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우집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쓰니 Sep 18. 2023

MZ 새댁의 원룸 신혼생활

깨 볶는 고소함보단 단짠단짠이 더 어울리는

 결혼식은 상견례부터 시작한 지난한 준비 과정의 종착역이다. 동시에 출발점이다. 숙제 같던 체크리스트를 해치우면 기혼자가 된다. 먼저 결혼한 회사 동료가 물었다.


"결혼하니까 어때?"

"글쎄,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

"그치? 나도 그래.."


  식을 올리기 전에 살림을 합쳐서일까. 연애를 오래 해서일까. 처음엔 큰 변화를 못 느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알게 모르게 조금씩 바뀔 뿐. 


 퇴근길에 만나 외식을 하고 함께 귀가했다. 주말엔 장을 봤고 집밥을 해 먹거나 나들이를 갔다. 주방이 좁아도 한식, 중식, 일식에 제과, 제빵까지 야무지게 차렸다. 제법 새댁 흉내를 냈다. 남편이 늦는 날은 n첩 반상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원룸이라 현관에 들어서면 식탁이 바로 보인다. 남편은 복에 겨워 쓰러지는 척 연기하곤 했다. 행복한 장금이 시절.


전복 스테이크, 탕수육, 코코넛 &초코 아몬드 쿠키

 

 원룸은 주거비가 적게 든다. 에어컨을 틀면 금세 시원해지고 겨울엔 보일러를 온종일 틀어도 난방비가 몇 만원밖에 안 나온다. 고정비를 절약하고 대출금 상환에 집중했다. 야근이 잦은 나와 주말에도 일이 있는 남편. 번 돈을 쓸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대출을 빠르게 갚아나갔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자산이 0을 지나 순증으로 나아갔다.


 출산계획은 자연스레 미뤄졌다. 원룸에서 아기를 키울 순 없었으니까. 신혼기를 더 만끽하고픈 마음도 있었다. 둘만의 합의로 끝나지 않았다. 결혼으로 새 식구를 맞이하니 잔소리도 같이 따라왔다. 양가 어른들께서 2세 이야기를 꺼내실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꿀 떨어지게 사는데 소금은 왜 치시는지. 신혼의 맛은 단짠단짠이었다.


- 낳기만 하면 다 키워줄 테니 하나만 낳아다오.(이런 말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 며느리가 생기니 요즘 손주 생각이 부쩍 든다.(이 유형은 후에 둘째 타령으로 버전이 바뀐다.) 등등.


 아니 지금요? 이 집에서요? 어떻게요?
그땐 MZ세대란 말이 없었지만 '
이걸요? 제가요? 왜요?'라는 'MZ 3요'의 새댁 버전이다. 나 MZ 맞네.

 



 다세대 주택이라 주차공간이 부족한 건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총 3대의 주차공간을 두고 4명의 차주가 경쟁했다. 한 명은 낙오될 수밖에 없는 선착순 주차. 만차인 경우엔 멀리 다른 골목에 차를 대야 했다.


 집이 좁은 건 신혼에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따로 부를 필요 없이 그냥 말하면 된다. 시야의 사각지대가 없으니 어디서 뭘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주말이면 좁은 공간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갔다. 주말이면 동네 카페며 야구장으로. 콘서트와 여행도 자주 즐겼다. 주거비를 아꼈다는 보상심리로 문화생활비는 아낌없이 썼다.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다니기 힘들 테니 지금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후회는 없다. 다시 돌이켜봐도 잘한 일이다.


 모든 일이 뜻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미필적 고의(임신이 불법은 아니지만 대체할만한 용어가 없다)로 예정에 없던 경사가 찾아왔다. 결혼처럼 이번에도 시기가 좋지 않았다. 행복해야 마땅한데 솔직히 난감했다. 계약기간을 못 채우고 이사를 가게 생긴 데다 회사는 부서 이동 직후였다. 임신과 출산은 타이밍이 정말 중여하다. 결혼보다 훨씬 더. 커리어나 주거가 안정된 후에 해야 편하다.


 임신하자마자 이사를 했어야 하는데. 일이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등. 핑계는 많았다. 아직 임신 초기니까 괜찮겠지.. 안일했고 겁이 없었다. 집이 언덕에 있는 데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했다. 새로 옮긴 팀의 파트장은 업무를 지시할 때마다 매번 자리로 불러 세웠다. 앉았다 일어나기반복했다. 연달아 세 번 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결국 말해버렸다. "그냥 한 번에 다 말씀하시죠?"


 임신 초기엔 2주에 한 번씩 검진을 받는다. 배가 뭉쳐서 걱정했는데 아기집도 자리를 잘 잡았고 심장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별일 없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산부인과 의사가 유산 위험이 있다고 했다. 놀란 마음에 바로 휴직했다. 안정을 취했지만 유산을 막을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흔한 일이라며 자책하지 말라했다. DNA 검사를 했더니 태아에는 이상이 없었다. 이건 타격이 컸다. 강펀치였다. 과학이 모체의 문제임을 밝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결과는 KO.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책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이걸. 내가. 어떻게.

매거진의 이전글 찐친만 초대할 수 있는 신혼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