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

by 미니 퀸

그가 기다리고 있다. 빨리 가야 하는데. 그가 덜 춥도록...


하지만 내 맘과는 달리 후들거리는 두 다리는 술 취한 모양으로 헛논다.


골목길 모퉁이를 돌자마자 나를 한눈에 알아본 그가 저 멀리서 한 걸음에 달려온다. 와서는 연신 고개를 숙인다. 죄인처럼.


"이보게, 올해도 어김없이 나왔구먼~ 잘 왔네, 잘 왔어!" 난 그의 두 손을 덥석 잡고 뿌옇게 김서린 식당 유리문으로 그를 이끈다.

"네~ 올해도 사장님 신세를 또 지게 되네유." 그의 고개가 더 아래로 떨어진다.

"뭔 소린가 이 사람아, 내 자네를 보니 이리 반가울 수가 없구먼. 배고프지? 자, 어서 들어가자고."

수년 동안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밥집이 우리를 맞아준다. 그와 나는 크리스마스 노래를 머금은 눈꽃을 뒤로하고 주방 큰 냄비에서 스며 나오는 하얀 김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이십 년 전 이 식당에서였다. 난 그 당시 서른세 살의 총각이었고 고생 끝에 모든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예배에 참석한 나는 설교를 들으며 너무 치열하게 사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음을 자책하고 있었다.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와 혼자 생활하고 있던 나는 예배 후 굳이 휑한 오피스텔에서 혼밥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근처에 있던 국밥집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기분에 들떠서 그런지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을 넘길 땐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성실한 국밥집 아주머니가 진득하니 끓인 진국에 감탄하며 고개를 들었을 때 쭈뼛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보았다. 얇고 낡은 가을외투를 여미며 고개도 똑바로 들지 못하는 삐쩍 마른 청년. 노숙자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막노동을 하며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세월과 함께 얼룩덜룩해진 누런 벽 위에 어색하게 얹어진 하얀 플라스틱 메뉴판을 그는 불안한 듯 살펴보았다. 그리곤 무릎이 툭 튀어나온 빛바랜 갈색 바지 주머니를 비워냈다. 잠시 손 안의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만지작거리던 그는 서서히 고개를 떨구었다.


"어서 오세요. 한 분이세요?" 반갑게 맞이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는 몸을 움츠리며 못 알아들을 소리를 웅얼거렸다. 그리곤 등을 돌렸다. 그때 난, 막 식당 문을 나가려는 그의 뒷모습에서 오 년 전 실업자 신세였던 내 모습을 보았다. 그를 배고픈 채로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나이기도 했기에. 그에게 밥 한 끼 꼭 먹이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그를 불러 세웠다.

우리는 같이 뜨거운 국밥을 나누었다.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계속 고맙다고 고개를 숙이는 그는 뚝배기를 두 손으로 정성스레 들고 마지막 국물까지 다 들이켰다. 그리고 정말 이 은혜 잊지 않겠다고 붉은 눈을 꿈뻑이며 콧물을 들이켰다. 이렇게까지 고마워할 일인가 싶을 정도로 감동하는 그를 보니 내 마음이 어찌나 찡하던지 나도 모르게 그만 난 덜컥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매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이곳에서 만나자고. 매년 내가 국밥을 사 주겠다고...




잠시 옛 생각에 잠겨 20년 전을 그리고 있던 나를 그의 목소리가 현실로 데려온다.

"그런데 사장님은요?" 숟가락을 든 그의 손이 잠시 멈추고 내 국밥이 놓여야 할 빈자리와 나를 번갈아 보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응, 아까 거래처와 약속이 있어서 계속 뭘 먹었더니 더 이상 먹을 수가 없구먼. 자네~ 많이 먹게. 배 많이 고팠었지? 어서 먹게."


그런데 왜 이 사람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 걸까? 매해 이 남자는 무릎 튀어나온 너덜너덜한 바지와 함께다. 오늘도 변함이 없군. 에구~ 밥 한 끼 사주면서 내가 뭐라고 형편을 묻고 훈수를 두겠는가. 항상 그래왔듯이 그냥 맘 편히 밥 한 그릇 먹고 가게 돈이나 내면 되지.


, 맞다! 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물성을 확인한 나는 작은 숨을 몰아쉬며 그가 눈치 못 채게 메뉴판을 힐끗 본다.

한 때는 눈처럼 새하얬던 메뉴판이 이젠 세월을 못 비껴가고 누런 벽과 같은 색이 된 것 같아 한숨이 나온다.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빨갛게 상기된 그의 두 볼 위로 금방이라도 투명구슬이 흘러내릴 것 같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괴로운 듯한 표정이 아주 잠깐 스친다. 올해도 국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신세가 서럽고 괴로운 것일까?

"그래, 자네가 잘 먹었다니 내가 더 기쁘구먼. 그럼 내년 크리스마스이브에도 이 식당 앞에서 만나세."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럼 내년 이맘때 또 뵙겠습니더.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더." 거듭 허리를 깊이 숙이며 그는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그에겐 단 한 끼 따뜻한 국밥이지만 나에겐 일 년의 설렘이다. 그가 고맙다며 거듭 감사를 표하고 며칠 굶주린 사람처럼 국밥을 들이켤 때마다 난 내 삶이 보상받는 것 같아서 한없이 기쁘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이 예수님 같고 내 사명이란 생각마저 든다.


아, 그런데... 왜 이리... 어지럽지?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데...




"이보세요! 아저씨! 정신 차리세요!"

"이게 웬일이래. 어머! 이 사람 얼굴 좀 봐, 몸도 다 굳은 것이 초상치르게 생겼네. 여기요. 누구든 빨리 엠뷸런스 좀 불러주세요!!"




- 그의 이야기


"여보, 이제 좀 괜찮으세요?"

몸이 너무 힘들어서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아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저 수면 아래에서 느리고 아득하다.

"다행이에요. 급체였다네요. 많이 놀랐죠?" 아내 목소리가 이제 제대로 들리니 상황파악이 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아까 낮에 거래처랑 가진 약속 두 건에 이미 위가 부대꼈었는데 저녁에 또 국밥 한 그릇을 급하게 다 비워냈으니 몸이 견뎌낼 수가 없었던게지.

"김기사한테 연락받고 얼마나 놀랐던지......" 숨을 가쁘게 쉰 아내는 이내 살짝 눈을 흘긴다.

"아니, 크리스마스 은인을 만나러 간다더니. 대체 뭘 그리 급하게 드신 거예요? 좀 천천히 드시지 않고~"


내 은인을 더 행복하게 해 드리고 싶어 걸신들린 듯이 음식을 다 욱여넣은 나를 아내는 이해 못 할 거다. 아내를 만난 건 소위 성공이란 걸 하고 나서였으니까. 내 이전 모습도 아내에겐 상상이 안 되리라.


사실, 전부터 다 솔직히 말씀드릴까 몇 번이나 고민했던 일이다. 하지만, 은인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다. 물론 성공했다고 알려드리면 누구보다 더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겠지만, 그러면 그분에겐 더 이상 국밥을 사주실 이유가 없어지는 거다. 이십 년 전 그날 크리스마스 사랑을 실천하게 해 줘서 고맙다고, 뭔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기쁨이 너무나 크다고 좋아하시던 그 표정을 해마다 드리고 싶다. 이것이 내가 그 사장님께 은혜를 같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다행히 사장님은 딱히 내 사정을 한 번도 물으신 적이 없다. 그저 해마다 한 번도 잊지 않고 그 자리에 나오셔서 뜨끈한 사랑을 주시고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


"여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고생을 안 해 본 아내의 고운 손이 내 거친 손 위에 포개진다.

"응? 아~ 이제 집으로 갈까?" 아내의 조그만 손을 투박한 나의 두 손으로 감싸고 고운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고운 피부가 밖에 내리는 흰 눈 같다.

"괜찮겠어요?" 볼이 연한 핑크빛으로 물든 아내는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럼, 이제 괜찮아. 그리고 집이 더 편하니 집에 가서 좀 더 쉬는 게 좋겠어."

나는 굳이 더 응급실에 누워있을 필요가 없어서 주섬주섬 모직외투와 목도리를 걸친다. 아내 손을 꼭 잡고 막 나가려는데 저쪽 구석에 있는 침대 위에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난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간다. 맞다! 사장님이다! 그런데 왜 대체 여기에 사장님이.


수액과 영양주사 바늘을 꽂고 깊이 잠든 사장님 얼굴엔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주름이 여기저기 깊게 파여있고 눈두덩이는 푹 꺼져 있다. 바늘이 들어가 있는 팔뚝은 너무나 가늘고 몸은 왜소하다. 갑자기 10년은 늙어버린 것 같은 모습에 아까 내가 만난 사장님이 이 분인가 혼란이 온다. 생긴 건 분명 사장님인데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늙어버리지? 혹시 그분 큰 형님인가? 하지만, 다시 보니 나의 은인이 맞다. 옆에는 이마를 잔뜩 찡그리고 두 손을 꼭 모아 무릎 위에 올려놓은 여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마 사모님이겠지. 얼마나 급히 병원에 달려오셨기에... 집에서 입던 얇은 옷을 걸치고 있는 그녀는 추워 보인다.


"저, 실례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아까 사장님과 저녁을 먹느라 함께 있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치긴 하지만 이십 년 한결같이 밥을 사 주신 사장님이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헤어지고 나서 길에서 차사고라도 났던가? 혹시 지병이 있어서 쓰러지셨나? 아님 차라리 그분의 형님을 보고 착각한 것이길.


엉거주춤 일어난 사모님은 젖어있는 눈시울을 손바닥으로 쓱 닦아내며 힘없이 웃는다.

"아~ 그러시군요. 남편이 늘 말씀하시던 분이시군요. 크리스마스이브에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꼭 도움을 줘야 하는 분이 있다며 며칠 전부터 한 끼씩 거르고 돈을 모으더군요. 약속한 밥 한 끼 꼭 사줘야 한다고. 그런데..." 사모님은 얼떨결에 나를 따라와 내 옆에 모피코트를 걸치고 있는 아내와 나를 번갈아 보면서 뭔가 잘못된 걸 눈치챈 듯,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다.


아차! 내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으니 사장님은 나의 행색을 이십 년 전 모습으로 이야기하셨을 테고 사모님은 당연히 내 모습에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그런데 한 끼씩 걸렀다는 말은 또 뭐지?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긴 하지만 속인 건 사실이기에 사모님 앞에서 내 얼굴은 뜨거운 냄비에 덴 것처럼 화끈거린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그런데 사장님은 어쩌다가...?" 난 이해하고 싶다. 왜 사장님이 여기 환자처럼 누워있는지.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모님은 뭔가 실타래를 풀고 있는 사람처럼 느리게 내뱉는다. "사장님은 무슨... 이제 더 이상 사장이 아닌걸요. 칠 년 전 부도나고 쫄딱 망했는걸요. 상황은 해마다 점점 더 나빠지고 있고요. 그래도 크리스마스이브마다 꼭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더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일 년에 단 한 번인데 그 사람은 그 국밥이 없으면 삶을 포기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고..."


난 침이 바짝 마르고 뒷골이 땅긴다. 코끝이 시큰해지며 시야가 얼룩덜룩 흐려진다.


"요 며칠새 제대로 못 먹은 데다가 막노동으로 추위와 피로가 겹쳐서 쓰러진 것 같아요." 여인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 영양실조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