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부르는 자에게 스미는 것

by Black Universe

정신병원에서 두번 째 진료를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라고 아무리 순한 말로 꾸며보아도 정신병원인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증상이 있어 내원하는 환자들의 불안, 우울, 분노의 검사 수치가 평균 60점인데 비해 나는 80점으로 상당히 높다고 한다. 거기에 자율신경 검사 결과도 비정상이란다.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상태에서 교감신경과 부교감긴경의 활성도(?)는 균형을 이루어야하는데 내 경우에는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높게 활성화되어 있고, 그건 곧 심장 박동이 불안정하다는 말이고 늘 긴장과 스트레스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며 수시로 분노할 수 있고 심하면 공황장애도 올 수 있단다. 공황장애라니……


보컬레슨 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있어 미리 생각해둔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 들렀다. 아메리카노와 빵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약봉지를 꺼냈다. 첫 진료 때 받은 데파스정 0.25밀리그램에 인데놀정 10밀리그램과 산도스에스시랄로프람 5밀리그램(이름이 매우 정신병원적이다)을 추가로 처방 받았다. 행인들이 오가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약봉지를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서글퍼졌고 살짝 눈물도 났다. 정신과 약에 의존하며 얼마나 살아가야 하는걸까. 아이고, 내 팔자야.


각각의 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자율신경 시스템에 작용하여 심장박동을 안정하게 하는 약. 어떤 약은 한 번에 많은 양을 복용하면 죽을 수도 있지만 시도하지 말라는 그랬다가는 개고생한다는 선배의 조언도 있다. 나는 상상한다. 약을 모으는 것이 너무 귀찮을 것 같다는 데까지만 생각하다 멈춘다.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니까.


보컬 학원으로 걸어가며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병원도 두번 째, 보컬레슨도 두번 째인데 내 꼴도, 내 노래도 너무 허접한 모양을 남 앞에서 드러내기 싫어서라고 지금 이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레슨비를 이미 지불했으므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도착했고 선생님은 조금 늦게 왔다.(3분이지만 불쾌하다)


첫 시간에 장범준의 <추적이는 여름 비가 되어>를 가지고 꽥꽥거리다 현타가 세게 왔다. 다음 날 카톡으로 기초에 기초 발성지도 부탁했고 선생님은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을 수도 있기에(좋다!) 취미반은 지루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수락했다. 호흡과 발성 연습은 선생님의 우려와 달리 매우 재미있고 즐거웠다.


카페나 버스에서 우연히 귀에 꽂힌 노래를 하나의 계절이 지나갈 때까지 반복해서 듣고 따라서 흥얼거린다. 그러다가 고음 처리가 안되거나 옥타브를 내려야할 때 나는 짜증이 난다. 될 것 같은데 안돼. 거기를 반복해서 깍꺅거리면 함께 있던 이제 열 살이 된 아들은 심히 괴로워한다. 쇼팽과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좋아하고 그들의 곡으로 피아노연주 레파토리를 늘려가는 그의 귀에는 소음도 그런 소음이 없겠지.


나는 내가 어떤 음색으로 어디까지 높이 또는 낮게 소리를 낼 수 있을까를 늘 궁금해했다. 호흡과 발성 수업을 하며 오랫동안 궁금해서 답답했던 질문이 많은 부분 해결되어 가슴이 뻥 뚫리고 기분도 조금 좋았다. 음역대가 넓다는 호흡도 발성도 첫날인데도 너무 잘 했다는 앞으로는 더 나아질 거라는 선생님의 칭찬도 듣기 좋았다.(비록 선생님의 영업 기술이라 할지라도)


몇 해 전,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버거울 때(지금도 여전하지만)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시간의 흐름, 2020)을 가방 속에 넣고 다니며 아껴 읽었다. 일부러 천천히 읽으며 두어달을 작가의 문장에 기대어 살아내었다.


노래 교실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걸으며 문득 작가의 문장이 부정확하게 떠오른다. "노래는 부르는 자에게 스미는 것"이었던가? 본 글을 고쳐쓰며 찾아 본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책속에서 처럼 비록 눈,코,입이 허물어진 나병 환자는 아니지만 내 병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오래되고 깊은 만큼 빨리 낳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호흡과 발성으로 부르는 노래든,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위해 애써 부르는 생각과 마음으로 짓는 노래든,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삶의 태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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