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상현 Dec 26. 2023

[세계여행] D+171 아스완

여행자를 지치게 하는 이집트

이집트는 여행지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라 꽤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길에서 버려야 한다. 시와에서 다음 여행지인 아스완까지도 당연히 직행 교통편은 없어서 카이로를 들러야 했다. 시와->카이로, 카이로->아스완이 버스로 각각 12시간씩 걸리지만 두 버스를 연달아 타면 허리가 박살 날 것 같다는 판단을 해서 카이로->아스완은 항공편을 예약했다. 버스로만 돌아다니다 여행 중 첫 국내선 항공 탑승이었다. 하루를 이동으로 버리고 아스완에 저녁쯤 도착해 휴식을 취했다.



아스완은 도시 자체에는 딱히 볼 건 없지만 수단 국경에 위치한 아부심벨 신전을 보고 룩소르로 올라가는 크루즈를 타기 위해 많은 여행자들이 거쳐가는 도시다. 우리도 다음날 새벽 4시부터 아부심벨 투어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3시간이 넘게 남쪽으로 사막을 달려 신전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워낙 유명한 곳인 만큼 이미 꽤나 많은 관광객들이 도착해 있었다. 내국인에 비해 20배나 비쌌던 외국인 티켓을 사고 유적지에 들어서면 먼저 바다 같아 보일 정도로 넓은 나일강이 보인다. 아부심벨 신전은 원래 지금의 위치보다 훨씬 저지대에 있었는데 이집트가 나일강에 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유네스코에서 신전을 몇만 조각으로 조각내 해체한 뒤 지금의 위치에 재조립해놓았다고 한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신전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신전 밖에 서 있는 4개의 람세스 2세 석상 중 하나는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데 원래 위치에서 발굴 당시에 있던 상태 그대로 재조립 후에도 놔둔 것이라고 한다. 신전 안쪽에도 람세스 2세의 석상들이 쭉 늘어서 있고 회랑과 안쪽 방들에는 그의 전공과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그려놓은 벽화, 그리고 상형문자로 작성된 글들이 꽤나 괜찮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역시 이런 유적지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사진에는 잘 담기지 않는다. 



람세스 신전 옆에는 그의 부인이었던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진 규모가 작은 신전이 있다. 내부에도 전신 석상 대신 네파르티티의 얼굴만 기둥에 조각되어 있었다. 크기는 훨씬 작으나 여기도 나름의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투어비와 입장료가 많이 부담스럽긴 해도 이집트에 있는 신전들 중 보존상태도 가장 괜찮은 편이고 역사를 많이 공부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정도라 들를 만한 것 같다. 물론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으면 훨씬 좋았겠지만 이미 3만 원 가까이하는 입장료에 추가비용을 더 지출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점심때쯤 아스완으로 돌아와서 다음날 탑승할 룩소르행 크루즈 예약을 마무리하기 위해 브로커와 만났다. 크루즈를 탈지 말지 고민하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타보겠냐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유명하다는 브로커들과 연락을 취해오던 터였다. 왜 크루즈 회사에서 직접 정가로 예약을 받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개발도상국들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한 일이다. 온라인을 통한 예약은 대부분 정보를 자세히 알아보지 않는 백인 중장년층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터무니없게 비싼 가격을 지불하게 되고 현지 에이전시나 브로커를 통한 방법이 그들이 떼먹는 커미션을 고려해도 배낭여행자들에게는 훨씬 합리적인 가격을 제공한다. 나일강 크루즈는 보통 룩소르에서 출발해 아스완까지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유유자적하며 다시 룩소르로 되돌아오는 일주일 짜리 일정이 기본적인데 우리나라 여행객들은 대부분 아스완에서 룩소르로 이동하는 2박 3일 일정을 선호한다. 작년 정보만 봐도 1인 1박에 30달러 정도의 가격으로 탑승이 가능했는데 1년 전쯤부터 이집트 환율이 박살 나는 바람에 최근에는 두 배 정도 비싼 가격을 요구한다. 실제로 나도 처음 문의했을 때는 브로커들 대부분이 1인 1박 70달러 선의 가격을 제시했다. 아무리 삼시 세끼가 다 제공되는 크루즈라 해도 이 가격은 너무 부담스러워서 안 깎아주면 안 타고 만다는 마인드로 브로커들과 협상을 했다. 1박 55달러 밑으로는 도저히 내려가지 않아서 먼저 그 금액을 제시한 브로커와 거래를 하려다 출발 전날 아침에 다른 브로커가 50달러면 자기에게 오겠냐고 해서 바로 갈아탔다. 어차피 브로커가 무슨 감언이설을 내뱉어도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닌 중개인일 뿐이기 때문에 같은 조건이면 무조건 가장 싼 쪽으로 옮기는 게 답이다. 결국 아스완에서 크루즈를 확인하고 다음날 출발하는 2박 3일 일정으로 계약을 했다. 여러 브로커들과 얘기를 해 본 결과 50 밑으로는 절대 내려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이집트에서는 어떻게 거래를 하든 손해 보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거래 후 브로커가 추천해 준 근처 식당에서 코프테를 먹었다. 워낙 식비가 싸서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니 이젠 배고프게 다니는 배낭여행의 감성이 느껴지질 않는다. 아스완은 카이로보다 훨씬 남쪽이라 12월인데도 태양이 뜨겁고 낮의 더위가 엄청나다. 그래도 강변을 산책하면서 보이는 잔잔한 나일강과 그 위에 떠 있는 크루즈와 돛단배, 반대쪽 서안에 보이는 모래언덕이 어우러진 모습이 꽤나 매력적이다. 물론 강변에 쭉 깔린 호객꾼들을 견딜 수 있다면 말이다. 더위 외에 카이로와 가장 다른 점은 인종구성인데 아랍계가 절대다수인 카이로에 비해 이곳은 흑인들이 비교적 많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부심벨을 다녀와서 신전과 유적지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나일강 가운데에 있는 엘레판틴 섬 위 토착 흑인 민족의 마을인 누비안 빌리지에 가보기로 했다. 이곳으로 가는 방법으로는 대중교통인 정찰제 페리가 있는데 역시 근처에 가자 페리가 오늘 다니지 않는다는 둥, 가격이 많이 올라 비싸다는 둥 온갖 거짓말로 사설 페리를 영업하는 삐끼들이 가득하다. 가뿐히 무시해 주고 구글지도에 표시된 대중교통 페리 선착장으로 가면 된다. 평화의 종교 이슬람을 믿는다면서 외국인들에게는 밥먹듯이 사기를 쳐대고 경찰들은 그걸 방관하는 모습에 이집트에서는 오늘도 인류애가 떨어진다. 



누비안 빌리지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현지인들이 사는 곳인 만큼 당연히 청결은 많이 좋지 않은 와중에 여행객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콘텐츠는 없었다. 섬임에도 불구하고 강 쪽은 가정집이나 숙소로 막혀있어서 강변 산책은커녕 바라볼 스팟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아름다운 나일강을 갖고 있고 홍해, 지중해에 접해있지만 그 자원을 공공을 위해 살리지 못하는 부분들이 이집트에서는 늘 아쉽다. 나도 원래는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공원이나 조망, 공공재에 대한 접근성이 정말 부족한 이집트를 여행하니 비단 여행객뿐 아닌 현지인들을 위해서도 그것들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껴진다. 마을 자체보다 오히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엘레판틴 섬의 불평등이었다. 남쪽에 있는 더럽고 낙후된 현지 마을들을 지나치면 분리된 섬 북쪽으로 스위스의 한 고급 호텔 브랜드가 세운 초호화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 묵는 돈 많은 외국 여행객들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 페리가 아닌 별도의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호텔 자체 페리를 이용해 입도한다. 당연히 호텔 직원들을 제외한 현지인들과 마주칠 일도 없다. 리조트 건물은 고층이라 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고 마을 주민들은 외국 자본이 들어온 본인들의 섬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는 상태로 리조트를 올려다본다. 리조트 이용객들이 현지인 마을에서 소비활동을 하지도 않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도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과연 이곳에 리조트가 들어오기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오던 현지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섬 북쪽을 바라보고 있을까.


누비안 빌리지를 돌아보며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일정에 피로가 몰려왔다. 숙소로 이른 복귀를 위해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현지인 버스를 이용했다. 정해진 노선이 없이 길에 서서 가는 방향을 가리키면 기사가 태워주는 방식인데 역시 남미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옆에 서 있던 현지인의 도움으로 버스에 탑승했고 구글지도를 봐가면서 숙소 근처에서 다른 승객이 내릴 때 눈치껏 빨리 따라 내렸다. 그래도 버스비는 100원도 하지 않는 아름다운 가격이었다.


여행 마지막에 다합에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아스완에서는 짧은 일정을 보냈다. 그래서 유명하다는 미완성 오벨리스크나 그리스 로마 양식의 필레 신전을 건너뛰었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 갈수록 내가 그다지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역사의 유적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또 매번 현지인들보다 많게는 20~30배의 외국인 입장료를 내는 것과 어디 한 번 가려면 수많은 거짓말과 바가지 가격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도 짜증 난다. 그래서 이집트는 큰 사건사고가 없어도 여행객을 한없이 지치게 만든다. 생활 물가는 싸지만 합리적인 예산으로 여행하기는 그 어느 곳보다 힘든 나라가 이집트다. 이어지는 크루즈에서의 2박 3일이 재충전을 통해 이집트 여행에 대한 열정을 다시 살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세계여행] D+168 시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