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우울증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반응과 뱃속의 내게 있었던 비밀
처음 우울장애와 불안장애를 진단받았을 때, 나는 사실 완치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완치될 때까지는 본가에 와 있을 때는 약도 숨어서 먹고, 진료기록도 삭제하여 부모님으로부터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이었다. 사실을 말씀드렸을 때의 부모님의 반응이나 대응방식이 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군대 입대 전에도 우울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부모님께 요즘 좀 우울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부모님은 방안에만 있고 운동도 하지 않아서 그렇다며 내 탓을 했다. 산책할 때 나를 데리고 나가시거나 친구를 좀 만나라며 타박하시기도 했다. 별로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이러한 경험들이 부모님께 우울장애와 불안장애에 관해 말씀드리기, 즉 '울밍아웃'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나는 왜 정신과를 다닌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렸냐 하면 그 이유는 사실 별 것이 아니었다. 8월 초에 예정되어 있던 몽골 가족여행 때 정신과 약을 가져가려면 영문 처방전을 출국 시 제출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들킬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가족 여행을 내 정신과 문제 때문에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알릴 것이라면 빨리 알려서 가족여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결국 주말에 본가에 갈 때 말씀드리기로 했다.
때는 저녁식사 중, 아빠가 퇴근길에 포장해 온 족발을 부모님과 함께 잘 먹은 후였다.
"엄마아빠, 나 할 얘기가 있어요."
착 가라앉은 내 목소리, 벌써 약간 목이 메기 시작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본 엄마가 자리에 앉아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지금 이 얘기를 하는 거는 도움이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지난 4월 말에 많이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정신과를 갔는데, 우울장애랑 불안장애를 진단받았고 지금 약 먹고 있어요. 약이 잘 들어서 다행히 지금은 우울감이랑 무기력감은 많이 사라졌고 불안만 좀 남아있는 상태예요."
말을 좀 쏟아낸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목이 좀 걸리긴 했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말씀드렸다.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생각이 좀 많아 보였다. 얘기를 하면서 눈물이 맺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들이 좀 복학하고 힘들어한다는 게 느껴지기는 했는데 많이 힘들었니?"
엄마가 말문을 열었다.
"네. 그때는 많이 힘들었죠. 지금은 좀 괜찮아요."
"그래도 스스로 상태를 잘 판단해서 병원을 갔다는 게 다행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어서 당황했다. 나는 부모님이 쓸데없이 호들갑을 떨어대며 정신과를 간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신과를 가서 다행이라니.
"응, 그러게요. 병원에서 심리검사도 하고 했는데 경증 우울증은 아니고 약간은 중한 상태라고 했어요. 아마 몇 년 정도는 우울증 증상이 있긴 했는데 이번에 복학하면서 터졌을 것 같다고. 아마 군대 전부터 약간 우울했던 게 이번에 터지지 않았나 싶어요."
"아들은 원인이 뭐인 것 같아?"
엄마가 물었다.
"글쎄요, 유전적인 거나 선천적인 것도 좀 있는 것 같고. 나는 어릴 때 분리불안도 있었잖아요? 어릴 때부터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계속 있었고. 나는 다음날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설사를 했잖아요. 선천적으로 불안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복학하고 인관관계도 새로 만들고 공부는 어렵고 스트레스랑 불안이 많이 오는 상황이 돼서 그게 터져버린 것 같아요."
"유전적인 거나 선천적인 게 그렇게 영향이 있겠냐."
아빠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유전적인 영향이 있다는 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은 듯했다. 아마 친가 쪽 약간 먼 친척이 정신 관련 문제로 죽은 것 때문이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도 그렇고 책에서도 그렇고 유전적이고 선천적인 영향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대요. 혹시 친척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 있었던 경우가 있나요?"
"네 얘기를 듣고 보니 이모가 약간 조울증 증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해. 기분이 좀 왔다 갔다 하더라고."
라고 엄마가 얘기하셨다. 아빠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면 낫는 데에는 약을 얼마나 먹어야 한대?"
"최소 6개월에서 길면 2년 정도요."
"병원은 어디로 다니고 있니?"
"신림역 쪽으로요."
"엄마아빠가 도와줬으면 하는 게 있어?"
"그냥 크게 신경 안 썼으면 좋겠어요. 나는 약 꾸준히 먹으면 나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고, 학교 교내상담도 신청해서 잘 다니고 있어요. 한 가지 지원해줬으면 하는 거는 병원비 지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병원비는 어떻게 했니?"
"생활비에서 따로 빼서 냈어요."
그 뒤로 어떤 약을 얼마나 먹고 있는지, 의사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등 몇 가지 질문과 내 답변이 오갔다. 그러다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들, 공부가 많이 힘들더라도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다른 사람들은 서울대 입학도 못 하는데 서울대 입학도 큰 업적이야. 힘들면 휴학해도 되고 학교 1년 더 다녀도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아빠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게 느껴지는 위로였다.
"그래요. 등록금도 얼마 안 하는데 1년 더 다니면 되지."
나는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에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갔다.
내 울밍아웃은 나쁘지 않게 이루어졌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과외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내 방에 찾아왔다. 할 얘기가 있어 보였다.
"아들, 아들이 선천적으로 불안이 좀 있다고 했잖아. 이 이야기는 엄마가 죽을 때까지 묻고 가려고 했는데,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아."
"무슨 얘기인데요?"
"아들 임신하고 너희 누나 어릴 때, 엄마가 많이 불안했었어. 아빠가 그때 바람을 피웠었거든."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시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는 네가 불안을 느낀 게 그때 엄마가 너무 불안해해서 그런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말해줘서 고마워요. 빈말로라도 그 영향이 없다고는 얘기를 못하겠네요. 그래도 내가 왜 불안 해하는지에 대한 원인 중에 하나를 찾은 것 같아서 안심이 돼요."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누가 보아도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분노나 절망이 아닌 약간의 놀라움과 이해였다. 나는 내 불안의 원인을 찾았다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많은 것이 바뀌진 않았다. 더 이상 약을 숨어서 먹지 않고, 부모님이랑 누나가 약간의 배려를 해준다는 것 빼고는. 그래도 그 작은 배려가 나는 고마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마웠던 것은 내가 우울장애랑 불안장애를 겪는다는 것에 대해 너무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과 우리 가족이 같아서 안심했고 내 질병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좋았다. 우리 가족은 이전과 같았다. 내가 약간 마음이 아플 뿐이다. 그리고 이 아픔은 언젠가 나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