과민성 대장 증후군이 있다. 나는 아침에 설사를 하지 않는 날이 달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다음날 아무리 가볍고 일상적인 일정이더라도 일정이 있으면 설사를 한다. 시험이 있거나 발표가 있는 날은 물론이고, 어딘가에 놀러가는 일정이 있거나 단순히 학교를 가는 날이기만 해도 나는 (내 기준) 일상적인 불안을 느끼며 묽은 것을 아침마다 내 뱃속에서 비워냈다. 

    이러한 증상들은 특히 시험이 있는 날과 발표하는 날에 심했는데, 시험을 볼 때면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 머릿속이 하얘진 채로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었으며, 발표하는 날에는 내 발표가 걱정돼 앞선 사람의 발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내 발표 시간이면 외워온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 미리 준비해 온 대본이나 ppt에 적인 글을 그저 읽기만 할 뿐이었다.

    그 외에는 캠핑을 갔는데 바람에 텐트가 날아갈 것이 두려워 부모님께 칭얼댔던 일, 부모님이 다툰 날 이혼할까봐 두려워하며 울었던 일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 불안은 왜 남들보다 이렇게나 높은 걸까? 나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유전이 내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일단 우리 엄마는 나만큼이나 불안이 심해 보인다. 대표적으로 생각나는 것은 내가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당사자인 나만큼이나 불안해하며 여러 문제집/과외/학원을 찾아다오며 그 공부방식을 내게 요구해왔던 기억이다. 우리 아빠는 어떨까? 불안에 대해서는 어떤지 몰라도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신다. 언젠가 내 생일에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을 때, 식당이 망해서 다른 식당으로 찾아가려 나오다가 다른 차와 시비가 붙었을 때 분노를 터뜨리고 다른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까지 내 생일인데도 화를 식히지 못하고 신경질을 내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날의 기억이 약간의 트라우마가 되어 아직까지도 아빠가 운전하다가 화를 낼 때면 불안을 느낀다.) 스트레스 상황을 잘 견뎌내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은 나와 비슷하다. 이런 걸 보면 내 불안은 분명히 부모님의 영향이 있어 보인다. 비록 내 부모님을 사랑하지만 빈말로라도 둘의 영향이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불안들은 내게 공부를 하거나 미래의 걱정 원인을 대비할 원동력이 되기도 했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닥쳐오면 긴장에 준비해 온 것들을 다 망쳐버리는 요인이기도 했다. 불안이 전혀 없는 상태가 좋은 것이 아니라고 정신과 의사선생님은 말했다. 불안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불안이 과도한 상태가 오히려 나쁜 것일 뿐. 그동안은 그래도 일반인보다 약간 높은 3~4 수준으로 유지 되오던 불안이 지난 4월 말 시험기간과 학업스트레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겹쳐 8~9로 높아지고 우울 또한 발생해 내게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터뜨려버렸다. 의사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퓨즈가 터지듯이.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불안이 도를 넘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은 약물치료가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어 평소에는 괜찮지만, 가끔씩 큰 이벤트가 있을 때면 불안이 다시 넘쳐 흐르기 시작한다. 내 불안, 언제쯤 너와의 공존이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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