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조금 일찍 잠자리에 누워서인지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남편은 안방에서 나온 나를 보며 심각한 얼굴로 "지금 비상계엄 내려졌어"라며 말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웃음이 났다. 잠을 깨우는 방식이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비상계엄? 장난치지 마~
80년대도 아니고, 2024년의 비상계엄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남편의 말 뒤로 TV소리가 들렸다. 모든 채널의 언론들이 앞다퉈 실시간으로 비상계엄 상황을 전파하고 있었다. 장난이 아니었다. 자고 일어나니, 난 계엄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 1이 되어있었다.
일어나니 계엄 해제안이 가결되어 있었다.
비상계엄은 전날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6시간 동안 진행됐다. 대통령은 절박한 마음으로 야당에 경고하기 위해 소리를 낸 거라며 해명했다. 하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눴다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
6시간의 계엄령의 후폭풍은 대단했다.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위험국가로 분류되며 신뢰를 잃었고, 서민의 경제지표인 주식시장은 완전히 박살이 났다. 내수경제까지 초토화된 이 상황을 어떻게 해프닝으로 볼 수 있을까? 대통령은 정말 이 이후 상황에 대해서 예측을 전혀 못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다음날 중국에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我看到韩国政府发生了些事情,对你有影响吗? (한국 정부에서 발생한 일들을 봤어, 넌 별일 없니?)
이토록 대한민국 국민인 게 부끄러운 적이 없었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아무도 예상치 못 한 계엄이었지만, 2시간 만에 계엄해제 안이 만장일치로 가결되고,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지됐다. 탄핵소추안도 발의됐고, 전국에서는 '윤석열 퇴진'시위가 벌어졌다.
탄핵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2024. 12. 7.(토)
계엄령이 선포된 지 4일째인 토요일은 탄핵 투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날 아침부터 남편과 탄핵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소야대 정국이니, 탄핵이 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당은 탄핵에 부담을 느끼겠지만 그래도 의결정족수에 필요한 8명은 찬성표를 던져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투표에도 참여하지 않은 줄이야.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탄핵을 앞두고 대통령이 4일 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대국민 사과를 한다고 했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절박함에서 비롯 됐으며, 제2의 계엄령은 없고, 2선으로 물러가 모든 권한을 여당에 일임한다고 했다. 고작 2분짜리의 사과였다.
대통령은 자신과 자신의 배우자를 지키고자, 국민에게 총을 겨눴고,
여당은 당을 지키고자, 국민들의 뜻과 나라를 저버렸다.
대한민국 역대세 번째 탄핵 투표는 부결이 아닌, 기각으로 끝이 났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을까? 계엄 때보다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누구를 대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걸까.'
국민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와 국회를 갖는다.
부끄럽지만 난 평소 정치에 관심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도 늘 한 박자 늦게 알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 주는 달랐다. 언론인들이 말하는 모든 말들이 나를 겨냥하는 말처럼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투표가 왜 중요한지, 사람을 잘 못 뽑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 있던 한 주였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한다. 한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모이는 사람들. 맨손으로 군인들과 대치하는 국민들을 보니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모든 사람들이 영웅 아닌가.
(좌)거리로 나온 사람들, 계엄해제안 가결을 위해 담을 넘는 국회의장, 사과하는 계엄군
아이들을 키운다고, 먹고 산다고, 평소 의식하며 살진 않았지만 나라가 위기에 처한 것을 보니 내 안에 숨겨있던 뿌리 깊은 애국심을 확인한다. 자기 밥그릇 챙기기만 급급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보며 부끄러웠던 마음을, 사람들로 치유한다.