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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Jan 15. 2024

편두통


"인후 어머님이시죠? 인후가 아직 도착을 안 해서요."


과외를 시작하고 두 번째 시간이었는데 10분이 지났도록 인후가 도착하지 않았다.


"아, 정말요? 이 녀석이 또 돌멩이하고 놀고 있나 보네요."

"네?"

"아, 우리 인후가 요즘 돌에 푹 빠져서 길가에 있는 돌멩이 보느라고 집에 바로 안 오네요. 제가 인후에게 전화해서 바로 가라고 할게요. 죄송합니다."


인후는 돌을 유난히 좋아하는 좀 특이한 학생이었지만 훌륭한 학생이었다. 영어단어 암기도 잘하고 숙제도 잘해왔다. 난 이런 인후가 좋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용한 면은 있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먼저 묻는 일은 도통 없었다. 보통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들은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몸도 들썩, 입도 들썩해서 자기 얘기하느라 자꾸 수업을 끊어먹으려고 하던데. 인후는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돌멩이 빼고는...


세 달쯤 지난 어느 화요일, 인후는 과외를 받으러 우리 집으로 왔다. 난 그날따라 유난히 편두통이 심해져서 수업약속을 취소하려다가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인후이기에 그냥 해도 되겠다 싶었다. 머리가 흔들리지 않게 조용조용히 이야기해도 될 테니.

그런데 중간중간 찌릿찌릿하게 오는 참을 수 없는 통증에 저절로 신음이 나왔다.

평소에는 눈도 잘 안 맞추고 고개를 45도만큼 숙인 채  대답만 하던 인후가 머리를 들어 내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무안해진 나는 신음하듯이 입을 열었다.

"미안~ 오늘은 선생님이 편두통이 심해서 머리가 좀 많이 아프네. 미안해."


"... 우리... 형아도... 머리가 좀 아픈데..." 말끝을 흐리는 인후를 유심히 보았다. 처음으로 먼저 말을 꺼냈기에 신기했다.

"응? 형아도 머리가 아파? 인후 형도 편두통 있니?"

"......"

한밤중에 내려져 있는 셔터문처럼 인후의 입은 다시 꾹 닫고개는 다시 45도로 떨어졌다.




인후를 가르친 지 한 6개월쯤 지났었나? 오전에 볼 일이 있어 멀리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했던 지하철에서 내려 일원역을 나오니 후끈한 열기가 숨을 턱 막았다. 빨리 걸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효율적 일지, 천천히 걷는 것이 덜 땀이 날지 저울질하는 동안 저만치 앞에서 엄마들이 밀알학교(장애인 학교) 앞에서 자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이 우르르 나왔는데 한 학생에게 자연히 눈길이 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는데도 뭐라고 제법 크게 외치고 있었기에  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 덩치가 유난히 큰 그 알아듣기 힘든 의미 없는 단어를 무한반복하고 있었다.  팔을 마구 위아래로 흔들면서.

그때 보았다.

 아이 쪽으로 서둘러 걸음 하는 가냘픈 여인.

어쩐지 눈에 익 듯한 모습이었다.


인후... 어머니?!


난 그제야 인후의 말을 알아들었다.

"형아가... 머리가... 좀...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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