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면 하는 생각
7시 10분 전을 알리는 알람의 진동이 손목으로 전해진다. 시계는 피부에 밀착되어 있으므로 진동은 한층 강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깊게 잠든 날도, 늦게 잠들어 피곤한 날에도 깨어날 수밖에 없다. 아내는, 아내는 어디에 있지. 벌써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출근할 준비, 초등학생 아들을 등교시킬 준비. 나는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한다. 당연하게도 아내의 아침 준비에는 나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는 없다. 서운함은 없다. 나 역시 아내를 위한 아침 식사 준비는 하지 않으므로.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소변을 본다. 쪼르르르(콸콸철철이 아닌 것에 열등감이 있다) 소변을 보고 휴지를 두 세칸 뜯어 뒷처리를 한다.(앞처리라고 말해도 된다) 휴지통 뚜껑을 열고 사용한 휴지를 버리면서 손에 오물이 묻지 않게 조심하며 꾸욱 눌러 쓰레기의 부피를 줄인다. 뚜껑을 닫는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꽉 차가는데 버리질 않았군. 대체 하는 일이 있긴 한건가.(주어를 쓰기가 두렵다. 수많은 반론으로 공격당할 것이 무섭다)
나는 얼굴을 씻고 면도를 한다. 로션은 손바닥에 두 번 펌프로 짠 뒤, 두세번 정도 비벼 세수하듯 넓게 바르고 선크림은 왼손 중지에 치약 짜듯이 조금만 짜서 양쪽 볼과 이마에 톡톡 두드려 골고루 나누어 묻힌 뒤 얇게 펴가며 바른다. 옷을 입고 가방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아침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다가가 "다녀 올게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포옹을 나눈다. 아내는 나를 꼭 안아준다. 나는 어색하게 팔을 두른다. 가방과 손에 든 핸드폰 때문에 꼭 안을 수 없다는 듯이. 한껏 안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리듯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가 안고 있는 게 감정적 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품안에 끌어 안고 있는 건 차가운 몸덩어리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운동화에 발을 앞꿈치만 대충 끼워 넣고 뒤꿈치를 든 채 현관 문을 연다. 돌아보면 집을 나서는 나를 여전히 보고 있을까봐 부담스러워 뒤돌지 않으면서 문을 닫는다. 나는 원래 그렇게 닫는다는 듯이.
회사로 가는 산책길을 향해 힘차게 걷는다.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매일 해 온 동시 필사 활동에 대해 생각한다. 필사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떠올린다. 하고 안하고는 선택이라고 했지만 쓰지 않기로 선택한 아이들이 편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다. 쓰기로 선택한 아이들은 선택을 한 건지,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건 아닌지, 그런 걸 선택했다고 할 수 있을지를 헤아려본다. 동시 필사가 누구를 위한 건지, 이래저래 불쾌함이 유발된다면, 지속할 필요가 있을지를 고민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어설픈 방식으로 교육하고 있는 무능력에 의기소침해진다. 교육이라고 할 수 있는지 회의가 든다.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린다.
정수리 한가운데에서 아래로, 양쪽 귀 뒤쪽의 머리뼈 안쪽으로 날카로운 통증이 있다. 눈은 쌍커플이 지고 힘이 잔뜩 들어간다. 가슴이 답답하다. 심장 근처에 아기 주먹만한 크기의 둔탁한 통증을 느낀다. 걸음걸이가 느려진다.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회사로 부지런히 걸으며 커피를 상상한다.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생명의 물. 지난 해에 전보를 받아 새롭게 근무한 이 곳에서 유이한 기쁨과 위안은 교무실에 구비된 커피머신과 원두를 준비해 주시는 실무사 선생님이다.물은 가운데 큰 눈금을 기준으로 두 칸 더, 원두는 두 칸 반 더, 투샷 버튼. 지난 일년 동안 거의 매일 커피를 내려 마시며 찾은 나만의 비율이다. 이렇게 내리면 350ml 종이컵을 기준으로 절반 정도를 아메리카노로 마시며 1교시를 보내고 쉬는 시간에 우유 200ml를 추가하면 카페에서 마시는 라떼의 농도와 비슷하게 즐기며 2교시를 보낼 수 있다. 나를 위한 아침 식사.
교실문을 열고 전등 스위치를 켠다. 두개씩 두 줄로 배열된 스위치 중에서 오른쪽 아래의 스위치는 손으로 톡 두드리듯 때려야 연결된 전등이 켜진다. 수리를 요청하면 벌써 해결되었을 텐데. 세 달이 지나도록 매일 불편하게 쓰고 있다니. 컴퓨터 전원을 켠다. 새까만 화면에 모음 'ㅡ' 하나가 깜박거린다. 계속 깜박거린다. 기다려도 소용 없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질 않는다. 전원을 길게 눌러 강제로 꺼버린다. 다시 전원을 켠다. 몇 차례 깜박이던 'ㅡ'가 사라지고 바탕화면이 나타난다. 빌어먹을 이 과정을 매일 아침 반복한다.
하루를 짜증으로 시작하게 하는 젠장할 컴퓨터. 지난 해에 전보를 받아 근무하기 시작한 이 곳에서 수많은 피로와 짜증은 컴퓨터와 실물화상기와 스마트하지 않은 텔레비젼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톡 때리는 정도의 작은 불편함이 있는 스위치는 견디기 쉽다. 전원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끝나는 컴퓨터 전원 켜기를 '스위치를 전원이 켜질 것이라는 기대 없이 누른다, 깜박이는 '으'를 바라보며 마음속의 '으이씨'도 본다,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강제 종료한다, 전원버튼을 다시 누른다, 천만다행으로 'redstone'이라고 빨갛게 떠오르는 피씨회사의 로고를 본 후에야 안심한다'는 과정을 매일 아침 겪는 것은 어떤가. 진심으로 화난다. 그래서 요청했다. 수리해달라고. 하지만 정상이라는, 회사에서 점검 결과 하드웨어적으로 문제가 없으므로 이 문제는 피씨 회사의 책임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가요. 그렇군요. 네. 나는 그냥 쓰기로 한다. 원래 컴퓨터는 이렇게 켜는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것은 어른답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병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