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통역을 하며 지켜본 아이돌 산업의 역겨움
언젠가 유럽 모처에서 열린 한 아이돌 그룹 콘서트에서 통역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통역은 힘들기는 하지만 진행되는 대화가 재미있으면 어느 순간부터 몰입해서 즐기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업무는 꽤 긴 시간 진행되었지만 그런 부분이 전무해서 재미도 없었고 답답한 일처리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 일을 하면서 옆에서 표면적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었던 아이돌 산업의 천박함과 거기서 느낀 역겨움이 상당히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나는 원래부터 아이돌 음악에 큰 관심은 없다. 십몇 년 전 초기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음악, 안무, 개개인의 브랜딩 모두 그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기계로 찍어내는 기괴한 자본주의 문화의 끝을 보는 느낌이다. 실제로 내가 자발적으로 완곡을 들어본 노래는 손에 꼽을 정도이고 그 유명하다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조금의 관심도 없다. 콘서트를 진행한 아이돌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룹이었고 한국에서도 그리 유명하지 않은 듯했지만 꽤나 이름 있는 기획사 소속에 해외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인기가 있는 듯했다. 해당 콘서트는 거의 휴식일 없이 매일 공연과 항공편 이동을 반복하는 유럽투어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공연이었다.
일단 통역 섭외 과정부터 프로페셔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공연 불과 3일 전에 섭외 공고가 올라왔고 다음 날 급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뒤 밤에 기차표와 숙소를 제공받고 공연 전 날 나는 미리 해당 도시로 이동했다. 통역비나 업무시간에 대한 답변도 상당히 모호해서 몇 번 물어보며 확인해야 했고 일정에 대한 공지도 지금 다른 도시에서 진행되는 공연 업무 때문이라는 핑계로 매번 촉박하게 이뤄졌다. 통역 당일 아침에 호텔에서 출발하는 데 그제야 카톡을 통해서 복장과 주의사항에 대한 공지가 날아왔고 나는 이미 전날 옷을 한 벌만 가지고 이쪽 도시로 넘어왔던 터라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일처리가 어수선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진행되는 상황을 보고 중간중간 담당자들과도 이야기를 해 보니 이 한 투어에 몇 개의 회사들이 하청관계로 엮여있었다. 정확한 구조는 모르지만 내가 파악한 바로는 한국에 메인 기획사가 있고 그 회사가 유럽투어를 위해 공연기획사와 프로덕션에 하청을 준다. 그 밑에는 이번 공연이 진행되는 나라를 담당하는 이벤트기획 회사와 공연 이외의 코디네이션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 그리고 현지인들로 이루어진 운전기사들과 경호원들이 또 따로 있다. 통역 섭외는 이벤트기획과 코디 회사를 통해 진행되었는데 이들도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바쁘고 위에서 지시가 제 때 내려오지 않으니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듯싶다.
이 복잡한 구조는 업무 내내 비효율을 일으켰다. 일단 하청구조가 늘 그렇듯 윗 분들 보기 좋으시라는 이유로 엄청난 낭비가 일어난다. 10분도 되지 않는 이동시간에도 아티스트 차량과 고작 하루 머무르는 숙소에는 며칠 동안 먹을 수 있을 양의 음료수와 군것질 거리를 세팅한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계획을 잘 세우지 못했는지 몇 번을 깔았다 뺐다를 반복한다. 나는 현지인 기사, 경호원들과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본인들이 몇십 년 경력동안 할리우드 탑스타이나 유력 기업인들 행사를 진행해도 이 정도로 유난을 떠는 그룹은 없었다고 한다. 하청업체 쪽에서도 어차피 나중에 다 남아서 버려야 하는 걸 알지만 위에서 원하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또 한국의 여느 썩은 기업이나 조직이 그렇듯 다들 상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모든 걸 통제하려 든다. 그나마 한 명이 일관된 지시를 내리면 모르겠지만 하청 쪽 말을 듣고 세팅을 해 놓으면 위에서 뒤집어 버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하청도 잘 보이고 싶은 건 알겠지만 왜 원청의 컨펌 없이 미리 세팅을 하려 하는지 모르겠고 윗사람들도 아무런 의미 없는 디테일에 왜 그렇게까지 집착하는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공연이 끝나고 아티스트들이 탑승할 차량 위치를 가지고 공연이 끝나기 한 시간 전부터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 아이디어대로 경호팀에 지시를 내린다. 그 부분을 나보고 담당해 달라고 해서 대부분의 경우 내가 지시사항들을 통역했지만 잠깐 다른 일을 하고 오면 누가 직접 와서 수정을 요구해서 위치가 바뀌어있다. 결국 어느 순간에 기사들도 내가 직접 말해주지 않으면 안 듣겠다며 나보고 확답을 가져다 달라며 부탁했다. 그분들은 나와 좀 친해졌고 어차피 주위에 알아들을 사람들도 없어서 나와는 솔직한 얘기를 나눴는데 본인들의 몇십 년 경력을 믿고 맡겨주면 어련히 알아서 최적의 동선을 준비하는데 왜 알지도 못하면서 명확하지도 않은 지시를 반복하며 일을 피곤하게 만드냐는 하소연을 했다. 농담으로 한국사람들 다 이러냐면서 나까지 놀렸고 나는 난 프리랜서일 뿐 저들의 만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해명을 계속 반복했다.
통역사들에 대한 대우도 이들이 수준 미달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페이도 높지 않았지만 숙식과 교통을 지원해 줬고 나는 돈보다도 공연이 진행되는 도시에서 업무 앞뒤로 짧게라도 여행을 하는 게 우선순위에 있었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합의했다. 그런데 일단 섭외된 통역사의 수가 필요보다 많았다. 이것 역시 혹시 통역사가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면 윗사람들에게서 욕을 먹을까 하청업체에서 넉넉하게 섭외한 결과였다. 업무가 진행되면서 내와 또 한 분이 배정받은 부분에 통역이 크게 필요 없었다는 게 드러났고 우리 둘에게 차량과 호텔방에 배분할 물품들을 분류하라거나 공연장에서 사용되는 휴지를 접어달라는 둥 본격적으로 잡무 지시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원래 관행적으로 통역사들에게 통역 이외의 업무를 시키는 건 굉장한 실례라는 것이다. 그래도 통역 일이 없어서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조금씩 도와주긴 했다. 동료 통역사분은 주변 마트 몇 군데를 돌아다니며 아티스트들에게 넣어줄 샐러드를 찾아 헤맸고 나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30잔을 사다 달라는 심부름도 부탁받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정말 선을 넘었다. 관객석 경호 인력이 부족하다고 업무가 없는 우리 둘에게 10분만 들어가 달라고 해서 잠시 서있다 나왔는데 알고 보니 위쪽에서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인력충원을 요구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어디 소속인지 모를 아르바이트생인지 직원인지 하는 사람이 와서 업무도 없으면서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굉장히 버릇없게 얘기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딱 잘라 거절했다. 이건 하청 쪽에서 봐도 심하다 싶었는지 내가 거절하니 당황하며 위쪽과 얘기를 했고 흐지부지되다 결국 나는 운전기사들 쪽 일이 생겨 들어가지 않았고 다른 통역사 분은 마음이 약해서 잠시 들어가서 도와주고 나왔다. 애초에 통역사를 구해놓고 통역 외 업무를 시키는 게 굉장히 빈번한 일인데 통역사들이 딱 잘라 거절하지 않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부당한 지시가 계속 내려오는 부분도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당연히 업무설명과 다른 지시를 반복하는 업체들의 무개념이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스태프들이 기본적으로 너무나도 싸가지가 없다는 데 있다. 싸가지 말고 다른 말로는 표현이 안 된다. 빡빡한 일정에 예민한 건 알겠는데 하청 쪽 담당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기가 막힌다. 어디 대표인지는 모르겠는데 대표라고 불리는 사람은 스태프가 아닌 개인적인 관계로 보이는 외국인 여자를 끼고 다니고 (그래도 이 사람은 본격적인 업무에서는 한 발 빠져있는 포지션이라 성격은 좋아 보였다) 코디, 메이크업 직원들도 자신들이 상전이라도 된 듯 하청 쪽 현지 코디네이터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태도가 매우 고압적이고 예의 없다. 그 와중에 역시 어디 소속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든 걸 총괄하는 담당 실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젊은 여자가 모든 부분에서 싸가지의 끝을 보여준다. 무슨 일이든 본인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일이 해결될 때까지 하청 직원들을 갈군다. 현지 기사들과 경호원도 내용은 못 알아들어도 저 사람이 요주의 인물인 건 바로 파악했다. 반말만 안 한다 뿐이지 모두에게 본인이 연예인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로 대한다.
재미있는 건 이 기세등등한 스태프들이 아티스트들 앞에서는 그렇게 깍듯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아티스트들이 성격이 개판이고 히스테리를 부려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말도 거의 없고 시종일관 무관심한 모습이거나 오히려 말단 아르바이트들에게도 수고하셨다며 먼저 인사를 건넨다. 스태프들이 아티스트들에게 보이는 깍듯함은 인간적인 존중이나 무서움에서 나오는 그것이 아니라 티켓팔이로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는 서커스단 원숭이들을 극진하게 케어해 주는 그것이다. 이들은 아티스트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고 자신들은 그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고작 몇 분 이동하는데 차 안에 음료수를 몇십 개씩 아이스박스에 정성스럽게 세팅하고, 호텔 로비에 한식 도시락을 주문시켜 온 호텔에 된장국 냄새를 풍겨대고, 저녁식사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을까 하청 직원을 시켜 5분에 한 번씩 배달음식점에 전화를 하게 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은 한없이 진지한데 외부인이 보기에는 그저 유난을 떨며 쇼를 하는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따라서 아티스트들이 인격체로서 대우받는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사육되는 동물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혹시라도 감기라도 걸려 공연이 취소될까 호텔 로비에서 바로 앞에 주차된 차까지 3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에 경호원들이 우산을 들고 서 있게 만들고 유럽 도시 몇 군데를 돌면서도 호텔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외부인과의 모든 접촉이 차단된 채 매번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게 만든다. 일반석 몇 배의 티켓값을 지불한 VIP들을 위해서 사전공연에도 올라가야 하고 무대에서는 기계처럼 짜인 대로 실수가 없으면서도 인간적인 매력도 풍겨야 한다. 솔직히 이전까지는 아이돌 가수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호소할 때마다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지만 이 통역업무 이후에 그들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이르면 10대 초중반부터 그 치열한 경쟁 끝에 남들이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짜 놓은 각본 안에서 몇 년 동안 쳇바퀴를 돌리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 삶인지, 또 본인들은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지 의문이 드는 게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이전의 순수함과 열정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주변인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회의감밖에는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에게는 일반인들은 축적할 수 없는 물질적인 부가 남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알맹이는 비워낸 채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간 대가일지도 모른다.
서커스단의 동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평균수명보다 현저히 적은 시간밖에 생존하지 못한다. 그들이 부리는 재주가 당장은 그들을 야생보다 안전하고 풍족한 세상에서 살게 해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자유와 야생을 극복한 후 찾아올 미래의 행복을 희생한 대가다. 결국 나중에 배가 부른 건 동물들의 재주를 상품화한 서커스단의 인간들 뿐이다. 이런 희생을 발판 삼아 엄청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천박하고 역겨운 아이돌 산업을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